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8. 10:10

그저께와 그그저께는 어머니께 가 뵙지 못했다. 잠깐 가 뵙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바쁜 건 아니었지만, 꽤 바쁜 사정을 아내가 보고는 혼자 가 뵐 테니 일이나 하라고 나서 주었다. 덕분에 급한 글들을 제법 차분하게 정리해 낼 수 있었다.

요즘 어머니가 며느리를 고와하시니까 아내가 찾아뵙는 일을 훨씬 더 즐겁게 여기는 것 같다.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하루 걸러 찾아오는 며느리를 보실 때마다 초면 손님 대하듯 하시고, 누군지 아시냐고 물으면 얼렁뚱땅 "내 제자야~" 하시는데 모시는 입장에서도 흥이 날 리가 없다. 내가 혼자 갔을 때도 장조림이나 과일즙을 드릴 때마다 아내 공치사를 열심히 한 덕분인가, 그럴 때 "우리 며느리는 참 신통해." "우리 며느리는 센스가 있어." 같은 말씀을 한 마디씩 하시게 됐다.

그그저께는 혼자 갔다 와서도 아내의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저께는 어머니의 심술 모드와 마주쳤던지, 내게 짐짓 "이제 어머니께 전 안 가뵙겠어요. 며느리를 못 알아보시는 정도가 아니라 네가 무슨 며느리 자격이 있냐고 삿대질을 하시는데요, 뭐." 심술 모드에 드실 때는 기억이나 정신도 다른 때보다 더 혼미하신 것 같다.

어제 사흘만에 병실에 들어서면서 반응이 어떠실까 궁금했다. 이틀 동안 안 온 것을 기억하고 계실지? 기억하신다면 그에 따르는 감정을 뭐든 보여주실지? 막상 나를 보시고는 반응에 특별한 점이 없으시다. 아직 시간에 대한 의식이 그리 뚜렷하지 못하신 것 같다. 마침 노곤하신 때여서 반응이 강하지 않으신 이유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시간 감각이 꾸준히 유지되시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은 연수가 외할머니를 뵈러 왔다. 영이의 세 딸 중 연수만이 외가를 찾는다. 그리고 연수가 엄마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연수를 보실 때의 반응이 나는 늘 조심스럽다. 지난 초겨울, 어머니 상태가 아직 안 좋으실 때 연수와 그 부모, 세 식구가 뵈러 왔을 때, 어머니가 지 서방은 근근히 알아보시는 눈치였지만, 연수를 보시고는 눈이 둥그래져서 벌떡 일어나실 기세였다. 그토록 오랫동안 어머니 마음을 괴롭힌 딸이라고 인식하신 것이 분명했다.

연수에게 점심 때 오라고 얘기해 뒀는데, 내가 좀 일찍 갔는데도 벌써 와 있었다. 연수 얼굴과 마주치시는 장면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내가 들어가 보니 어머니 기색이 평온했다. 연수를 손녀로 인식은 하시는 것 같은데,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 아내가 와서 며느리라고 하면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이시는 것과 똑같이. 외손녀가, 며느리가,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인지 평상인처럼 분명한 인식을 하실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실 때도 있는 것 같다.

사진첩을 보실 때 영이 사진이 나와도 "내 딸이야." 알아보시면서도 무덤덤하실 때가 많다. 나는 아무래도 영이 얘기를 길게 꺼내지 않게 되는데, 아내 얘기를 들으면 영이 사진을 보며 단편적인 얘기를 하시기도 한단다. 어쩌다 한 번씩 영이 사진을 보면서 말씀을 잃고 생각에 잠기실 때가 있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오랜 고통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실 만큼 집착을 벗어나신 것인지, 아니면 의식의 파편화로 인간관계의 의미를 잃어버리신 것인지.

연수를 볼 때마다 지 서방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울컥울컥 솟는다. 이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일 뿐 아니라 내 마음을 그득하게 채워준 친구. 영이가 보통사람처럼 살아갈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상태에서 그에게 영이와 결혼해 달라고 부탁한 나 자신이 밉다.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절대 그런 부탁을 안할 것이다. 그 친구가 그 부탁을 거두어 달라고 거꾸로 내게 부탁했을 때, 거절당할 지언정 내 스스로 거두는 것은 오빠된 도리로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버틴 독선. 그 죄를 어찌 갚을꼬. 시련 앞에서 사람값이 드러난다. 내가 못할 일을 친구에게 권한 나, 그리고 남이 못할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그. 서로 아껴온 친구 사이였지만 나는 그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이 되었다.

영이가 끝내 아이들 곁을 떠날 때 연수는 학교 들어갈 나이였는데도 말조차 제대로 못하는 아이였다. 장애가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주변에서 했지만, 사회성 없는 에미에 가려있던 문제라는 사실이 에미가 떠난 후 밝혀졌다. 세 아이 다 잘 자라났다. 지 서방과 그 부인에게 한없이 고맙다. 두 분이 아이들을 잘 키워준 덕분에 어머니의 죄, 그리고 내 죄가 그래도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

식사 후 독경집을 꺼내자 어머니는 반야심경만 외우신 후 금강경은 내게 읽어달라고 하신다. 내가 현토식으로 읽는 것을 연수도 흥미롭게 듣는다. 한문 공부를 한 아이기 때문에 처음 보는 금강경이지만 쉽게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네가 한 번 읽어보라고 밀어주니 제법 읽어낸다. 맡겨놓고 옥상에 올라가 담배 한 대 피워무는 내 눈앞에 어머니 곁에 앉아 있는 연수 모습이 자꾸자꾸 떠오른다. 어머니를 잃은 지 20년이 넘는 아이가 어머니의 어머니 곁에서 금강경 읽어드리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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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