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8. 10:33

어제 점심때 가 뵙고 마음이 놓였다. 쓰러지신 후 2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내가 어머니께 제일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생활을 함께 하는 간병인 여사님들이 어떤 면에선 제일 가까운 분들이지만, 병실 밖 세상과의 관계는 나를 통하지 않으실 수 없게 되었다. 한 때 그분이 내 보호자셨던 것처럼 이제 내가 그분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런데 보호자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체력이 유지되신다 하더라도 생활의 의미가 극도로 위축되실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생존'에 가까운 상태.

4개월 전 회복이 시작되신 이래 어머니의 '생활'은 꾸준히 발전해 왔다. '또 하나의 인생'을 사시게 된 것으로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 기억력은 정상인과 다르시지만, 쓰러지시기 전 절에서 지내실 때에 못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이고, 사고력은 그 때보다도 훨씬 나으신 것 같다. 음식과 노래, 농담 등에 대한 감각도 정상인 부러우실 것이 없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에서 토요일까지, 회복되신 기력이 당신 자신을 괴롭히는 쪽으로 작동하는 일이 많았다. 요 몇 달 동안 어머니에겐 분노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실수로 아프게 해드렸거나 할 때 순간적인 반응을 보이시는 것 외에는 어떤 가치나 원칙에 대한 집착 때문에 크게 괴로워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가치와 원칙을 아끼는 마음은 있지만, 그것이 손에 닿지 않는다면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초연한 자세로 보였다.

그런데 요 며칠 동안은 음식을 요구하는 태도부터 달랐다. 끝없이 "더!"를 외치시고, 거절당하면 극한적인 분노를 드러내셨다. 인생에 불만을 느끼시는 것으로 나는 생각했다. 음식, 노래, 농담을 여유롭게 즐기시던 태도가 사라졌다. 당신의 생활을 불행한 것으로 규정하시고, 생활을 행복하게 누릴 희망과 노력을 포기하신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나랑의 소통도 벽에 부딪친 것 같았다.

그저께 토요일 저녁때도 그런 상태셨다. 그러던 것이 어제는 많이 달라지셨다. 과격한 태도는 여러 모로 남아 있어도 그리 심하지가 않고, 그 밑에 두텁게 깔려 있던 분노가 많이 삭아든 것 같았다. 뻑하면 소리를 지르시고, 웃음기도 별로 담기지 않은 것이었지만, 극한적인 느낌은 사라져 있었다. 숟갈질 재촉도 기계적인 것이지만 짜증이 크게 담겨 있지 않았다. 후식을 좀 적게 드리는 편이 나을까 해서 눈치보며 양을 줄였지만 별로 개의치 않으신다. 금강경도 열심이 덜하시고 전보다 좀 작은 분량 읽은 뒤에 그만 하자고 하셨지만 거부감을 나타내지는 않으셨다. 그리고 노래를 불러드리니 예전과 별로 다름없는 태도로 빠져드신다. 한 곡 끝날 때마다 "네가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를 줄이야!", "야, 넌 어째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냐?" 능청이 아니신가 싶을 정도의 과장스러운 극찬이 별로 나오지 않으실 뿐이다.

바로 결정한 것이 물리치료 중단이었다. 금요일에 참관해 보니 30분간 치료사가 얘기를 나누는 것뿐이었다. 아마 신체 자극과 정신적 자극을 병행하는 것인데, 신체 자극을 어머니가 아프다고 난리를 피우시니까 정신적 자극만 시술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대화 요법을 쓰기엔 치료사가 너무 어렸다. 내가 보고 있는 앞에서도 자연스러운 응대를 못하는 것이, 인생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이해하는 범위가 너무 좁아서 그런 것 같았다. 일기에도 이따금 적은 예가 있지만, 요즘 어머니는 농담도 왕년의 경지를 거진 회복하고 계시다. 어린애 장난 같은 수작에 매여 있는 것이 불편하고 불쾌한 시간이 되지 않으실 수 없다.

오늘은 남지심 선생님이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점심때 맞춰서 갔다. 남 선생님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함께 병실에 들어섰다. 어머니는 어제보다도 마음이 편안해 보이셨다. 남 선생님을 알아보고 차분하게 반기신다. 이런 분 찾아오시면 물리치료보다 백 번 낫다. 지금의 어머니 상태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셔도 어머니 기질과 성향을 잘 알고, 또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도 어머니 못지 않게 넓고 깊게 이해하시는 분. 남 선생님이 어머니와 놀아드리는 동안 나는 닥터 한을 만나 물리치료 중단 방침을 의논했다.

아마 앞서의 일기를 뒤져보면 확인되겠지만, 남 선생님의 이번 방문은 꽤 오랫만이었다. 전에 와서 뵐 때와 크게 달라지신 모습에 무척 기뻐하신다. 그래서 음식에서부터 명상음악까지 어머니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드릴 길을 떠올리기 바쁘시다. 이런저런 제안을 나는 고맙게 받아들이면서도, 어머니 행복을 더 키워드리기 위해 지나친 노력을 기울일 생각은 없다고 말씀드렸다.

말씀드리고 나니 생각이 뒤를 따른다. 어머니 틀니를 병실에 갖다놓은 것이 한 달은 되는 것 같다. 틀니를 끼시면 음식을 즐기실 수 있는 범위가 대폭 늘어난다. 그런데 지금 틀니 없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범위의 음식만을 드시면서도 어머니는 충분한 즐거움을 얻고 계신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음식을 즐기시도록 틀니를 넣어드리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되실까? 그분의 주관으로는 행복이 크게 늘어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음식의 범위가 넓어진 상태에 맞춰 기대치가 늘어났다가 무슨 사정으로든 다시 음식의 범위를 줄여야 할 필요가 생기면 그 때의 상실감이 지금 늘어날 수 있는 행복감보다 비교도 안 되게 클 것 아니겠는가?

나는 어머니의 지금 생활에 쓰러지시기 전의 인생과 구분되는 '제2의 인생'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전에 번뇌를 느끼시던 일, 예를 들어 영이 일을 누가 언급하거나 생각이 떠오르실 때, "불쌍한 것" 하고 한숨을 쉬실 뿐, 그 걱정 때문에 음식맛을 잊어버리지 않으신다. 지금 생활에서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따로 있는 것이다. 평생 끔찍이 좋아하시던 음식을(그런 게 있는지도 나는 모르지만) 가시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대접하기 위해 안달할 필요가 없다. 과자로는 웨하스와 강정, 과일로는 바나나와 딸기 등 틀니 없이 드실 수 있는 것, 그리고 각종 유동식으로 '충분히' 행복하시면 됐지, 기록적인 행복을 누리시도록 번잡스러운 일 벌일 생각이 안 든다.

그러나 이제 날이 더 좋아지면 고민이 또 생기겠지. 휠체어에 태워 산책 모실 만한 범위 안에 꽃이 흐드러지게는 아니라도 차분히 감상하실 만한 데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생각 하면 자유로병원이 그리워진다. 남 선생님이 한 번 장애인 택시를 대절해 꽃구경을 모시겠다고 하는데, 어찌할 것인가. 어머니가 귀찮아 하실 만큼 내가 자주 대절해 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그런 좋은 호의를 사양할 수도 없으면서 행여 또 다른 종류의 잔치 후유증이라도 겪지 않으실까 걱정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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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18. 10:27

형들이 다녀간 뒤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신다. 음식 더 달라는 것을 비롯해 분노의 표현이 극단적이 될 때가 많다. 별 것 아닌 일이나 아무 이유 없이도 역정을 내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신다. 금강경을 읽어드리거나 노래를 불러드리면 웬만큼 가라앉으시지만, 조금 지나면 무슨 꼬투리든 찾아 심술 모드로 금세 들어가신다. 음식 욕심도 즐기는 선을 넘어 맹목적인 탐욕에 가깝게 나타내실 때가 많다.

무엇보다 간병인들 눈치가 보인다. 호통을 치셔도 전처럼 장난기 있는 것이 아니라 역정기가 뚝뚝 흐르고, 쌍욕까지 불쑥불쑥 끼어드니 아무리 직업으로 하는 일이라도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분들이 좋은 기분으로 대해 드리지 못한다면 보살핌의 질과 양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아내와 내가 기회만 있으면 좋은 말로 여사님들 비위를 맞춰주려 애쓰는데, 그분들은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 준다. 자기네에겐 그리 심한 태도를 안 보이시는데, 왜 아드님과 며느님에게 그리 박하신지 모르겠다고.

사흘 전(수요일) 작은형이 다녀간 뒤로 문제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점심 때 아내가 다녀오고 저녁때 내가 갔는데, 그 사이에 다녀갔다고 한다. 간식 권하는 일에 여사님들이 참견하는 일이 좀체 없는데, 식사 후에 과자를 권해 드리려 했더니 방에 있던 두 분이 모두 나서서 오늘은 그만 권해드리라고 한다. 옆에서 보기에 걱정스러울 만큼 많이 대접해 드렸던 모양이다. 형이 매주 들르겠다고 한 것이 진심인 모양이라 반갑기는 한데, 어머니랑 노는 방법에 관해선 한 차례 의견을 얘기해 줘야겠다.

지난 월요일부터 시작한 물리치료에 자극받으신 면도 있을 것 같다. 지난 주 닥터 한에게 물리치료 받으시는 게 좋을지 한 번 검토해 봐 달라고 부탁해서 받으시게 된 것인데, 2시에 6층의 치료실로 모셔가 30분간 받으신다. 별건 아니다. 치료사가 그림을 보여드리며 말을 시키고 팔을 조금 주물러드리는 정도다. 그런데 오랫만의 자극이기 때문에 예민하게 느껴지시는 것 같다. 다음 주에는 일단 중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제 참관해 보니 치료사의 교양 수준이 낮아 나라도 짜증이 날 만한 대목이 종종 나온다. 그저께 아내가 참관할 때 어머니가 폭발하시는 것을 봤다는 대목은 진짜 심했다. 학력, 경력을 묻다가 "할머니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셨으면 부자시겠네요." 하는 소리에 어머니가 펄펄 뛰시더라고.

오늘은 점심때 아내가 갔다가 영 풀이 죽어서 돌아왔다. 얘기를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얼러서 입을 열게 하니 막 쏟아져나온다. 왕년에 며느리마다 못 살게 구시던 진면목이 되살아나신 듯하다. 이걸 반가워할 일인지? 회복은 회복이신데.

6시 조금 넘어 병원으로 갔다. 어제보다도 나와의 커뮤니케이션에 흥미가 줄어들어 보이신다. 뭔가 휘황한 일에 정신이 쏠려 있는 듯하고, 불쑥 밑도끝도 없는 얘기를 내게 던지시고는 원하는 응대를 해드리지 못한다고 버럭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신다. "내가 그 동안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으니 너, 지금부터 내 예언을 들어라. 이 예언을 절대 믿어야 한다." 이렇게 시작하시고는 "그 사람 성은 누를 황이다. 그리고 이름 둘째 글자는 일천 천. 너 그런 사람을 아느냐?" 이름 끝자가 뭐냐고 여쭈니 터 기라 하시고, 그런 사람 모른다고 하니까 어째 모르냐고 역정. 그리고 말씀이 끊어지실 때는 오른 팔을 위로 뻗어 뭔가를 가늠하며 쳐다보시는 듯이 천장을 바라보신다. 그러다가 "이쪽 절반, 이 방은 너희가 쓰고, 저쪽 방은 걔랑 내가 쓸 테니 너희는 우리쪽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영이 얘기를 하시는 것 같다.

형들이 오기 전까지 단순한 생활패턴이 조금씩 확장되는 가운데 생각과 느낌의 범위가 실질적 감각의 뒷받침 위에서 차분히 늘어나고 있던 것이 며칠 사이에 추상의 범위로 넘어가 버린 것이 아닐지? 당분간 자극을 좀 줄여드려야겠다. 우울한 기분을 느끼실 때가 있는 것도 회복의 한 측면이겠지만, 요즈음의 맹목적인 분노는 너무 불안정한 양상을 보이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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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18. 10:24

외삼촌, 외숙모와 이모가 벼르고 벼르다가 찾아오셨다. 큰형이 다니러 온단 말씀을 듣고 큰형도 볼 겸 어제로 날을 정해 찾아들 오신 것이다. 외삼촌이 80세, 외숙모와 이모가 76, 77세. 어머니 손아래라서 잘 실감이 나지 않아 그렇지, 막상 생각해 보면 나이 드실 만큼 드신 노인분들이다. 11시 반에 전철역으로 모시러 나갔는데, 용인 사는 외삼촌 내외는 그렇다치고, 여주 사는 이모는 새벽 6시반에 출발하셨단다.

얼마 전 한 차례씩 전화 통화들을 하셨기 때문에 웬만했지, 지난 늦가을 기력이 제일 떨어지셨을 때 와 뵌 데 비하면 완전히 '살아 돌아오신' 누님이요 언니시다. 이렇게 한 차례 대면하고 나면 이승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시지만, 그래도 기쁜 건 기쁜 거다. 병원 부근의 중국집에서 형이 짐심 대접을 한 뒤 전철역으로 다시 모셔드렸다.

이모님이 내리면서 봉투를 하나 안겨주신다. 오실 때마다 크든작든 봉투 하나는 꼭 안겨주시는 이모님. 자식 없이 이모부님 먼저 보낸 지 십여 년 되는 이모님을 우리가 전혀 살펴드리지 못하는 게 생각날 때마다 안스러운 일인데, 거꾸로 이렇게 받는다는 게 정말 염치가 없다. 그래도 언니 위하시는 뜻이니 따를 수밖에.

큰형은 하루를 병원에서 살았다. 아침 먹고 데려다준 뒤 집에 돌아와 있다가 점심 때 아내와 함께 노인분들 모시고 가 점심식사 한 뒤 혼자 병실로 돌아갔다. 저녁때 가 보니 모자 간의 교류가 계속되고 있다. 어머니도 다들 점심 먹으러 나간 동안 외에는 쉬시지 않고 형과 응대를 하셨다니, 노곤하실 만도 한데 그냥 쌩쌩하시다. 저녁식사 후에도 두 시간 동안 이야기도 주고받고, 장난도 치시고 하다가 여덟 시 가까이 되어 내가 금강경을 읽어드리자 눈꺼풀이 내려오고 이윽고 코를 골기 시작하신다. 교수 시절 학생들 사이에 '수면제'로 통하던 내 강의 실력이 아직도 녹이 슬지 않았다.

아내가 저녁 일 나간 날이라 형과 굴밥집 가서 늦은 저녁을 먹고 들어왔는데, 컴 앞에 조금 앉았다가 형이 먼저 자겠다기에 나이트캡 한 잔 같이 하자고 앉았다가 이야기가 길어졌다. 1년 사이에 내 일에도 변화가 많이 있었지만 형 일에도 큰 변화가 있어서 얘깃거리가 많았다. 군사산업 분야에서 30여 년 일해 온 끝에 이제 연구소와 회사를 떠나 단독으로 의회가 지원해 주는 프로젝트를 몇 년간 운영하게 되어 일에서 보람을 찐하게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보람을 느낀다니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일에 너무 시달리는 것 같아 안됐기도 하고, 이제 은퇴해서 한국 들어오면 내가 어머니 인계하고 중국 가기도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느낀다.

어제 아내가 드디어 작은형을 붙잡았다. 큰형과 내가 여러 날 전부터 통화를 시도해도 받지 않던 사람이 어쩌다 아내 전화를 받았고, 큰형 와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오늘 오겠다고 했단다. 그러더니 오늘 12시에 정말로 나타났다.  설 무렵에 와서 문앞에 선물세트 내려놓고 간 일을 추궁하니 순순히 시인한다. 문 두드려보지 않은 것은 차치하고, 어째 전화도 안 돌려보고 내뺐냐 하니까 전화번호를 잊었다면서 전화번호를 적어 달란다.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 아침부터 출근해 있던 큰형과 함께 오랫만의 3형제 사열식을 가졌다. 작은형 얼굴을 보자 어머니는 "어! 이 사람 왔구만, 도망 참 잘 다니는 사람이지!"로 시작해 즉각 농담 모드로 진입하신다. 큰형 보고 반가워하시는 것과도 완연히 다른 분위기다. 말씀을 하시면서든 들으시면서든 작은형 바라보시는 눈매에는 내내 생글생글 웃음기가 떠나지 않으신다. 그 속 편한 작은형도 꽤 놀라고 감동먹는 눈치다. 몇 주 전 통화가 되었을 때 내가 회복되신 상황을 얘기했었지만, 이 일기를 받아보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런 정도로 신나게 놀고 계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미워서 내가 일기를 안 보내준 게 아니다. 메일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 자기 말로는 두 달 정도마다 메일함을 열어본다고는 하는데, 지가 보고 싶은 것만 빼 보고 뭔지 모르겠는 것은 몽땅 바로 버리는 것 같다.

두 시쯤 되어 더 놀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를 겨우 달래놓고 형들을 집으로 데려와 점심을 같이 했다. 정병준 교수가 아버지 글 모아놓은 것을 보고는 작은형도 놀란다. 작업 시작한 후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도 필요 없는 건 잘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이니까, 결과물을 보고 놀랄 수밖에. 내가 아들 노릇 하는 것과 스스로 비교하는 마음이 신선 입장에서도 조금은 드는 눈치다.

그런 낌새를 놓치지 않고 큰형과 내가 협공에 나섰다. 어머니 표정 봐라, 둘째는 어머니에게 특별한 아들인데, 인생에 큰 지장 없으면 아들 노릇 좀 하라고. 나는 어젯밤 큰형과 나누던 이야기에서 연장해, 앞으로 내 일은 중국에 건너가 지내며 하는 편이 좋은데 너무 오래 붙잡혀 있어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작은형이 이제 한 몫 해주면 내가 너무너무 행복해지겠다고. 둘러댈 말도 없으니 응락은 한다. 매주 강의하러 서울 올라오는 길에 꼭 어머니 뵈러 오겠다고. 그런 응락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내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듣기 좋은 걸 어떡하나. 그리고 또... 혹시 아나?

점심 후에 형들을 병원에 데려다 놓았는데, 지금 막 작은형이 먼저 돌아왔다. 잠깐 어머니 상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중이야 어쨌든 지금은 어머니 자주 와 뵙고 싶은 마음이 돈독한 것 같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어머니 행복이야 끝내주시는 거지. 정말 그 편애는 스스로도 어쩌실 수 없는 것 같은데, 이 대목에서 편애의 보람을 얼마만큼이라도 누리실 수 있었으면.

작은형한텐 이 일기 쓴단 얘기 안했다. 앞으로 행실 봐서 보여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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