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9. 13:32
 

새로운 재간을 개발하셨다.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다.

울상으로 찡그리고 눈물을 흘리실 때 줄줄 흐르다시피 하는 것에 비해, 흐뭇한 웃음 속에 지긋이 감은 눈가에 비치는 눈물은 하품 끝에 번져나오는 눈물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미심쩍었다. 그런데 어제저녁에는 하품의 눈물과는 다른 웃음의 눈물이란 확인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찡그리고 우시는 본격적 울음은 며칠 전부터 아주 드물게 되었다.

그저께 갔을 때는 잠깐만 뵙고 나왔다. 요새 감기 걸린 환자가 여러 분이라, 보호자 방문을 최소화하도록 권하고 있다는 간호사의 안내를 듣고, 협조하는 자세를 한 차례 과시하기 위해 재촉도 받기 전에 금방 돌아섰다. 상태가 괜찮으신 것을 확인하고는, 한 시간이라도 자식이 곁에 있어 드리는 일 없이 지나가면 반응이 어떠실까 한 번 살피고 싶은 마음도 들었던 것이다. 대신 어제는 마스크를 가져가 쓰고 보통때처럼 모시고 앉아 있었다.

간병사 여사님들이 매우 고무되어 있었다. 말씀이 수다(?) 수준을 향해 늘어나고 계시다는 것이다. 사진첩을 보여드리며 "이 분이 누구예요?" 하면 "다 알면서 그건 왜 물어?", "왜 그렇게 다 알려고 하는 거야?" 하는 반응이 수시로 튀어나오신다고 한다. 불경 읽어드리는 데 열심인 주 여사는 소리내어 읽으신 분량이 기록을 깨뜨리셨다고 흥분한다.

한 달 전 합류한 신참인 주 여사의 역할이 늘어나고 있다. 김 여사와 박 여사는 54세 동갑인데, 아마 40대 후반, 연길시 공원가 가두판사처에서 퇴직했다는 주 여사는 공무원 출신답게 처신이 능란한(그곳 말로는 '해박하다'고 한다.) 인상일 뿐 아니라 봉사정신도 투철한 것 같다. '언니'들이 가르쳐주고 시키는 것을 넘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열심이고, 언니들도 그런 주 여사를 미덥고 곱게 보는 눈치다.

한 열흘 전부터 주 여사의 교시에 따라 어머니 등 밑으로 손을 넣어 어깨와 등 주물러드리는 일을 시작했다. 열세 분 환자 중에 그렇게 해드릴 필요가 있는 분이 어머니 포함해 네 분이라고 주 여사가 말한다. 주 여사의 합류로 인해 새로 본격화된 서비스다. 김 여사와 박 여사도 그런 일을 더러 하기는 했지만,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매일 자기가 최소한 두 차례는 꼭 해드리고 있는데, 보호자가 더 해드리면 더 좋을 거라는 주 여사의 말을 듣고 시작했는데, 이것이 참 효과 만점의 접촉방법이다. 내 얼굴을 보면 자동적으로 떠오르시는 것 같은 어머니의 긴장감이 쉽게 풀어지고 편안한 웃음이 깔린다. 눈을 지긋이 감으실 때가 많고, 그런 상황에서 '웃음 속의 눈물'도 확인했다. 내 얼굴을 하염없이 쳐다보실 때도 있는데, 그럴 때의 눈길은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이 아니다. 나한테 씌워져 있는 아버지 귀신을 바라보시는 것 같다.

두 분의 사이가 실제로 어떤 것이었을까? 아버지의 일기와 어머니의 회고가 모두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주지만, 어떤 인간관계에도 없을 수 없는 굴곡의 기미가 여기저기 나타나기도 한다. 요즘 내 얼굴을 (아마도 아버지를 떠올리며)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에서 이유 없는 불편함을 느낄 때, 표현과 실제 사이의 거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한 생각이 북바친다.

어렸을 때 학교에 제출할 호적초본(등본이었을지도?)을 보면 어머니 이름이 모르는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이런 이름도 쓰신 건가? 했다가(같은 이씨였으니까) 차츰 사정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였으며,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입적을 못하고 계셨다는 사정을.

우리가 자라나는 동안 고종사촌 형님 몇 분이 마치 숙부들처럼 우리를 살펴주셨다. 아버지가 네 분 고모님 밑의 외아들이었으며, 몇 살 차이 안 나는 생질들을 자상하게 돌봐주셨기 때문에 그분 돌아가신 후 그 형님들이 비상한 사명감을 가지고 외숙모를 받들며 외사촌들을 아껴준 것이었다. 어머니의 호적상 위치에 대해 우리가 의문을 가지게 되자 그 형님들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진짜 아내였다는 사실을 극구 증언해 주었을 뿐 아니라, 있는 아내를 버리고 새 아내를 취한 일을(당시에는 아버지의 본처가 살아계셨다.) 변명하기 위해 본처 그분께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다는 설명도 해주었다.

어른이 된 후 이복형제들과도 만나고 아버지 본처의 친정 친척들과도 다소의 접촉을 가지게 되면서 고종 형님들의 설명이 사실이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혼이라는 사정이 두 분께 어쩔 수 없이 적지 않은 압박감을 드린 사실은 여러 각도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실체적 모습을 어느 정도 확실히 파악한 지금 내가 보기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택한 것은 본처보다 더 예쁘고 똑똑한 사람을 얻어 당신들끼리 오글복짝 행복하게 살려는 뜻이 아니었다. 사회를 위해 더 큰 공헌을 하기 위한 길로서 택한 정략(?)결혼이었고, 어머니에게도 평범한 지어미로서의 행복보다 어머니의 재주와 능력을 건실한 방향으로 펼쳐나갈 길을 열어준다는 명분으로 받아들이실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명확히 기억되지는 않지만 그런 취지의 말씀을 어머니께 여러 번 들었다.)

어머니도 그런 취지를 이성적으로는 승인하셨겠지만, 그에 대한 인식이 아버지처럼 투철하실 수는 없었을 것 같다. 행복보다 도덕을 앞세워야 할 절박한 사정은 아버지 때문이지, 어머니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지 않은가? 명분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명분에 매몰되어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이런저런 고비에 어머니께는 드셨을 것 같다. 예컨대 1946년 아버지가 당시 한국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던 금융조합을 때려치우고 학문을 위해 서울대 조교로 들어가실 때는(이듬해에 조교수로 취임하셨는데, 금융조합의 정치적 분위기가 악화되는 바람에 갑자기 떠날 생각을 하시고, 연구실에 앉아 계실 수 있는 조건만을 위해 학교로 급히 옮기셨던 것이다.) 좋은 낯으로 참아주실 수 있었을지 몰라도, 1951년 생존의 조건이 막막한 피난살이 중에 전사편찬위원회 일 그만두실 때는 기가 좀 막히셨을 것이다.

그렇다. 아버지의 기억에 착잡한 면이 어머니께는 있으실 것이다. 7년의 결혼생활 동안 아버지의 도덕적 엄격성이 그런 면으로 보통 넘는 어머니께도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많이 일으켜드렸을 것이다. 초년에 겪을 만큼 겪어내면 살아가면서 차츰 풀려갈 것을 은근히 바라고 계셨을 텐데, 그나마 초년 고생만 잔뜩 시켜놓고 훌쩍 떠나버리셨으니...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표정을 가장하려 드시는 것처럼까지 보이는 어머니의 착잡한 눈길이 어깨를 주물러드리는 동안 스르르 감기고 두어 방울 눈물이 번져 나오는 것을 보며 콧시울이 시큰하다. 그 눈길 속에 아버지 모습을 겹쳐 떠올리는 것이 내 망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라도 두 분의 기억이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길이라면 망상 속을 한없이 헤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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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7. 13:09
 


다섯시 반쯤 병실에 들어서니 눈을 꼭 감고 계신다. 주무시면서 저절로 감긴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꼭 감고 계신 것 같다. 소리 내지 않고 곁에 서 있자니, 2-3분간 가만히 계시다가 김 여사가 다가와 내게 인사하는 소리를 듣고 눈을 뜨신다. 역시 잠에서 천천히 깨어나시는 기색이 아니고 눈을 뜨시자 마자 또렷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신다.

김 여사의 자랑스러운 보고가 꽤 길었다. 형의 전화를 받으시자 마자 "어~ 기봉이냐?"로 시작하셔서, 여러 번 "그래."를 하시다가, "그래, 그러마."로 끝내시더라는 얘기. 다른 건 그만두고, 전화로 이름 불러대시는 건 정말 오랫만의 발전이다. 그리고 낮에 튜브피딩을 위해 윗몸을 일으켜세워 놓았을 때 고개를 이쪽 저쪽으로 돌려 방 안팎을 둘러보시는 것도 여기 와서 처음이셨다고 김 여사가 좋아한다.

김 여사가 어머니께 "큰 아드님 전화에는 이름도 부르셨는데, 지금 작은 아드님 온 것 보시고는 뭐라 그러셨어요?" 하니 못 들은 척 무표정하시다. 내가 "말씀하셨어요. '잘 왔다.' 하고." 그랬더니 무심결에 빙긋 웃음이 떠오르신다. 에라~ 내친 김에, 하고 "'너 참 잘 왔다.' 그러셨던가요?" 하니까 눈길을 내게 돌리며 웃음이 커지신다.

의식이 계속 더 맑아지시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들어올 때 눈을 감고 계신 것도 그냥 떠오르는 생각에 의식을 맡기는 것을 넘어 뭔가 생각을 집중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걱정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의식이 더 분명해지시면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는 지금 상황을 괴롭게 느끼시지나 않을지.

그리고 나에 대해 혹 불편한 생각을 떠올리시는 것이나 아닐까 불안한 마음도 든다. 간병인들 상대로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태를 스스럼없이 내시던 분이 내 앞에서는 표정도 말씀도 모두 아끼신다. 기술적인 이유려니, 생각하려 해도 자꾸 마음이 걸리는 것은 내 자격지심일까?

큰형을 너무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존중해 준 것이 미안하다는 말씀을 어머니께서 하신 일이 있다. 가장 역할로 부담을 주셨다는 것이다. 큰형이 어려서부터 신중하고 온건한 성격을 키운 데는 그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비판할 만한 일이 있어도 "내게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하며, 험한 말 할 일을 극구 피하는 자세가 일찍부터 몸에 밴 것 같다.

나는 가치관에 있어서 큰형과 많이 겹치지만, 그런 조심스러운 자세가 없다. 집 안에서건 집 밖에서건 입으로 죄를 짓는 데 거리낌이 없다. 한편 작은형은 워낙 신선 같은 분인지라 자기 자신도 비판할 줄 모르는데, 누구를 비판하겠는가? 귀찮아서도 못한다. 형제 중에 '비판' 실적은 내 독차지다. 어머니께 싫은 말씀 드린 것 형 둘이 합쳐도 내가 한 것의 10분의 1을 못 따라올 것이다.

이모님이 같이 앉았을 때 어머니께서 농담에 뼈를 넣어 말씀하신 일도 있다. "저 놈은 아무래도 김 서방(아버지를 가리킴) 귀신이 씌인 놈 같애. 너무 잘난 양반 만나 그 앞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더니, 이 늘그막에 와서는 저 놈에게 꾸중 들어가며 살게 되었어."

그 말씀을 들으며 움찔, 했다. 21년 전 그분의 일기를 넘겨받은 후 내 머릿속에는 그분 생각이 늘 머물러 있다. 일에서건 생활에서건 조금만 긴장할 일이 닥치면 그분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께 대하는 태도에도 그분의 존재가 작용했다면 정말 귀신 씌었다는 말씀이 틀린 것이 아니다.

꼼짝 못하고 누우신 분께서 내 얼굴을 보며 57년 전에 혼자 먼저 떠나신 분을 떠올리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큰형이 보는 것처럼 어머니는 두 개의 뚜렷이 다른 측면을 가진 분이다. 통상적인 말로 감성적 측면과 이성적 측면이라 할까? 내가 어머니 인생에서 이성적 측면을 대표하는 위치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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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7. 13:07
 

 요즘 어머니 표정은 크게 나눠 세 갈래다. 제일 많이 보이시는 것은 눈을 뜨고 계셔도 정신이 몽롱하신 듯 멍한 표정. 이따금 뭔가 불편하신 듯 찌푸린 표정, 조금 더하실 때는 완전히 울상으로 찡그려지고 눈물까지 흘리신다. 그리고 입꼬리가 귓가에 걸릴 듯이 쭈욱 올라가는 웃음. 최근에 정신이 좋아지고 편안해지시면서 찌푸린 표정보다 웃음이 훨씬 많아지고 종류도 늘어난다. 늘어난 종류 중에는 피식 하는 실소도 있다.

오늘 모시고 앉아 있는 동안 새 환자가 한 분 들어오셨다. 새 환자의 보호자인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지나가는 길에 내게 말을 걸고, 몇 마디 말 끝에 "참 효자시네요~" 인사치레 말씀을 했다. 좀 겸연쩍어서 어머니를 보고 "이분께서 저를 효자라시네요, 어머니. 어떻게 생각하세요?" 했더니 대뜸 피식! 웃으시는 것이 아닌가!

어제는 미열이 있으시다고 들었지만 용태에 별로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은 어제보다도 훨씬 기색이 좋으시다. 들어설 때 보니 독경집을 펼쳐 침대 난간에 기대 놓았다. 그 시점에서는 들여다 보지 않고 계셨지만, 아마 어느 여사님이 읽어드릴 때 관심을 강하게 보이시니까 펼쳐놓아 드린 모양이다. 김 여사의 보고도 재미있다. 여사님들이 피딩 준비해 드릴 때마다 아침인가 점심인가 저녁인가 말씀하시게 하는데, 아까 점심 때 또 채근하니까, "'점심' 말하기 싫어." 하시더라고. 그 말을 듣고 어머니께 "잘 하셨어요, 어머니. 고분고분 시키는 말씀만 하지 말고 호통도 치고 그러세요." 했더니 순간에 입끝이 귓가로 달려가신다. 이야기 알아들으시는 수준이 며칠 전과도 비교할 수 없게 회복되셨다. 유머감각도 되살아나시는 것 같다. 조금 더 나아지시면 내 '똥배'를 다시 들먹이실 수도 있겠다 싶다.

여사님들이 드리는 자극에 예민하신 것에 비하면 내가 드리는 말씀에는 주의도 빨리 모이지 않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시는 편인데, 오늘은 내 말씀도 잘 알아들으시고 반응도 활발하시다. 내 말씀에 대한 대답 말씀은 그 동안 어쩌다 나와도 한 단어로 늘 끝났는데, 오늘은 세 단어 문장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말씀이었는지 지금 생각이 안 난다. 지금 알고 있는 것도 이렇게 적어놓지 않으면 얼마나 남길 수 있을지. 설마 전염성 치매는 아니시겠지?

새로 나온 책을 우선 어머니 가까운 분들께 먼저 발송하는데, 이화여전 동기 동창이 두 분이셨다. 이혜숙 선생님과 이윤재 선생님. 어머니 쓰러지시기 한두 달 전 우리 집에 다니러 오셨을 때 두 분을 점심에 청해 오랫만에 깔깔대며 즐거운 시간들을 가지셨는데, 그런 자리를 다시 바랄 수도 없게 되었다. 이윤재 선생님께 보내는 책에는 사인 위에 "동녕 형을 부러워하며"라고 써넣었다. 그 아드님, 우리 큰형보다 한 살 밑인 김동녕 선배는 큰형 못지 않게 모범생에 효자로 내가 보는 이다. 이 선생님께 전화드릴 때 정정하신 것을 치하드리느라고 "저는 동녕 형이 부러워요~" 하곤 하는데, 사실 어머니가 요새만큼 몸과 마음이 편안하시기만 하다면 동녕 형도 별로 부럽지 않다.

3년 전 어머니를 두고 갈 수 없어 한국에 주저앉은 뒤 대개 철 하나 지날 때마다 우리 집에 다니러 오셨고, 그럴 때는 친척이나 친구분들 보실 기회를 만들어드리려고 내 딴에 애를 썼다. 기억력 감퇴만이 아니라 기력도 많이 쇠하셔서, 한나절 어디 다녀오시면 이튿날 꼼짝도 못 하시는 지경이기 때문에 나들이를 효과적으로 조직해야 했다. 쓰러지시기 전에 모시고 가 만날 기회를 드린 분으로 이정희 선생님과 윤정옥 선생님 생각이 얼른 난다.

어머니보다 서너 살 아래인 이정희 선생님은 늦게(아마 환갑들 지나신 뒤에?) 서로 만나고도 허물없이 가깝게 되신 분이다. 어머니가 소녀기를 지내신 함경도 출신이시라서, 그리고 거침없는 성격이시라서 쉽게 가까워지신 것 같다. 신군부 초기에 어디 잡혀 들어가셨을 때의 일화가 그분의 거침없는 성격을 보여준다. 심문을 앞두고 담당자에게 이런 모두발언을 하셨다고. "미리 말해두는데, 날 빨갱이라고 뒤집어씌울 생각은 하들 말어. 난 공산당이 싫어서 고향 두고 온 사람이야. 그리고 조직활동 뒤집어쒸울 생각도 하지 마. 난 단 두 사람 조직도 못해서 평생 혼자 산 사람이야." 요즘도 어머니 건강 관리에 도움말씀 주시기 위해 거침없는 전화를 제일 자주 주시는 분이다.

영문과 윤정옥 선생님과 사회학과 이효재 선생님은 어머니와 마음이 통하는 동료로 다년간 3자매처럼 지낸 분들이다. 어머니가 대저, 이 선생님이 중저, 윤 선생님이 소저로 통했다. 다정다감하신 윤 선생님은 어머니가 이정희 선생님 댁에 다니러 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리 달려오셨다. 이효재 선생님은 진해에 은거하고 거동도 불편하셔서 전화로 인사 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쉽지만, 그 근엄하신 분께서 요새 내가 낸 책과 글을 무척 반가워하고 전화로 격려해주시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사람이 마흔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어울리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어머니 친구분들이 어머니 아껴드리는 것을 보며, 나도 어머니 못지 않게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애쓸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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