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20. 22:50

화요일 오후마다 들러보기로 마음먹고 어제 첫 출근을 했다. 점심 후 어머니께 들렀다가 가니 4시경. 박 선생님과 뽀스띠노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박 선생님과 이야기부터 하다 보니 커피 한 잔을 또 얻어마시게 됐다. 다음 주부터는 사 먹게 좀 놔둬달라고 단단히 부탁을 드리고 맛있게 마셨다.

대화 내용을 내 멋대로 공표할 일은 아니겠고, 그냥 박 선생님과 얘기 나누는 데 지루함을 아직 느끼지 않았고 앞으로도 별로 느낄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예감만 적어둔다. 한 가지 나 스스로 잊어버리지 않도록 적어둘 것이라면, 내 길담 참여는 소극적 참여가 되겠다는 말씀 드린 일. 강연이나 간담회 한 번 하지 않겠냐는 권유를 하시기에, 오랜만에 만드는 세상과의 접점이기 때문에 서둘러 키우기보다 저절로 자라나기를 천천히 기다리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께 보여드리려고 가지고 나온 아버지 일기가 가방에 들어 있었다. 지난 주 박 선생님이 그 책 감명깊게 읽었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꺼내어 보여드렸더니 무척 기뻐하셨다. 책을 보고 있던 손님 한 분이 관심을 보여주시고, 내 책 하나를 사서 사인을 부탁하기에 반갑게 해드렸다. 북경에서 오신 황아무개님, 우연히 마주친 자리라도 오래 기억해 주실 것 같다. 자원봉사자인지 단골손님인지 모를 또 한 분 황아무개님은 두 권이나 사인해 드렸다. 커피값도 안 쓰면서 인세 수입은 꽤 올렸다. 박 선생님까지 한 권 해드렸다. 뽀스띠노님은 집에서 책을 가지고 올 것을 그랬다고, 4월 19일에 받는 사인이면 더 좋은데, 하고 아쉬워하기에 다음 주에 가져오면 이승만 하야 기념 사인을 해드리겠다고 했다.

프레시안 사무실에 들러서 아버지 일기의 사진을 찍어두고 싶은 생각에 강 기자에게 전화했더니 6시반에 회의가 끝난다 해서 그 시간에 가기로 했다가 막상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이제 회의가 끝나 저녁 먹으러 가는 길이니 같이 가자고 한다. 식사 생각은 없지만 얼굴이나 보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올라가다가 마주쳐 보니, 그 회의라는 것이 북섹션 기획회의였다. 모르던 분들이라도 다 반가운 분들이고, 더욱이 정춘수 선생이 있지 않은가! 갑자기 식욕이 용솟음치기에 같이 추어탕 먹으러 갔다.

정 선생. 중앙일보에 의탁해서 지내는 동안 제일 깊은 경의를 품었던 동료였다. 재능을 잔뜩 가지고도 그 재능을 통상적인 방식으로 쓰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는 분. 나도 하기 싫은 일 피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 꽤 참는 편이지만 나랑도 비교가 안 되게 지독하다. ‘재능 자린고비’랄까? 글도 잘 안 쓴다. 이분에게 뭐든 배우려면 직접 만나서 짜내는 수밖에 없다. 몇 년 만인지 생각도 안 나지만, 엄청 반갑다.

또 한 사람 오랜만에 만났다. 한홍구 선생. 다음 주 나올 <해방일기>에 관한 한 선생과의 대담을 추진하고 있는데, 아직 확답을 못 얻었으니 나더러 압력을 좀 넣어달라고 강 기자가 찔러준다. 어느 영이라고 거역하랴! 한 선생은 마침 7시반부터 길담서원에서 강의를 할 참이다. 추어탕집에서 나와 바로 쫓아갔더니 7시 27분.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강사석에 앉아 있던 한 선생이 내다보고 언뜻 반가운 기색을 보인다. 체면 불고하고 불러내어 대담 부탁을 하니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기 바쁘다. 됐다.

정말 오랜만의 만연한 외출이었다. 하루가 지난 지금 적으면서도 마음이 흥겨운 대목이 많다. 너무 여유 없이 지내는 생활이 1년이 넘었다. 이제 1주일에 한 차례는 이런 외출, 기약 없이 만나는 사람도 있고, 계획 안 한 대화도 나누는 이런 외출을 하면서 지낼 생각을 하니 너무 신이 나서 한 차례 외출기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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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