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7. 09:34

19개월 병원에 계시는 동안 어머니를 살펴드린 간병인이 (임시로 며칠 봐드린 분들 제하고) 열 손가락으로 모자란다. 그분들을 대해 온 내 태도를 스스로 돌아보며 내 인간관 내지 처세술을 반성할 때가 더러 있다.

가장 두드러진 양상은, 지금 맡고 계신 분을 최고로 여기는 것이다. 이 분 손을 떠나면 어떡하나, 늘 걱정하고 어떻게든 떠날 위험이 적도록 말 한 마디에서 간식거리 챙겨드리기까지 공을 들인다. (간식거리로는 해자부리=해바라기씨가 간편하고도 인기다.) 아내는 가끔 옆에서 웃는다. 돈벌러 온 만큼 다들 열심히 하고, 사람이란 게 대개 다 착한 건데, 왜 그렇게 안달을 하냐는 것이다.

겪어놓고 보면 아내 말이 맞다. 자유로병원 있을 때 한 달 이상 봐드린 이가 넷이었는데, 바뀔 때마다 새로 온 분이 더 좋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봐드린 조 여사에 대해서는 신뢰를 넘어 경의까지 품을 정도였다. 자유로에선 한 분이 살펴드리는 일반실에 계시다가 현대병원에 와선 세 분이 살펴드리는 중환자실에 드셨는데, 세 분 중 말뚝인 김 여사와 박 여사가 조 여사만큼 존경스럽지는 않아도 충분히 믿음직스러웠고, 세 분이 돌봐드린다는 시스템 자체의 장점 때문에 더 마음이 놓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들어온 지 한 달 남짓 되는 주 여사를 놔두고 두 분이 떠날 때 막 걱정스러웠는데, 며칠 안 되어 "주 여사 최고!"를 외치게 되었다. 고참들 밑에서 거들고 지낼 때는 보이지 않던 장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개인적으로 자유로의 조 여사 못지 않은 경의를 품게 되었다. 청결상태 등 중환자실의 운영 기준을 업그레이딩 하면서 새로 온 강 여사, 장 여사가 새 근무처에 쉽게 적응하도록 소소한 일에도 배려하는 태도가 정말 훌륭했다. 강, 장 두 분은 주 여사보다 한 살, 세 살 연상인데도. 두 분이 처음 왔을 때는 좀 어리버리해 보였지만, 이제 주 여사가 빠져도 걱정스럽지 않을 만큼 듬직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주 여사가 그 동안 잘 이끌어준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내도 조 여사와 주 여사의 뛰어난 점을 높이 평가한다. 아내 말로는 '공직'의 경험이 다르다는 것이다. 두 분은 화룡과 연길의 가두판사처(동사무소 내지 구청)에서 공작하던 이들이다. 틀 잡힌 단위(직장)에서 공작한 이들은 공사가 분명하고 경우가 밝다는 것이다. 최소한 그런 척이라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 주 여사가 아무 말 없이 떠난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랑은 몰라도 아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틈나는 대로 붙어앉아 그렇게 재재거리며 친밀하게 지낸 터에. 주 여사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보다 세상 물정을 알 만큼 아는 아내랑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눈치였다.

어제밤 큰형에게 메일 보내며 끝에 이렇게 썼다. "왜 이렇게 떠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분이 그 동안 해온 일에 대해서는 고마울 따름입니다. 곧 떠난다고 하는데, 떠나기 전에 전화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아침에 주 여사에게 전화했다. 목소리 듣자마자 누군지 알아보고, 말 없이 떠난 것을 사과하며 행여 오해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저께 세 분 선생님과 함께 갔을 때 일정이 세워져 있었지만 그 날은 번잡스러운 것 같아 어제 내가 평소처럼 점심때 가면 말하려던 것이 내가 저녁때 가는 바람에 보지 못하고 떠났다는 것이다. 갔다가 한 달이면 또 와서, 현대병원에서 다시 일할 수 있도록 관계자들에게 모두 당부해 놓았다고 한다. 조금 전에 큰형 전화도 받았다며, 자기도 우리에게 고마웠고, 어머님을 다시 살펴드리고 싶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하니, 주 여사가 말하지 않는 뜻까지 이해될 것 같다. 그저께 세 분 선생님들 떠나신 뒤에도 내가 30분은 더 있었으니, 조용히 얘기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저께는 얘기할 생각이 없었고, 어제 출발에 임박해 얘기할 마음이었을 것이다. 왜? 그저께 얘기하면 우리가 금 일 봉이라도 준비할 시간을 주는 셈이니까. 앞서 김 여사와 박 여사가 떠날 때, 내 주머니에 마침 척푼도 없어서 고작 차 태워드리는 데 그쳤다가 며칠 후 잠깐 도로 왔던 박 여사가 다시 떠날 때 차비라도 쥐어 보낸 것도 봤으니까. 우리가 그 동안 다니며 존중하는 마음으로 따뜻이 대하고 아내가 가끔 간식거리랑 전화카드랑 사주고 한 데 만족하며 새삼스레 전별금을 받네 못 받네 하기가 싫었던 마음을 훤히 알겠다. 내가 마침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푼돈이라도 내놓는 건 몰라도 떠나는 줄 미리 알고 뭐든 따로 준비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생각하면, 아내는 현명하고 나는 미련하다. 그런데 어떡하나? 내가 다른 사람들 볼 때도 나처럼 미련한 사람들이 더 정이 가고 좋은 걸. 이렇게 반성할 줄 모르니 생긴 대로 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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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