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 중 오늘날 미국인들이 공개적으로 부끄러워하는 대목이 둘 있다. 그중 하나는 건국 후 90년간 지속된 노예제도고, 또 하나는 1950년부터 4년간 휘몰아친 매카시 선풍이다.

 

후자는 전자에 비해 비교도 되지 않게 조그만 사건이었지만 미국이 세계적 초강대국으로 자리 잡은 뒤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인권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미국사회에서 매우 예민한 문제다. 몇 달 전에도 엘리아 카잔의 아카데미 특별상 수상을 둘러싸고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매카시즘을 다룬 실명 역사소설 한 권이 지난 달 나와 미국 지식층에 적지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극우 보수논객이자 소설가 윌리엄 버클리가 낸 '빨갱이사냥꾼' 은 한 마디로 조지프 매카시를 복권시키려는 책이다.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소설의 기법을 최대한 억제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매카시즘을 죄악시하는 사회 앞에 매카시의 문제제기가 정당했다는 저자의 믿음을 정면으로 내놓는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소설기법에 따라 설정한 허구적 인물은 주인공인 본티쿠 한 사람뿐이다. 매카시의 위기의식에 공감해 그 보좌관직을 자원하는 건실한 청년 본티쿠는 저자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다. 매카시를 옹호한다는 기본목적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도 매카시의 약점과 문제점을 감추지 않고 지적한다는 점에서 소설가 내지 역사가로서 버클리의 진지한 자세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존서점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독자는 "매카시를 인정한다면 나치를 인정하지 못할 이유가 뭐냐" 고 비난하면서도 "작품성만은 정말 대단하다" 고 탄복했다.

 

1950년 2월 "미국 국무성 안에 수두룩한 공산첩자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 고 선언해 온 미국을 '적색공포증 (red scare)' 에 몰아넣은 매카시 상원의원은 한 순간에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됐다. 그의 드라마틱한 고발 앞에 미국사회는 광란상태에 빠지고 미국의 법질서는 사상 유례없는 파탄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고발은 근거가 없거나 심하게 과장된 것으로 밝혀지고 1954년말 매카시는 동료의원들의 손으로 상원에서 제명당했다. 그는 3년 후 49세의 나이에 알콜중독증으로 죽었다.

 

무절제, 무책임하고 독선적, 이기적인 인물로 역사에 각인된 매카시를 인간적 이해가 가능한 대상으로 그려보이려고 저자는 무진 애를 쓴다. 무절제한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고발이 시의적절한 것이었음은 보수논객으로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의 고발이 궤도를 벗어난 것은 의리 깊은 성격과 지나친 책임감 등 '인간적 약점' 때문이었으며, 사욕을 위해 자신의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한 일도 없음을 버클리는 강조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매카시에 대한 버클리의 존경심을 전해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로서 주제를 대하는 버클리의 진지한 자세에는 경의를 금할 수 없다. 또한 매카시즘을 아무 생각 없이 죄악시하기보다 이 '매카시를 위한 변명' 을 읽어보면 매카시즘의 죄악성에 대해 더욱 깊이있는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매카시즘의 맹목적 매도 중에는 매카시즘 못지않은 무책임한 선정성도 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버클리가 그리는 매카시는 '싸나이' 다운 야심적 정치가다. 미미한 출신으로 대단한 출세를 했지만 더 큰 출세욕에 끝없이 쫓긴다. 이것은 사실 많은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정치가의 이미지다. 지금의 백악관도 바로 그런 인물이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1999. 7. 8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