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러스틴은 세계체제를 중심부(core)-반주변부(semi-periphery)-주변부(periphery)3중 구조로 설명했다. 선진국-중진국-후진국의 통속적 관념을 넘어 그 사이의 구조적 관계를 밝힌 것이다. 세계체제론이 큰 각광을 받은 데는 경제개발정책에 대한 함의가 크다는 이유가 있다. 종래의 관념으로는 어느 나라든 좋은 (자본주의) 정책을 잘 수행하면 모두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세계체제론에서는 구조적 제약을 지적한 것이다. 이 점에서 1960년대에 유행한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을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차우두리와 아부-루고드가 월러스틴 담론의 뼈대를 수긍하면서도 넘어서야 할 한계로 지적한 것은 한 마디로 유럽중심주의다. 16세기 이후 유럽인이 추동한 자본주의 세계체제만을 진정한세계체제로 보는 데 대한 불만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항해시대 이전 인도양의 교역망에서도 세계체제의 특성이 충분히 나타났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애쓴 것이다.

 

15세기 이전의 인도양 교역망이 치밀하게 발전해 있었고, 그 교역을 둘러싼 금융업 등 자본주의 제도들이 고도로 발달해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 연구에서 확인하면서 뒤따르는 의문이 있다. 인도양뿐이었을까? 두 사람 모두 인도양과 특별한 연분을 가진 연구자들이었기 때문에 인도양으로 눈길이 먼저 간 것은 아닐까?

 

세계체제론을 유럽중심주의의 굴레에서 풀어내는 데 참고가 될 사례는 13-14세기의 인도양 외에도 많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제일 먼저 비슷한 시기의 내륙아시아를 살펴보고 싶다. 인도양 못지않게 인적-물적-사상적 교류가 활발했던 지역이다. 그런데 1980년대에는 이 지역에 특별한 연분을 가진 사람들 중에 차우두리나 아부-루고드만큼 학문적 세계체제중심부에 자리 잡은 연구자가 없었다. 그래서 인도양이 먼저 것은 아닐까? 1990년대 이후에는 내륙아시아 지역에 관해서도 이 시각에서 참고할 만한 연구가 나오지 않았을까?

 

토머스 올슨의 <Culture and Conquest in Mongol Eurasia (몽골시대 유라시아의 문화와 정복)>(2001) 서론 한 대목을 읽으며 바다와 초원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생각해 본다.

 

유목민을 시야에 담을 때 상황의 전개에 대한 유목민의 역할은 통상 “소통”과 “파괴”라는 두 개의 상투적 표현으로 정리된다. 전자의 의미는 유목민이 원거리 교통과 통신을 보장하는 광역 평화체제(pax)를 만들어 여러 정착문명의 대표자들이 (마르코 폴로처럼) 유라시아의 여러 문화권을 돌아다님으로써 전파의 촉매가 되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후자의 의미는 반대로, 흉포한 군사력으로 접촉을 막고 문화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4-5쪽)

 

바다에도 소통파괴의 양 측면이 있다. 항로가 열리기만 하면 멀리 떨어진 사회들 사이의 접촉을 쉽게 해주는 소통의 축면이 있는 반면, 상황에 따라 참혹한 재난을 가져오는 파괴의 측면이 있지 않은가. 여러 문명권이 서로 떨어져 있을 때 그 사이의 공간이 바다와 초원이었다. 그 공간의 파괴력이 문명권들을 떼어놓고 있었지만 조건에 따라 소통의 경로가 되기도 했다.

 

초원은 바다와 달리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그래서 두 문명권 사이에 접촉이 일어날 때 유목민이 단순한 택배업자와 달리 제3의 역할을 맡는다는 점을 올슨은 강조한 것이다.

 

하나의 문명권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문명권을 세계로 인식했다. ‘천하라 부르든 움마(Ummah)'라 부르든 사람들이 세계로 인식하는 영역 내에서는 장기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종의 세계체제가 형성되게 마련이다. 하나하나의 체제마다 중심부와 반주변부와 주변부가 있었을 것이다.

 

중심부, 반주변부, 주변부라는 이름 자체가 중심부중심주의’, 중심부가 역사 추동의 주체이며 주변부는 끌려 다니는 객체라는 선입관을 보여준다. 유목민의 역할을 생각하며 나는 중심부, 외곽, 배후지로 바꿔서 부르고 싶다. 크리스천이 말하는 내부 유라시아경계지역(borderlands)'을 각 문명권의 외곽(periphery)’으로서 산업이 미개한 배후지(hinterlands)’와 구분하는 것이다. 외곽의 유목민은 인접한 문명권에 어느 정도 소속되어 있지만 완전히 매인 것은 아니다. 위치와 상황에 따라 둘 이상의 문명권에 함께 속할 수도 있다. 문명과 접촉이 적은 배후지는 미개발 자원의 상태로 남아있다.

 

토머스 쿤이 말하는 정상상태(normal state)’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의 순환이 문명의 역사에도 적용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명의 정상상태에서는 중심부가 역사를 추동하고 외곽의 유목민은 종속적 위치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 단계에 이르러 총체적 변화를 겪을 때는 유목민이 주도적 역할을 맡기 쉽다. 기존 문명에 매몰되어 있지 않고, 다른 문명을 받아들이기 쉽고, 배후지의 자원을 동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몽골제국의 흥기는 그런 상황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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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9.06 17:54

    “중심부, 반주변부, 주변부”라는 이름 자체가 ‘중심부중심주의’, 중심부가 역사 추동의 주체이며 주변부는 끌려 다니는 객체라는 선입관을 보여준다. (11회)

    "중국사에서 농경사회와 유목사회의 관계를 나란히 움직이는 두 개 수레바퀴보다는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의 관계와 비슷한 것으로 나는 본다. 자전거가 나아가는 동력은 하나의 바퀴에서 일어나고 다른 바퀴는 그에 끌려가거나 밀려가는 것이다." (5회)

    끌려가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고,
    끌려가지 않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양자택일을 한다면 어느 시각이 더 우세할지요?

    • 2021.09.06 18:59 신고

      일률적인 서열화를 삼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변화의 과정은 복잡한 것이기 때문에 '대소'의 기준, '강약'의 기준, '선후'의 기준 등 여러 기준을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지요.

  2. 2021.09.06 21:30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