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계의 유럽(서양)중심주의를 반성하는 두 개의 중요한 담론이 1970년대에 나왔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The Modern World-System (근대세계체제)>(4, 1974-2011)와 에드워드 사이드의 <Orientalism>(1978).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세계체제의 한계와 문제점을 살피는 길이 되었고, 사이드의 오리엔털리즘은 근대학술의 문제의식과 방법론이 어떤 굴레에 묶여 있었는지 드러냄으로써 큰 파장을 일으켰다.

 

두 개 담론을 아울러 수용한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 두 가지가 1980년대에 나왔다. 키르티 차우두리의 <Trade and Civilisation in the Indian Ocean (인도양의 교역과 문명)>(1985)과 재닛 아부-루고드의 <Before European Hegemony (유럽 패권 이전)>(1989). 두 책 모두 근대 이전 인도양의 교역망을 중심 주제로 삼은 것이다.

 

차우두리는 서문에서 페르낭 브로델의 <La Méditerranée et le Monde Méditerranéen à l'Epoque de Philippe II (펠리페 2세 시기 지중해와 지중해세계)>(1949)를 모델로 삼았음을 밝혔다. 브로델은 새로운 연구방법을 추구하던 아날학파의 대표적 연구자로, 월러스틴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차우두리가 브로델의 방법론을 계승하되 그 적용 대상을 인도양으로 옮긴 데는 브로델조차 극복하지 못했던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뜻이 있었다.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차우두리의 의지는 그가 인도 출신이라는 사실로 어느 정도 설명된다. 아부-루고드의 경우에도 개인적 이유로 비슷한 의지를 설명할 여지가 있다. 그 부군이 사이드와 함께 팔레스타인 출신의 양대 지성으로 꼽히는 이브라힘 아부-루고드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도 학술계에서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는 길이 이른바 3세계와 특별한 연고를 갖지 않은 학자들에게는 몹시 어려웠던 사정을 돌아볼 수 있다. 차우두리는 초년의 탁월한 동인도회사 연구를 발판으로, 아부-루고드는 도시사회학자로서 카이로 등 이슬람권 여러 도시를 관찰하고 연구한 경험을 발판으로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었다.

 

아부-루고드는 차우두리와 달리 브로델에 대한 비판의식을 분명히 한다. 아래 인용 중 세계-경제(world-economy)"는 브로델이 설정한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브로델처럼 지혜로운 사람도 무의식적인 유럽중심주의적 착오를 피할 수 없었다. “유럽에서 최초의 세계-경제는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사실, “여러 개 세계-경제가 ... 유럽이라는 지리적 영역 안에서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는 사실, 또는 “유럽의 세계-경제는 13세기 이후 몇 차례 모습을 바꿨다”는 사실을 모두 흔쾌히 인정하면서도 그는 내가 보기에 요점이라 할 내용을 놓쳤다. 12-13세기에 유럽이 지중해를 지나 홍해와 페르시아만을 거쳐 인도양, 말라카해협과 중국에 이르는 장거리 교역체계에 끼어들어 세계-경제의 ‘하나’를 빚어내기 전에 다른 곳에는 여러 개의 세계-경제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 세계-경제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유럽이 차츰 손을 밖으로 뻗쳐 더듬어보기 시작했을 때 재부(財富)가 아니라 허공만 움켜쥐었을 것이다. (<유럽 패권 이전> 11-12쪽)

 

7-18세기의 1천여 년 기간을 다룬 차우두리의 책에 비해 13-14세기의 1백년 기간을 다룬 아부-루고드의 책이 16세기 후반을 다룬 브로델의 책과 더 잘 비교된다. 그리고 몽골제국 성립 시점에 문명권들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펼쳐지고 있었는지 살펴보려는 내 과제에도 적합한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다. 13세기에 여러 문명권이 어울려 새로운 현상을 빚어내고 있던 두 개의 큰 마당 중 하나가 내부 유라시아의 초원지대였고, 또 하나가 인도양이었다. 바다 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아부-루고드의 안내를 따라가 본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