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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과 아이켈먼의 제안은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학계가 종래의 제약을 넘어설 길을 보여준다. 하나는 현대과학의 성과를 활용해서 문헌자료의 구속을 벗어나는 길이다. 기후학, 지질학, 생태학 등 여러 분야의 성과에 입각해서 옛날 사람들이 처해 있던 중요한 조건들을 밝혀내는 것이다. 생활과 생산의 조건을 기준으로 지역을 구분해서 역사의 주체를 설정한다면 국가주의 등 근대적 제 관념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길도 열릴 수 있다.

 

식물 자원을 경영하는 농경과 동물 자원을 관리하는 목축은 문명 발생의 기반이 된 생산양식이었다. 이후 문명의 발전은 잉여생산이 빠르게 자라난 농경을 주축으로 이뤄졌다. 농업의 확장에 따라 목축은 농경이 어려운 조건의 한계지역(고산지역, 건조지역, 한랭지역)으로 밀려나면서 유목의 형태로 발전했다. 크리스천이 말하는 ‘내부 유라시아’나 아이켈먼이 말하는 ‘중위도 건조지대’는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산업활동(광공업과 산업화된 농업)이 밀려들기 전까지 농경의 한계 밖에 있던 저개발 지역을 많이 품고 있어서 유목민의 중요한 활동무대였다.

 

크리스천과 아이켈먼 등 인류학자들의 유목사회 연구가 종래 역사학에서 주변부에 파묻혀 있던 유목사회를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반갑다. 그러나 유목사회와 농경사회를 기계적으로 대등한 위치에 놓는 관점은 불만스럽다. 나는 근세 이전 문명의 전개에서 농경사회가 주동적 역할을 맡았다는 생각이고, 그래서 ‘그림자 제국’, ‘그림자 문명’ 같은 그림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 관점의 차이가 ‘경계지역(borderlands)'에 대한 시각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크리스천도 경계지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렇게 썼다.

 

그 결과 선사시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부 유라시아 역사의 동력은 대부분이 그 남쪽 끄트머리에서 나타났다. 접경지역에서 일어난 충격이 안쪽으로 전해질수록 힘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안쪽 지역일수록 외부 유라시아의 영향을 적게 받고 ‘내부 유라시아’ 식 생활방식을 더 뚜렷하게 나타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내부 유라시아를 외부 유라시아의 영향력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여러 겹의 동심원으로 나눠 보는 것이 여러 면에서 유용하다. 인구가 가장 조밀하고 역사적 변화가 가장 격렬했던 지역은 외부 유라시아와의 경계선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 깊은 안쪽에 자리 잡은 사회들은 내부(“외부”의 착오인 듯) 유라시아에 보다 가까운 사회들에게 노예와 물자를 제공하는 인적 저수지 역할을 맡았다. 그런 식으로 내부 유라시아의 역사에 지리적 위치에 따른 서열이 나타났고, 이제부터 서술할 역사에서 외부 유라시아에 가까운 지역에 중점이 놓이게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17쪽)

 

크리스천은 이 경계지역이 가진 본질적 불안정성이 유라시아의 수천 년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맡은 사실과 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근대사에서는 비슷한 성격의 경계지역이 백여 년밖에 존재하지 않은 사실을 대비시키고 그 이유를 자문자답한다.

 

역설적인 질문이 일어난다. (내부 유라시아의) 경계지역에서 변방의 불안정성이 그토록 안정된 모습을 보인 까닭이 무엇일까? 대답은 분명하다. 내부 유라시아와 외부 유라시아 사이의 생태적 구분이 워낙 확연하기 때문에 근대 이전에는 어떤 특정한 형태의 사회도 군사적 측면, 인구 구성 측면, 문화적 측면에서 결정적인 이점을 누릴 수 없었던 것이다. (17-18쪽)

 

이런 관점 때문에 나는 크리스천을 역사학자보다 인류학자로 보는 것이다. 역사학자라면 신대륙에서 경계지역이 형성된 시점이 인류 역사가 근대로 접어드는 길목이었다는 사실에서 더 분명한 대답을 찾을 것이다. 생태-지리적 조건의 차이가 인간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전체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신대륙의 변방이 빠르게 무너져 가던 시점에는 유라시아의 변방도 그 못지않게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크리스천은 사람 아닌 땅을 역사의 주체로 보는 것 같다. 그가 내부 유라시아의 안쪽 광대한 영역을 본체로 보고 경계지역을 종속적인 것으로 보는 데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인구가 많은 경계지역에 주동적 역할이 있었고, 안쪽의 동토-삼림지대는 부차적 역할을 맡은 배후지로 본다. 기후-생태 조건을 기준으로 ‘내부 유라시아’ 지역을 설정한 것은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내부 유라시아 전체를 외부 유라시아와 대비되는 하나의 덩어리로 보아서는 역사의 흐름에 접근이 어렵다. 그가 말하는 ‘경계지역’을 여러 문명권의 외곽지역으로 이해하면서 그 외곽지역들이 하나의 광대한 배후지를 공유한 것으로 보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문명의 발전은 문명권의 확장을 가져온다. 초기에는 문명권 밖에 있던 공간과 인구가 문명권 안으로 계속 흡수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명권의 오랜 중심지보다 새로 편입된 외곽에서 새로운 확장의 추동력이 일어나게 된다. 외곽에서 발생한 새로운 상황 속에서 확장의 메커니즘이 도출되기도 쉽고, 확장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도 외곽에서 쉽게 획득되기 때문이다. 농경문명의 경우 농업기술의 발전이 확장의 메커니즘이 되고 그 기술에 의거한 생산량 증대와 농경지 확대가 물적 자원을 제공해 준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