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8. 10:14

지금 어머니 살펴드리는 세 분 여사님께 정말 아무 불만 없다. 능력도 태도도 나무랄 데 하나 없다. 그런데도 연말에 떠난 김 여사나 한 달 전에 떠난 주 여사를 생각하면 차이가 있다. 그 두 분이 워낙 특이한 분들이었다. 보스 기질이랄까, 리더십이랄까, 상황에 능동적으로 임하는 자세가 있었다.

김 여사가 시작하고 주 여사가 이어받은 사업의 하나가 어머니 노래 시키는 거였다. 아직 회복이 덜 되어 어리버리하실 때부터 틈만 나면 어머니 곁에 와 노래를 불러드리고 따라 하시도록 권하는 것이었다. 얼리는(조선족 말, '꼬신다'는 뜻) 재간들도 참 좋아서 어머니도 꽤 열심히 따라 부르셨었다. 레퍼토리는 <아리랑>과 <푸른 하늘 은하수> 두 곡 뿐이었지만.

지금 계신 분들은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인데 재미있을 것 같은 일 찾아서 하는 여유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주 여사 떠난 뒤로는 노래부르는 취미를 잊으셨는데, 얼마 전부터 내가 조금씩 시도를 시작했다. 며칠에 한 번씩 해보다가 차츰 반응이 좋아지셔서 그저께부터는 정규 일과로 만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기존의 두 곡을 집중공략했는데, 어쩌다 한 번씩 따라 부르더라도 입안에서 웅얼거리시는 정도로, 큰 흥미를 보이지 않으셨다. 그러다 어느 날 다른 곡을 불러드렸더니 흥미를 크게 일으키시는 것이었다. 가장 열렬한 반응을 보이신 곡은 <행복의 나라로>. 얼굴을 가까이 하고 나직하게 불러드리는데, 눈을 크게 뜨고 몰입한 표정으로 내 입을 뚫어져라 바라보시면서 오른손으로(나는 어머니 왼쪽에 대개 앉는다.) 박자까지 맞추신다. 끝나면 "또!", 과일즙 드릴 때 다음 숟갈 재촉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식욕을 보이시는 바람에 어느 날은 열 번도 넘게 불러드렸다.

내 입을 쳐다보시는 표정, 참 가관이시다. 어떤 때는 그 표정이 너무 우스워서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할 정도다. 한 곡 끝나면 "참 좋다.", "참 잘 부른다." 말씀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고, "네가 어쩌다 이렇게 잘 부르게 됐냐?" 묻기까지 하신다. 내가 음치라는 사실은 나에 대해 가장 확실하게 기억하시는 사항의 하나다. 진짜로 노래에 빠지셨을 때는 그런 정도 사설도 늘어놓으실 겨를이 없다. 그냥 "또!"

어제부터 새 노래를 가르쳐드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때까지의 패턴은 내 노래를 감상만 하시다가 이따금 <아리랑>과 <은하수>로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제 3의 길을 시도했더니 뜻밖에도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다른 노래 하나 가르쳐드릴까요?" 했더니 "그러렴." <송아지>와 <찌르릉>을 시도했는데, <찌르릉>이 맞아떨어졌다. <송아지>는 새로 배울 필요도 없이 알고 계셨지만 큰 흥미를 일으키지 않으셨는데, <찌르릉>이 나오자 표정이 순간적으로 바뀌신다. 손으로 박자를 맞추시고, 완전 몰입 모드다. 끝나자 "또!"를 부르시고, 이번엔 따라 부르신다. 세 번째 부를 때는 가사에 애매한 점을 확인까지 하신다. 일고여덟 차례 지나가면서는 끝날 때마다. "그게 다야?", "그렇게 짧어?" 하고 아쉬움을 보이신다.

노래에 이렇게 빠져드시는 것이 음식에 빠져드시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현상 아닐까싶다. 좋아하시는 대상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대로 빠져드시는 것이다. 먹을것을 사양하시는 일이 (어떤 음식이라도!) 전혀 없는 현상을 최근에 여사님들도 조심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제 들어오는 길에 간호사와 의논하고 있는 강 여사를 마주쳤는데, 달라시는 대로 음식을 다 드려도 괜찮은지 묻는 것이었다. 간호사는 크게 조심할 필요 없다는 의견을 얘기해 줬는데, 강 여사가 오늘 잠깐 나랑 얘기할 때는 아무래도 조금은 배 고프시게 하는 편이 낫겠다고 자기 생각을 말해준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문제를 생각해 주니 마음이 정말 편하다.

아무튼, 어머니의 기억이 완전하지 못한 하나의 측면이 '거리낌'을 잊어버리신 거라면,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시는 지금이 그분 인생의 또 하나 '황금기'로 큰 가치를 가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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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