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에게

최근 진행된 협상과 오래도록 바래왔던, 싱가포르에서 6월 12일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정상회담에 당신이 시간과 인내, 노력을 들인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상회담을 먼저 요청한 것은 북한이었지만, 그 사실은 전혀 중요치 않았습니다. 저 또한 정상회담에서 당신을 만나길 고대했습니다. 애석하게도, 당신들의 가장 최근 성명에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저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긴 시간을 들여 계획해왔던 회담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을 대변한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이는 북한과 미국에게는 이익이지만, 전 세계에는 손해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핵 보유 능력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우리의 핵 능력은 매우 강력하기에 우리가 핵을 사용할 일이 없기를 신께 기도하곤 합니다.

저와 당신 간에 경이적인 대화들이 형성되었다고 느꼈고, 결국 그 대화들만이 중요할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길 고대합니다. 그리고 인질들을 풀어준 데에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습니다. 이는 아주 아름다운 행동이었고, 매우 높이 평가될 것입니다.

만약 이 중대한 정상회담에 관하여 마음을 바꾸신다면, 저에게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쓰길 주저하지 말아 주십시오. 전 세계는, 특히 북한은, 지속적인 평화와 위대한 번영과 부를 가질 수 있는 굉장한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 잃어버린 기회는 역사에서 진정으로 슬픈 순간으로 남을 것입니다.

2018년 5월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 합중국 대통령

 

 
  지금 조미사이에는 세계가 비상한 관심속에 주시하는 력사적인 수뇌상봉이 일정에 올라있으며 그 준비사업도 마감단계에서 추진되고있다. 


  수십년에 걸친 적대와 불신의 관계를 청산하고 조미관계개선의 새로운 리정표를 마련하려는 우리의 진지한 모색과 적극적인 노력들은 내외의 한결같은 공감과 지지를 받고있다.

  그런 가운데 24일 미합중국 트럼프대통령이 불현듯 이미 기정사실화되여있던 조미수뇌상봉을 취소하겠다는 공식립장을 발표하였다.

  트럼프대통령은 그 리유에 대하여 우리 외무성 최선희부상의 담화내용에 《커다란 분노와 로골적인 적대감》이 담겨져있기때문이라고 하면서 오래전부터 계획되여있던 귀중한 만남을 가지는것이 현 시점에서는 적절치 않다고 밝히였다.

  나는 조미수뇌상봉에 대한 트럼프대통령의 립장표명이 조선반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인류의 념원에 부합되지 않는 결정이라고 단정하고싶다.
 
  트럼프대통령이 거론한 《커다란 분노와 로골적인 적대감》이라는것은 사실 조미수뇌상봉을 앞두고 일방적인 핵페기를 압박해온 미국측의 지나친 언행이 불러온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태는 력사적뿌리가 깊은 조미적대관계의 현 실태가 얼마나 엄중하며 관계개선을 위한 수뇌상봉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를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력사적인 조미수뇌상봉에 대하여 말한다면 우리는 트럼프대통령이 지난 시기 그 어느 대통령도 내리지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상봉이라는 중대사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데 대하여 의연 내심 높이 평가하여왔다.
 
  그런데 돌연 일방적으로 회담취소를 발표한것은 우리로서는 뜻밖의 일이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수뇌상봉에 대한 의지가 부족했는지 아니면 자신감이 없었던탓인지 그 리유에 대해서는 가늠하기 어려우나 우리는 력사적인 조미수뇌상봉과 회담 그자체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의 첫걸음으로서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전,두 나라사이의 관계개선에 의미있는 출발점이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성의있는 노력을 다하여왔다.
 
  또한 《트럼프방식》이라고 하는것이 쌍방의 우려를 다같이 해소하고 우리의 요구조건에도 부합되며 문제해결의 실질적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였다.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께서도 트럼프대통령과 만나면 좋은 시작을 뗄수 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를 위한 준비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오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의 일방적인 회담취소공개는 우리로 하여금 여직껏 기울인 노력과 우리가 새롭게 선택하여 가는 이 길이 과연 옳은가 하는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고있다. 
 
  하지만 조선반도와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려는 우리의 목표와 의지에는 변함이 없으며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 
 
  만나서 첫술에 배가 부를리는 없겠지만 한가지씩이라도 단계별로 해결해나간다면 지금보다 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졌지 더 나빠지기야 하겠는가 하는것쯤은 미국도 깊이 숙고해보아야 할것이다. 
 
  우리는 아무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측에 다시금 밝힌다.

 

 

트럼프가 제기하는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이란 김계관과 최선희의 담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북한 측의 가장 강경한 발언을 내놓은 두 사람이 모두 외무성 관료라는 점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볼턴이나 펜스는 말할 것도 없고, 더러 트럼프나 폼페이오의 발언 중에도 북한의 자존심을 심하게 건드리는 것이 제3자에게도 느껴져 왔다. 이에 대해 군부가 아닌 외무 관료들이 비판에 앞장섰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판을 깨지 않기 위해 표현을 절제한 것이다. 외무 관료는 상대국과의 대립보다 협력을 추구하는 입장이다. 그들이 나선 것은 안으로는 "미국 쪽이 너무한다는 것을 우리도 안다. 회담 성공을 추구하는 우리도 그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리고 밖으로는 "회담 성공을 추구하는 우리에게도 이런 문제는 곤란하다. 자제해 달라"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불신과 적대감은 어느 쪽에나 있다. 그런데 북한 쪽은, 이제 나온 김계관의 담화까지 볼 때, 불신과 적대감이 '평화 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잘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 쪽은 통제가 잘 안 되는 것이 분명했다. 부통령과 안보보좌관이 상대방에 대한 모욕을 넘어 자기네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 될 정도의 부정적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 오지 않았는가. 최선희의 펜스 비판이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고 하는데, 최선희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의 언행과 비교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미국은 강대국이고 북한은 약소국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북한이 강해 보이고 미국이 약해 보인다. 북한이 어떤 목표를 위해 자신감을 갖고 나아가는 모습인 반면, 미국의 갈팡질팡은 진퇴유곡에 빠진 형국이다.

 

북한의 한 가지 한 가지 반응을 놓고 "벼랑 끝 전술"이니 뭐니, 과거의 행태를 들먹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금년 들어 북한이 내내 보여준 유연한 태도는 과거와 전혀 다른 것이다. 이 차이가 자신감에 기인한 것이라고 나는 본다. 20여 년 전 "고난의 행군"을 비롯해서 북한은 존립의 위기를 느낄 만한 힘든 여건을 겪어 왔다. 힘든 여건을 견뎌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고 자존심에 극단적으로 매달리기도 했다.

 

지금 북한당국이 보여주는 자신감은 핵미사일 완성과 경제 안정의 두 축 위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ICBM 확보는 국제무대의 발언권을 보장해주는 발판이고, 경제 안정은 체제의 정당성을 담보해주는 조건이다. 두 가지 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성취인데, 지난 몇 달 동안 보여준 자신감 때문에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특히 혹심한 국제제재 속에서 경제 안정을 이룬 사실에는 좋은 공부거리가 많이 들어 있을 것 같다.

 

한편 미국의 자가당착은 훨씬 쉽게 이해가 가는 일이다. 미국의 쇠락이 일찍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근년 들어 깨닫고 있다. 그럼으로써 공산권 해체와 그 후의 세계정세 변화를 일관성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해의 주축은 월러스틴 등의 세계체제론에서 찾았고, 중국의 성장을 관찰하면서 '제국'의 속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2차대전 종전 후 미국은 세계제국 건설을 위한 힘을 가졌으나 보편적 세계질서를 위한 공공성의 이념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의 힘이 다른 힘을 끌어들여 큰 질서를 구축하는 데 쓰이지 못하고 관리자들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소진되기만 했다. 1980년대까지도 평면적 비교에서는 우세한 힘이 남아 있었지만 1950년대의 압도적인 힘보다는 찌그러진 상황이었는데 상황에 맞춰 방만한 운영방식을 조정할 수가 없어서 위기를 맞았다. 그 위기에 정면돌파로 나선 것이 레이건의 치킨게임이었고, 그 전술 차원의 성공으로 공산권 해체를 이룸으로써 우세한 힘을 가진 상황을 얼마간 연장할 수 있었다.

 

소련과 공산권의 해체로 미국의 상대적 우위는 당분간 보장되었지만 이념의 빈곤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에 "세계경찰"이라는 소꼽장난 같은 명찰을 달고 나왔지만 몇 해 안 되어 "bad cop" 이미지 때문에 내다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21세기 들어와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역할은 아무런 리더십의 성장도 보여주지 않고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한 모양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전략적 인내"는 내 임기 내에만 파탄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폭탄 돌리기 게임일 뿐이었다. 1990년대 미국의 북한 왕따 정책을 <냉전 이후>에서 살펴보았는데,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 유지라는 사소한 이득을 위해 세계적 핵무기 억제체제를 무너뜨린 것이다. 핵무기 개발이 북한 손으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의 강요에 따른 것이다. 생존의 다른 길을 다 틀어막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리고 핵 개발이 북한에게 진정한 활로였다는 사실이 이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폭탄 돌리기가 트럼프 같은 별난 대통령 손에서 터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미국의 곤경은 북한 문제에서만 드러나 온 것이 아니다. 힐러리나 다른 공화당 경선 후보들 같은 주류 인물들, 현상유지에만 급급한 정치가들이 대책 없는 지경에 와 있기 때문에 트럼프 같은 파격적 인물이 기회를 얻은 것이다.

 

미국민의 파격적 선택으로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일반 정치인들에 비해 북한 문제에도 현상유지에 구애받지 않고 파격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미국민을 위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유지될 수 없는 현상을 유지하려 들다가 무슨 험한 꼴을 보게 될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막 가는 트럼프도 한계가 있다. 현상유지만을 원하는 의회가 버티고 있고 재선도 생각해야 하는 데다가, 최측근의 막가파 집단에 파국 지향성이 강하다.

 

결국 미국이 자력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말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미국이 끝내 북한과의 관계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미국의 "결자해지"가 모두에게 가장 원만한 수습책이 되겠지만, 미국이 제 노릇을 못할 경우에 대비하는 방안이 북한과 중국을 중심으로 상당한 범위에서 이미 합의를 이루고 있으리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그런 방안 없이 북한이 금년 초부터 해 온 것처럼 홀랑 벗고 나설 수가 없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어느 시점에서 북한 제재의 해제를 유엔에 제기하고 나올지.

 

 

Posted by 문천
2018.05.22 14:54

One should keep faithful to his own worldview and aspirations, but he should not go to extremes. I think we can learn the way of living from trees. A tree does not choose its location for itself. Like trees, our lives are planted at certain locations in time and space. That is why  we just have to do our best under whatever conditions we are given. (...)

There are times we feel inclined to defy certain conditions given to the time and place we are planted at. But I do not find the beauty of life in downright rejections. There are times, of course, when some desperately fierce struggles deeply move the minds of neighbors. But they cannot be recommended to other people as a good way of life. One has only to cultivate himself in the wind, water and soil given to the location he is planted at. That is why I keep from either striving or contending too strongly, like a tree, or like water. [Shenzi]

 

Sounds like a fatalist, but quite the opposite! You can fight your fate only when you have first accepted it for what it is. Nothing can be done by just denying it. [O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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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지난 9일 북한 정권 세습 논란에 관해 글을(“경향일보와 이대근 씨! 정권 세습은 절대악이 아니요.”) 올린 후 논란이 있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들었지만 주중에는 <해방일기> 작업에 바빠 살펴보지 못하다가 오늘 둘러봤다. 경치가 별로 안 좋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15일자 <조선일보>의 이선민 기자 글. 싱가포르를 갖다 댄 내 얘기에 “기상천외한 주장”이란 딱지를 붙였다. 내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같은 학과 선배라고 봐준 걸까? 누군가가 이것을 “유치원 수준의 논리”로 평가했다고 하니.


그 ‘누군가’를 찾아보니 진중권 씨인 모양이다. 진 씨 글은 더러 읽어본 게 있는데, 이건 수준이 좀 이상하다. 이 양반 아이디 관리를 잘못해서 도용당한 것 아닐까? 그래도 해명이 따로 없으니 본인이 쓴 걸로 가정해야겠다.


참 보기 안 좋은 글이다. 제목부터. “이정희 대표의 변명”이라고 남의 발언을 ‘변명’이라고 몰아붙여 놓았다. 내 글 이야기는 물론 “궤변”으로 간단히 규정되어 있고. “새나라 유치원” 운운은 유치원에 다녀보지 못한 나로서는 황감한 얘기지만, 그거 참, 남의 얘기를 비평하는 표현이 이런 것밖에 없나?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표현 수준이 참 딱하다.


괜찮은 글도 쓸 줄 아는 사람인데, 왜 이럴까? ‘편 가르기’의 폐해겠지. 자기편 사람들을 상대로만 글을 쓰니까 자신을 돌아볼 틈 없이 둘러선 사람들이 부추기는 대로 마구 쏟아내는 거다. 그걸 딱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건 나쁜 놈이니까,” 하고 무시해 버리고.


정말 이 사회의 편 가르기 풍조가 너무 심하다. 이 풍조에 언론이 앞장선다. 이번 논란에 관한 언론 보도는 모두 옹호파와 비판파의 구분뿐이다. 북한 권력 세습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신문에선가, 내게 ‘진보 논객’이란 딱지 붙인 것을 보고 실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진보도 아니고 논객도 아닌데.


2년 전부터 ‘보수주의자’를 표방해 왔다. 표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를 밝히기 위해 애를 꽤 써왔다. 그런데 MB정부 비판하면 무조건 ‘진보’로 보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논객? 이건 사실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인데, 막상 그렇게 불려 놓고 생각하니 아니다. 논객이라면 주견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 아닌가? 내게는 남을 설득할 의지가 없다. 물론 내가 하는 생각을 주변 사람들도 함께 하기를 바라지만, 거기까지다. 내 ‘믿음’을 남들이 공유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생각을 더 해 볼 만한 방향을 권해주기 위해 글쓰기를 한다. 논객보다는 학인(學人),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번 일도 그렇다. 나는 북한의 권력 세습에 대해 지지하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는다. 주견이 없다. 다만 경향신문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공박에 폭력성이 보여서 지적했을 뿐이다. 그리고 참고가 될 만한 포인트를 떠오르는 대로 제시한 것이다. 싱가포르의 비유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많은데, 비유란 원래 완벽하게 맞을 수 없는 것이다. 결론(이라기보다 함축하는 뜻)이 싫다고 그냥 외면해 버리는 대신 차분히 새겨보면 다소나마 참고 되는 점이 있을 것이다.


<해방일기> 작업을 하며 해방공간에서 정치적 전선(前線)의 형성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좌익과 우익 사이의 전선이 늘 주목을 끌어 왔다. 그런데 당시 상황에서 좌익과 우익 사이보다 중도파와 극단파 사이의 전선에 더 실질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점을 떠올리고 있다. 극좌와 극우가 함께 중도파에 대항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중도파는 민주주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극좌와 극우는 이 공감대가 안정된 체제로 자리 잡는 것을 함께 반대한 것이다. 적어도 분단국가 수립에는 극좌와 극우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민주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가 서로 어울리는 통일국가가 세워진다면 극좌, 극우, 모두 입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분단국가 수립은 양자 간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통해 중도파를 배제하는 길이었다.


극좌와 극우의 공통점은 어디에 있었나? 이기심을 앞세워 폭력에 의존한 데 있었다. 극우가 물질적 이익을 추구한 것은 쉽게 보이는 사실인데, 극좌는 자기 믿음을 남들에게 강요하는 ‘정신적 이익’을 추구한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양쪽 모두 폭력 사용에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이기심 때문이었다.


해방공간에서 짓밟힌 중도파의 역할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되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 이익을 남에게 앞세우기 위해서나 자기 믿음을 남에게 강요하기 위해 폭력을 마다하지 않는 세태 속에서 사람들은 밤낮으로 흑백론에 내몰리고 있다. 지나친 ‘편 가르기’ 풍조가 그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진보는 이래야 한다, 저러면 안 된다, 하는 얘기에서 ‘편 가르기’ 위험을 많이 본다. 가치관을 분명히 하기 위한 노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 노력이 합리성의 기준을 벗어나면, 전술적 고려가 철학적 입장을 침해하면 패권주의의 폭력성이 나타난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은 일전 “김정은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글로 일관성 시비를 일으켰다. 그가 어떻게 변명할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권력 세습 비판은 도덕적 판단에 따른 것이고 현실로서 김정은 인정은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권력 세습이 절대악이 아니라고 내가 지적한 것은 권력 세습 비판이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도덕적 문제 아닌 것을 도덕적 문제라고 우기는 데 색깔론의 폭력성이 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