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17. 15:23
추석 이튿날이 문영이 세상 떠난 지 백일째 되는 날이었다. 보광사에서 우리 내외가 문영이 딸들 만나 49재 지낼 때 얘기했었다. 법도에 따른 제사나 재가 아니더라도 이따금 이리 올 테니 너희도 형편이 맞으면 맞춰 와서 함께 보자고. 그리고 백일 되는 날 한 번 보자고 했었는데, 그게 마침 추석 이튿날이 되었다.
그런데 추석 전날부터 몸살이 나서 걱정이 되었다. 억지로 움직이면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이 빤하고, 아내는 아직 안 다니던 길은 운전할 생각 못한다. 내가 못 가면 모처럼 나온 아이들에게도 면목이 없다.
그런데 마침 영진이가 일간 인사드리러 오겠다고 전화했다. 그래서 보광사에 내 대신 다녀올 것을 부탁했더니 선선히 응락. 점심 때 와서 함께 먹고 나서 아내를 모시고 떠났다. 지난 5년 동안 이 사람 대하는 영진이 태도가 무척 은근해졌다. 처음에는 당연히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을 텐데, 나를 한결같이 잘 보살펴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의 역할을 기쁜 마음으로 인정해드리게 되었다.
문영이 애들과 영진이 사이는 내외종간이다. 현주는 어렸을 때 보던 네 살 위의 외사촌오빠를 잘 기억하고 있지만 현영이 기억은 훨씬 약한 것 같고 현진이는 당연히 아무 기억이 없다. 그런 사촌오빠를 장례 때 만나 모두들 좋아했었다. 어머니를 아끼는 마음으로 애써주는 사람이 자기들 또래에도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을 것이고, 훤칠하고 잘 생긴 사촌오빠가 있다는 사실 자체도 기뻤을 것이다. 영진이 생긴 게 30년 전 내 모습과 방불하다는 이들이 있는데, 나보다 훨씬 잘 생겼다.
다섯시쯤 되어 모두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아이들도 내게 인사하겠다고 온 것이다. 나는 약기운이 몽롱한 중에도 원고 메꾸려 낑낑대다가 탈진해서 누워있던 참이라 오랜만에 보는 아이들 얼굴만 보고 돌려보냈지만, 모두들 기분이 아주 좋아보였다.
아이들이 나간 뒤 아내에게 다녀온 이야기를 듣자니 아이들이 각별히 기분좋은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장례 때 영진이가 사촌들 태워주다가 언제 한 번 밥이라도 사주겠다는 말을 했던 모양이다. 오는 길에 "밥 한 번 사겠다고 내가 그랬었지..." 하고 말을 꺼내니까 말 끝내기도 전에 현진이가 "밥이요? 좋아요!" 외치고, 언니들도 열렬히 동조하더라고.
그래서 우리 집에서 나가서는 영진이가 사주는 밥 먹으러 간 건데, 다섯시에 나갔으니 사촌들끼리 서너 시간은 회포를 풀었겠지. 나도 이혼하고 문영이도 이혼하는 바람에 남남처럼 되었던 내외종 간에 이렇게 인연을 되살리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그저 고마운 일이다. 늠름한 오빠를 갖게 된 문영이네 아이들에게도, 씩씩한 동생들을 얻은 영진이에게도, 거리낌없이 기쁜 일일 것이다.
'불출' 소리 듣더라도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적어야겠다. 가는 길에 주유소에 들렀을 때 꽉꽉 채우게 하고 기름값을 내준 것은 어른된 도리에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나중에 사촌끼리 밥 같이 먹을 얘기가 나왔을 때 아내가 보태 쓰라고 10만원을 얼른 영진이에게 찔러줬다고 한다. 그런 마음씀씀이까지는 아직도 한국 돈 무서워하는 아내에게 바라기 힘든 건데, 영진이가 우리 바라보는 마음을 편안하고 믿음직하게 해주는 일이다. 나는 내 구실 못한 날이지만, 여러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을 보며 무척 기분좋았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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