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에 시집가 집안을 일으킨 며느리 이야기는 여러가지 있다. 그중 어느 며느리는 식구들의 나들이 때마다 검불 한 오라기든 돌멩이 하나든 뭔가를 들고 들어오도록 규칙을 정했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물자(物資)를 활용해 집안을 부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옛날얘기 시대가 아니라 30년 전을 생각해도 물자를 대하는 우리 태도는 무척 많이 변했다. 그 시절에는 헝겊조각 하나, 나무토막 하나라도 언젠가는 쓸모있을 때가 있으리라 믿고 열심히들 모아뒀다. 쓸모가 있을지 모르는 물건을 버린다는 것은 죄악으로 생각했다. 배설물까지도 그랬다. 대도시 중심가로 '똥차' 가 다니며 오물을 모아 근교 농촌에 팔았다.

 

그런데 지금은 농촌까지 수세식변기가 보급돼 예전엔 값진 비료로 쓰이던 오물이 환경의 부담만 되고 있다. 음식찌꺼기도 마찬가지다. 상태가 괜찮으면 거지에게 주기도 하고 좀 못하면 사료로 쓰고 영 못쓰게 된 것은 두엄에 넣곤 하던 음식찌꺼기가 지금은 도시의 애물단지 정도가 아니라 재앙이 되고 있다.

 

수전 스트라서의 <쓰레기 사회사>는 물자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가 두 세기 동안 변해 온 자취를 더듬은 책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풍요의 나라' 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모으면 자원' 이던 것이 '버리면 쓰레기' 로 변했다. 미국이 1차대전 후에 겪은 이 변화를 다른 나라들은 2차대전 후 뒤쫓아 겪기 시작했고, 그 대열의 뒤쪽 저만큼에 우리나라도 끼어 있다.

 

'모으기 시대' 에서 '버리기 시대' 로 넘어가는 변화의 상징물로 스트라서는 생리대를 꼽는다. 킴벌리클라크사가 1920년 최초의 상품화된 생리대 '코텍스' 를 출시한 것은 1차대전 군수물자에서 재고로 남은 붕대를 소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 전에는 누구나 못쓰게 된 무명옷을 잘라 생리대를 만들었고, 생리대에 새 무명을 쓰는 것은 낭비로 죄악시됐다. 그런데 코텍스는 새로 보급된 세균학 지식에 기대 '위생냅킨' 이라는 이름으로 종래의 죄의식을 타고넘었다. '위생' 은 새로 열리는 공장제품시대의 강력한 구호였다. 1921년부터 2년간 미국 가정의 욕조 수가 곱절로 늘어난 사실도 스트라서는 지적한다.

 

자연에 대한 문명의 승리를 믿는 마음이 절정에 달해 있던 시절이었다. 질병을 비롯한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은 문명인의 기본권으로 여겨졌고 과학, 기술, 공장은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가로막아주는 믿음직한 호위대 노릇을 했다.

 

중산층의 향상심도 이 변화에 힘을 보탰다. 똑같은 공장제품을 쓰는 품목이 늘어남에 따라 상류층과 중산층 사이의 경계선은 전보다 흐려졌다. 편리한 가전제품의 보급은 하인을 두고 사는 상류층의 특권도 빛을 바래게 했다.

 

스트라서는 변화의 실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당시의 광고문을 많이 활용한다. "당신의 토스트를 구워줄 하인, 월급도 필요없고 부리기도 쉽습니다" 같은 전형적인 예에서 당시 중산층이 느끼던 신분상승의 쾌감을 살필 수 있다.

 

광고문과 함께 스트라서가 많이 활용한 자료는 가정잡지 기사들이다. '생활의 지혜' 를 전파하는 기사들은 물자를 둘러싼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물자의 가내재활용방법을 가르쳐주던 기사들이 1880년대부터 잉여물자를 모아 재활용공장에 파는 방향으로 바뀌고, 1930년대부터는 싸고 실속있는 상품선택으로 '알뜰주부' 의 길을 열어준다. 음식찌꺼기로 집안에서 가축을 키우던 단계로부터 모아서 소규모 비누공장이나 돼지 사육장에 파는 단계를 거쳐 찌꺼기분쇄기를 사 쓰레기수거비를 절약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세태변화가 이 기사들에 비쳐지는 것이다.

 

대량생산체제와 상품경제의 발달은 현대인의 생산활동과 소비활동을 격리시켜 왔다. 이에 따라 쓰레기는 쓰레기고 자원은 자원일 뿐, 소비의 여분이 생산의 원료로 돌아가는 물자의 리사이클링은 구조적으로 봉쇄돼 온 것이다.

 

천연자원의 채취를 가속적으로 늘어나게 만드는 이 구조적 문제를 언제까지 지탱해 나갈 수 있을지, 현대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심각한 질문의 하나다. 1999. 10. 7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