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10년간 대학에 전임으로 있을 때 사학과의 동양사 전공자는 나 하나였다. 동양사 강의의 절반가량은 강사를 초빙해 맡기고 나머지는 내가 맡아야 했다. 고대사에서 근대사까지 여러 시대 역사의 강의를 준비하며 동양사의 통시대적 흐름을 어설프게라도 한 차례 파악해 놓아야 했다.

 

대부분 역사학도들이 지역과 시대를 기준으로 연구 분야를 설정하는 것과 달리 나는 좁게는 천문역법, 넓게는 과학사상이라는 통시대적 주제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시대 역사를 공부할 기회를 반갑게 활용했다. 넓은 범위를 파악하는 것이 처음에는 꽤 힘들었지만, 몇 해 매달려있다 보니 동양사 분야에 어떤 주제들이 떠올라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고, 중국사의 굴곡도 머릿속에 대충 그려지게 되었다.

 

그때 그리던 중국사의 굴곡은 왕조 중심의 스케치였다. 진 시황과 한 무제의 제국 건설에 이르는 과정을 중국문명의 성숙 과정으로 보고, 다른 문명권에 비해 제국의 역할이 꾸준히 지켜진 것을 중국사의 특성으로 보는, 그때 세운 관점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윤곽만을 그려놓은 이 스케치의 구석구석을 보다 정밀하게 채워 넣는 작업을 그 후 40년간 해온 셈인데, 지금까지도 잘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원()나라다. 다른 구석들은 처음에 막연하다가도 기존 연구를 찾아보면 차츰 명료해지는데, 이 구석은 그렇지가 못했다. 왕조 중심의 틀로는 어떻게 해도 몽골제국의 특성과 의미를 제대로 그려낼 길을 찾을 수 없다.

 

왕조사관의 극복을 중국사의 과제로 더러 이야기하는데, 나는 왕조사관을 극복하기보다는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제국의 역할이 꾸준히 지켜진 것이 중국사의 특성인 만큼, 왕조의 성쇠에서 그 흐름의 윤곽을 읽을 수 있다. 다만 왕조에 완전히 묶여있던 전통시대 역사서술의 한계를 넘어설 필요가 있는데, 나는 외부세력들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의 길을 찾고자 하는 뜻에서 오랑캐의 역사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오랑캐의 역사작업의 가장 큰 목적은 이른바 전통시대근대사이의 연속성을 찾는 것이다. 전통시대에는 중화제국이 만만한 오랑캐들만을 상대하고 지냈기 때문에 제국의 틀이 지켜졌는데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양상이 나타난 근대에 들어와서는 외부의 충격이 너무 커서 제국의 틀이 무너지기에 이른 것으로 보는 것이 역사학계 안팎의 통념이다.

 

그러나 엄밀히 살펴보면 이 통념에 다시 생각할 점들이 있다. 3세기 초에 한()제국이 무너지고 6세기 말 수()나라의 통일까지 근 4백년간 중화제국의 틀이 지켜진 것이 확실한가? 지금의 중국이 제국아닌 인민공화국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화제국의 특성을 이어받은 측면도 있지 않나? 근대의 경험이 전통시대의 어떤 경험과도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근대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이 근대의 충격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문명의 연속성을 과소평가해 온 것은 아닌지 되짚어보고 싶은 것이다.

 

이런 목적을 놓고 볼 때, 지금까지 나 자신 많은 수수께끼를 품고 있던 몽골제국에서 큰 열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세 이전의 제국은 각 문명권 내의 정치질서였다. 여러 문명권을 포괄하는 전 지구적 의미의 세계제국은 문명의 세계화가 이뤄진 근대세계의 특이한 현상이다. 그런데 몽골제국은 그런 세계제국에 접근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바로 그 특성이 중화제국의 틀로는 포착이 되지 않는 것이다. 몽골제국의 성립을 문명의 세계화과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온 근대라는 시기의 역사적 의미에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