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의 사탕 먹는 버릇을 아무도 고쳐주지 못 했습니다. 선생님 말씀이라면 아이가 들을 겁니다. 사탕 먹지 말라고 아이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이를 데리고 중년의 간디를 찾아온 어머니가 간절히 부탁했다.


아이의 눈을 그윽이 들여다보며 입을 뗄듯하던 간디가 눈길을 어머니에게 돌리고 말했다. “보름 후에 아이를 다시 데려오세요. 그때 말해 주겠습니다.”


“저희는 먼 곳에 살기 때문에 보름씩 여기 머물기도 어렵고 보름 후에 다시 오기도 어렵습니다.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간디는 다시 한번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고는 또 말했다. “아무래도 보름 후라야 말해줄 수 있겠습니다.”


할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돌아갔던 어머니가 보름 후 다시 찾아왔다. 간디는 아이의 눈을 한동안 그윽이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얘야, 사탕을 먹지 말거라.”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뻐하고 고마워하며 어머니가 물었다. 왜 그 말씀을 보름 전에는 해주실 수 없었느냐고. 간디가 대답했다. “그때는 저도 사탕을 먹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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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는 인도의 예속상태가 영국의 욕심보다 인도의 도덕적 무기력에 근본원인을 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제창한 사티야그라하(비협조-불복종)운동은 압제자에 대한 저항에 앞서 인도인의 도덕성 함양 과업에 치중했다.


1931년 영국과의 협상에서도 간디는 인도인의 자치권한 확대보다 소외계층 대책에만 주력해 민족주의 진영에 실망감을 주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천민층의 참정권 제한방침에 항의해 옥중단식을 하는 등 인도 내부의 문제를 영국과의 관계보다 늘 앞세웠다.


성실한 도덕적 실천만이 진정한 인도 독립의 길임을 간디는 몸으로 보여주었다. 배타적 권리의 주장보다 인류에게 책임질 줄 아는 능력이 인도 독립의 열쇠라고 한 그의 가르침은 수미일관(首尾一貫)한 그의 실천으로 인해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청문회 증인들에게 호통치고 설교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며 간디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마치 완전무결한 인간인 듯 증인들을 질타하는 그들이 증인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도덕성을 가졌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사탕 먹지 말라는 한 마디를 위해 스스로 가다듬기를 마지않는, 그런 지도자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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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