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의 <우남 이승만 연구>는 무거운 책이다. 792쪽의 두툼한 두께에 무게는 1504그램이나 된다. 그러나 이런 두께와 무게에 비해 내용에서는 경쾌한 느낌을 준다. 정통 연구서의 격식을 갖췄지만,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없다.
지난 주 한홍구 교수와의 대담 중 정병준 교수가 애꿎게 거명된 일이 있다. 처음에 내가 <해방일기> 작업에서 가장 많이 의지하는 연구자 몇 사람을 들다가 그의 이름이 나왔는데, 한 교수가 얼마 후 연구자들이 일반 독자를 위한 서술에 더 적극적으로 나와 주기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예를 들어, 정병준 선생 같은 후배는 글재주도 좋잖아요.” 하고 그를 다시 들먹였다.
그렇다, 정병준은 글재주가 좋다. 그 글재주는 좁은 의미의 ‘글재주’를 넘어서는 것이다. 치밀한 기획력이라 할까? 연구 주제를 설정하고 작업방법을 결정하는 데서부터 이 장점이 발휘된다. 최종 결과물인 책이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될지,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는 모습이 내 눈에는 그려진다. 그러니 그의 책에는 주제를 독자에게 잘 보여주기 위한 온갖 요소들이 잘 갖춰져 있을 수밖에. 그의 책 내용이 경쾌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매끈하고 탄탄한 문장력은 그의 ‘글재주’의 한 모퉁이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정병준이 일반 독자를 위한 서술에 더 적극적으로 나와 주기 바란다는 한홍구의 의견에 그리 강하게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전쟁>(2006), <독도 1947>(2010) 등 정병준의 근년 연구서는 모두 충실한 연구서이면서 교양서로서의 기능에도 손색이 없다. 그런 규모의 연구를 두어 건 더 수행한 뒤, 10년쯤 후부터 넓게 보고 많이 쓰는 쪽으로 작업방식을 옮긴다면 한홍구나 나보다도 독자들에게 더 훌륭한 역할을 맡아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 자신 그런 역할을 벌써 기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승만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큰 역할을 맡은 사람의 하나이고, 그를 매개로 하여 이뤄진 변화는 그의 퇴장 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반도의 현실로 상당 부분 남아 있다. 그에 대한 포폄은 한국사회에서 극도로 엇갈리고 있고, 그의 역할에 대한 찬반이 현실정치에 대한 입장을 가르는 중요한 지표 노릇을 하고 있다.
이런 ‘뜨거운 감자’를 연구 활동 초창기에 연구 주제로 설정한 것부터 한국 역사학계의 풍토 위에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정병준의 용기는 자신의 연구 자세와 연구 능력 양쪽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능력에 대한 자신감은 그렇다 치고, 연구 자세에 대한 그런 자신감을 30세 안팎의 초짜 역사학도가 보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해석에 약간의 편향성만 보여도 이쪽과 저쪽 정치진영의 지지와 지원, 매도와 박해가 엇갈릴 수 있는 이런 주제는 수십 년 연구 경력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확인받은 중진 연구자에게도 부담스러운 것인데.
역사 속에서 역할이 큰 인물이었던 만큼 이승만에게는 남들에게 칭송받을 점도 비난받을 점도 많이 있었다. 엄정한 사실만을 말하면서도 비중을 바꿀 여지가 많이 있고, 비중을 조금 바꾸는 데 따라 연구조건을 크게 향상시키거나 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태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유혹이 혈기방장한 30대의 연구자에게는 만만한 것이 아닐 텐데, 정병준은 초연한 자세를 잘 지켜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나는 이승만의 나쁜 역할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한반도와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악화시키는 데 그의 역할이 컸다고 보고,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이승만의 역할을 세심히 살필 필요를 느낀다. 그런 입장에서 <우남 이승만 연구>는 좋은 참고가 된다. 그의 ‘정읍 발언’을 놓고 “그 시점에서 단독정부 얘기를 꺼냈어? 민족주의랑 원수진 놈 아냐?” 정도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을 그의 ‘현실적 선택’으로 보다 구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이승만의 좋은 역할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똑같은 방식으로 도움이 된다. 그의 대미 종속 노선을 “결국 미국이 소련을 이겼잖아? 그 때 미국 쪽에 붙어서 남한이라도 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 정도 막연하게 생각하던 사람도 이 책을 보면 그의 선택이 가진 의미를 보다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병준의 연구는 어느 쪽 정치진영의 ‘승리’에도 확실한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 연구의 가치는 어느 쪽 주장이든 보다 실질적인 내용을 갖추게 해줌으로써 이승만을 둘러싼 담론이 ‘성공’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데 있다. 나는 이승만을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이승만을 존경하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과는 진지한 토론을 할 수 있다. 저쪽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글에서 이 책 내용을 인용한 부분을 읽고 “정병준 교수의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부들부들 떨었다.”는 댓글을 단 독자가 있었다. 이승만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절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병준은 그런 얘기를 안 했다. 사실만을 얘기했다. 그 사실을 보며 읽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비판하기도 하는 것이고 칭송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어느 쪽 입장이든 함께 어울려 가치관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춘추필법’의 정신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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