동작동 국립묘지는 원래 국군묘지로 출범했다. 1955년 설치당시에는 전몰한 군인만이 안장(安葬)대상이었다. 그러다 1965년 ‘국립묘지령’으로 승격하면서 국가에 유공한 민간인까지 안장하게 되었다.


안장대상을 규정한 6개항 중 제2항은 이렇다. “군 복무중 전투에 참가하여 무공이 현저한 자, 장관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자 중 전역, 퇴역 또는 면역된 뒤 사망한 자로서 국방부장관이 지정한 자.”


이번에 유학성(兪學聖)씨를 국립묘지에 안장키로 한 결정은 이에 의거한 것이다. 그의 내란범죄 때문에 국민감정을 생각해 약간의 해명이 붙기는 했지만, 국방부에서 알아서 처리하게 되어있는 것이 현행 국립묘지령이다.


최종심 완결 전에 피의자가 사망하면 일체의 공소내용이 소멸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죽은 자를 가둘 수도 없고 되죽일 수도 없으니 더 재판할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벌의 구체적 방법이 사라졌기 때문에 공소기각된다 해서 혐의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설령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국방부장관이 지정하기만 하면 법적으로는 아무 하자가 없다. 문제는 내란범죄자를 국립묘지에 묻을 수 있느냐 하는 ‘상식’에 있다. 1-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그 혐의를 전혀 씻지 못한 兪씨를 국립묘지에 모시겠다는 것은 국방부의 상식수준을 드러내는 일이다.


안장대상 규정의 제4, 6항은 민간인의 안장기준을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그 지정절차는 “국방부장관의 제청에 의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지정”하도록 되어있다. 대한민국 국립묘지는 아직까지 ‘국군묘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93년 타계한 임정(臨政)요원 조경한(趙擎韓) 선생은 위장한 친일파들이 국립묘지에 들끓는 것을 개탄하며 자신을 그곳에 묻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사후 정부의 결정으로 동작동에 안장되었다가 이듬해에야 유족의 끈질긴 청원에 따라 효창공원의 임정묘역으로 이장되었다.


兪씨로 인해 국립묘지를 떠나고 싶어하는 선열(先烈)들이 더 나오게 되지나 않을지, 국방부가 제대로 생각을 한 것 같지 않다. 국방부도 상식수준을 끌어올려야 하겠지만, ‘문민’의 간판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국립묘지의 관할부터 국방부에서 보훈처로 옮겨야 할 것이다.

'미국인의 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食人의 전설 (97. 5. 2)  (0) 2011.11.28
家臣을 둔 罪 (97. 4. 25)  (0) 2011.11.27
사탕을 먹지 말거라” (97. 4. 11)  (1) 2011.11.25
근로자와 戰士 (97. 4. 4)  (1) 2011.11.24
진정한 고수(高手)  (0) 2011.11.23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