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7. 09:41

세 분 간병인들(장 여사, 강여사, 그리고 새로 온 채 여사)이 모두 어머니를 각별히 모시는 태도를 보여준다. 몇 가지 조건이 합쳐져 작용하는 것이다.

첫째, 어머니 당신이 꽤 재미있는 분이시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신 후로는 (연초에 식사를 시작하시면서) 환자 분들 중 제일 반응이 활발하실 뿐더러, 좀 갈팡질팡하시기는 해도 말씀과 태도에 별난 가락이 많이 얹혀져 있어서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자극을 꽤 많이 주신다. 그리고 회복이 많이 되신 후로는 당신께서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 적절한 응대가 쉽게 나오신다.

둘째, 우리 내외가 열심히 다니면서 말 하나라도 따뜻하게 하고, 아내가 뇌물도 적절히 쓴다. 돈 싫어하는 사람 없으니 돈을 주면 물론 좋아하지만, 한국인들이 돈이면 제일인 줄 안다는 경멸감 내지 혐오감 비슷한 것이 조선족 사회에는 널리 있어서, 받고 좋아하면서도 마음은 잘 움직이지 않는 경향도 있다. 그리고 급여 외에 별도의 사례를 받는다는 것이 직업윤리에도 문제가 있다. 아내가 적당한 간식거리 챙겨주고 전화카드 가끔 갖다주면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셋째, 아내가 같은 조선족이란 유대감이 있다. 어머니 곁에 놓아두는 책들을 주 여사가 틈 나는 대로 들여다보곤 했는데, (서점에서 근무한 아내를 포함해서 일반 조선족은 일반 한국인들에 비해 책 읽는 일이 익숙치 않아서 주 여사의 독서 취미는 특이한 것이었고, 떠나기 며칠 전에는 <밖에서...> 한 권을 사인해서 드렸다.) 주 여사 떠난 뒤에 장 여사가 아내에게 한 번 말하기를, 내 책 후기에서 아내를 아끼고 존중하는 대목을 주 여사가 보여줬다고. 조선족인 아내가 한국 고급 지식인에게 존중받고 지내는 것이 자기네 마음에도 기쁘니 더욱더 행복하게 잘 사시라는 얘기... 자유로 병원에서도 이 유대감이 큰 몫을 했는데, 이쪽에 와서는 더욱 증폭된 셈이다.

어제는 저녁 드신 뒤에야 가서 모시고 앉았는데, 채 여사가 들러서 말해 준다. 어제는 다른 날보다 유난히 많이 자기네를 찾으시더라고. 채 여사는 있은 날자가 적지만, 눈치가 빠르달까, 잘 챙기는 면이 있다. 장 여사는 워낙 말수가 적은 분이고, 강 여사는 좀 천진한 성격이랄까, 내가 궁금한 점이 있어 물으면 대답해 주는데, 채 여사는 특이사항을 제절로 알아서 얘기해 주는 일이 많다.

환자가 간병인 많이 찾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방 반대쪽의 아주머니 한 분은 내가 앉아 있을 때도 "아줌마, 아줌마..." 하며 여사님들을 부를 때가 많은데, "지금 바빠요. 좀 있다 갈께요." 대꾸하는 게 보통이고, 내게 "참 골치아픈 분이예요. 다른 분 곁에 있으면 왜 그리 샘을 내시는지..." 하며 절레절레한 일도 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많이 찾으신 일은 무슨 영광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니, 참 고르지 않다.

어머니는 심심하실 때, 또는 뭔가 생각난 것을 얘기하고 싶은 상대가 필요할 때 여사님들을 부르시는데, 소리쳐 부르시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살랑살랑 손짓에 표정을 곁들이신다. 간병인들을 '제자'라고 하시는 것이 처음에는 단순한 착란이신 줄 알았다. 그런데 요새 와서는 그것이 꽤 고급한 전술전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 전날 내가 앉아 있는데도 여사님 한 분을 손짓으로 불러 몇 마디 말씀하고 돌려보내신 뒤에 "내가 부르면 잘 오지." 흐뭇한 표정으로 자랑하신다. 불러도 안 오면 어떻게 하시냐고 여쭈니 태연하게 대답하신다. "그러면 즈이들이 점수 못 받아가는 거지, 뭐." 그리고는 생각났다는 듯이 저쪽에 서 있는 여사님들에게 소리치신다. "너희들, 점수 필요 없으면 안 와도 돼." 점수 갖고 학생들 농락하시던 버릇이 제2의 천성이 되셨나보다. 그러니까 여사님들은 불려와도 귀찮다는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겠지.

생각이 이제 내 상상 밖으로 넓고 깊게 자라나시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어제 와 뵙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저께는 저녁 후에 다시 가 뵈었는데, 정신이 아주 초롱초롱하셨다. 그래서 대구의 세돈 형님께 전화를 걸어 바꿔 드렸다. 내게 고종사촌이지만 어머니보다 불과 몇 살 아래인 세돈 형님은 아버님 계실 때 '가방모찌'처럼 곁에서 모셨고, 우리가 크는 동안 마치 숙부님처럼 우리를 살펴주신 분이다. 작년 여름 자유로병원으로 와 뵙고는 이제 다시 뵙기 어렵겠구나, 체념하고 돌아서셨던 형님, 뜻밖에 '아지매' 목소리를 듣고 매우 기뻐하신다.

통화하시는 동안 그쪽 집 걱정까지 해주시며 이쪽 걱정은 마시라고 의연하게 말씀하시는 것만도 대견했다. 그런데 내가 정작 놀란 것은 통화가 끝난 뒤 나를 돌아보며 하시는 말씀. "제사..." 밑도 끝도 없이 한 마디를 내놓으시고 잠시 끊었다가 말씀을 이으신다. "우리가 아무리 그래도 남들이 너무 걱정하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한 채로 말씀드렸다. "어머니, 이만큼 편안하게 지내며 재미있게 지내시는데, 남들 걱정시킬 일이 뭐 있겠어요?" 그러자 처연하게 보이는 웃음을 띠고 말씀하신다. "우리야 그렇다 해도 남들 눈에는 형편없게 보일 수 있지 않니?"

그 말씀을 듣자 앞에 "제사..." 한 마디에 무슨 뜻이 있었는지 알겠다. 우리 집 제사가 끊긴 지 8년째다. 큰형이 한국에 없으니 작은형이 나서서 지내다가 작은형이 학교 그만두고 미국에 많이 나가 지내게 되면서 내놓은 것을 내가 시늉만으로라도 잇고 있다가 아버님 50주기를 큰형 가족까지 불러들여 모처럼 본때있게 지낸 뒤 나마저 중국으로 나가고는 아예 접어놓은 것이다.

아내와 함께 귀국해 지내면서 제사를 되살릴까 하는 생각도 얼핏얼핏 들었지만, 결국 그만두기로 했다. 한국 사회가 중국 조선족에게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는데, 제사 안 지내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제사를 좋은 풍속으로 이어가는 분들을 부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가족, 친척을 모아 추모의 계기로 의미를 살리지 못하면서 두 내외가 제사 시늉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허례허식일 뿐이다. 8년 전까지는 그래도 후일을 기약하는 마음이 있었다. 지금 당장은 이렇게 초라하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지내드릴 때가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이제는 제사를 제사답게 모실 장래의 전망도 없다.

어머니는 제사 문제로 내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하셨다. 내가 시늉만의 제사를 지내려 애쓸 때도, 절에서 천도 불사를 모아서 할 테니 따로 제사 지낼 것 없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 성격이 망자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지 않는 편이시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런데 제사 등 전통에 대한 태도가 각별히 단정한 세돈 형님과 오랫만에 마주치자 마음에 걸려 있던 문제를 드러내신 것이다. 절 사정에 밝으신 분들께 여쭈어 절에 맡겨서라도 망자에 대한 예의를 최소한 갖추는 길을 찾아야겠다.

제사 생각이 떠올랐지만, 건드려서 재미없을 듯하기에 밀쳐놓고 시치미를 뗐다. "어머니, 존경까지는 못 받는다 해도, 형편없다고 우습게 보이기까지야 하겠어요?" 그러니까 끄덕끄덕하시며 "그렇지, 나야 아들 셋이 다 잘들 하니까..." 그리고는 스스로 미심쩍으신 듯이 덧붙이신다. "기봉이야 어디 한 구석 걱정할 데가 없고... 기목이는 아주 미덥지는 않지만..." 하시는 대목에서 내가 가로챘다. 나쁜 쪽으로 내가 우겨야 어머니가 방어적인 자세로 작은형을 감싸시게 되리란 계산도 있지만, 나도 스트레스 좀 풀어야겠다. "아주 미덥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미더운 구석이 전연 없죠. 미덥지 않은 사람 억지로 믿으려고 괜히 부담 주지 마세요." 했더니 뜻밖의 고명한 대꾸가 나오신다. "내가 보기에 그렇더라도 너희 사이에 그러면 안 되지. 형제 간에는 서로 믿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

이 정도면 재작년 여름 쓰러지시기 전까지의 여러 해 동안보다 더 폭넓고 유연한 사고력이시다. 하드웨어 상태가 더 좋아지셨을 리는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사고력에 제한을 가하던 여러 가지 '집착'이 기억의 범위가 줄어들면서 풀어지신 덕분일까? 아내를 대하시는 태도에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갔을 때 아내에게 어머니를 맡겨놓고 나는 나와서 책을 보고 있으려 했는데, 나가려는 나를 아내가 가리키며 "어머니, 저 사람 어머니랑 놀아드리지 않고 도망치려고 해요. 붙잡으세요." 하기에 내가 "어머니는 아들보다 며느리를 더 좋아하시니까 제가 비켜 드릴께요."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고 여사님 한 분이 "할머니, 아드님이 더 좋아요, 며느님이 더 좋아요? 어느 분이랑 노시겠어요?" 하니까 이쪽 저쪽을 쳐다보신 뒤에 음흉한(?) 웃음을 띠고 "나는 며느리가 더 좋아." 하신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으시려는 속셈이 들여다보인다. 며느리에 대한 인식은 이번 회복 이후에 새로 입력되신 것 같은데, 그 인식을 행동의 준거로 삼으실 만큼 안정된 자신감이 확보되신 것으로 생각된다.

음식에 대해서도 절제의 틀이 자리 잡히신 것 같다. 그저께 점심 때 맛있게 죽 한 사발을 비우신 다음 식판을 치우려 하자 식판을 붙잡으며 "나 아직도 배고파." 하신다. "이렇게 맛있게 드시고도 배고프세요? 미안하지만 공양이 끝나셨는데요?" 했더니 "끝나긴? 이제 시작인데." 강정을 하나 입에 넣어드리니 식판을 선선히 내보내신다. 얼마 전에는 정말로 더 잡숫고 싶은 욕구 때문에 식판에 매달리기도 하셨는데, 이젠 장난으로 그러시는 것이 분명하다. 당신의 욕구를 스스로 바라보실 수 있는 것이다. 과일즙이건 과자건 아무리 입에 맞으시는 것이라도 보름 전처러 끝장을 보자고 달려들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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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