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아흔 개의 봄』의 주인공인 어머니 이남덕 선생은 여전히 건강하고 편안하게 지내시는지.


가 뵙는 대로 소감을 계속 적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에(orunkim.tistory.com)에 와 보세요.

1월 15일 막 나온 책을 갖고 갔을 때는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정말 행복한 인생이십니다.


Q. 어떤 연유와 의미로 어머니 시병일기를 쓰기 시작했나. 또 어떻게 책으로 묶어 내기로 마음먹었나.


머리말에 썼죠. 미국의 형을 비롯해 어머니 근황을 간간이 알려드리던 분들이 있었는데, 회복이 시작되니까 자꾸 자주 알려드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따로 정리해 메일에 첨부해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글로 정리해 놓으니까 보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고, 보는 분들마다 좋아하더라고요. 쓰기 시작한 지 서너 달 되어 원고지 3, 4백 매 분량이 되면서 출판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Q.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장난감 노릇이 재미있다”고 했지만, 사실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직접이건 간접이건 경험을 가진 분들은 ‘치매’라는 말 자체에서 고통과 어두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죠. 우리 사회는 모든 종류의 ‘불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한 분이 이 책을 보고 그 분야 참고서로도 가치가 있다는 말씀을 하시던데, 듣고 보니 그렇다 싶습니다. 관념 때문에 불필요하게 겪는 고통과 피해의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 쓴 사람으로서 정말 보람을 느끼겠습니다.


Q. 모자간 불화가 싹튼 배경, 모자가 겪은 갈등과 곡절을 좀 더 소상히 밝혔으면 독자의 이해와 감동이 더욱 크지 않았을까. 아무튼지 어머니가 왜 그리도 미웠는지, 모자간이 왜 그렇게 멀었는지.


곡절을 소상하게 밝힐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썼는데, <중앙일보> 기자와 얘기하다가 생각난 것을 말했더니 1월 26일자 기사에 담았더군요. 아버지와의 결혼이 정당한 행위인가 하는 문제에 마음이 많이 얽매였습니다. 내 출생의 조건 자체를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인간이었으니 자식 노릇은커녕 사람 구실 제대로 할 수가 없었죠.


Q. 어머니 이남덕 선생에게 아버지 김성칠 선생은 과연 어떤 존재였다고 보는가.


책 속에는 떠오르는 생각을 그때그때 거리낌 없이 적은 대목이 더러 있지만, 정색을 하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싶지는 않네요. “큰 빛은 눈에 보이지 않고 큰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Q. 어머니가 “집착을 벗어나 마음이 편안하시다”고 썼다. 이남덕 선생이 오래도록 버리지 못한 집착은 무엇이며 어떻게 거기서 놓여나 편안한 마음자리를 얻었다고 생각하는지.


기본적으로 정체성 문제, “나는 어떤 사람이다.” 내지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 하는 자의식을 생각합니다. 그 자의식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조건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제가 다른 문명사회에 비해 한국 사회에 더 많다고 보는데, 어머니는 살아오신 곡절 때문에 특히 심한 편이겠죠.


Q. 시병이 곧 수행이기도 하다면서 “어머니를 정성껏 모시게 되면서 다른 일도 생활도 정성껏 하게 되었다”고 했다. 시병 수행의 결과랄까, 자신의 큰 변화에 대해 말한다면...


방금 말한 ‘자의식의 불안감’을 많이 극복했다고 할까요? 이 책에서처럼 나 자신을 남들의 시선 속에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불편해 하는 마음이 줄어든 게 그 뚜렷한 결과죠. 남들에게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뻔뻔해졌습니다.


Q. 『아흔 개의 봄』은 부부, 형제, 부모와 자식 등 가족의 관계와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번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새롭게 깨친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내 존재의 근거라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습니다. 나 자신을 추상적 가능성이 아닌 구체적 존재로 본다면 주어진 모든 인연을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고, 가장 크고 깊은 인연으로서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전통시대에는 이런 설명도 필요 없이 누구나 저절로 가지는 마음이었는데, 변화가 많은 현대세계에서는 이런 마음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각별히 애쓰지 않으면 존재의 위기를 겪기 쉽습니다.


Q. 한국 사회에 ‘할 말’이 많다는 게 이 책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진보 학자로서 평소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궁금하다.


내 생각과 행동에 진보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정치적 태도는 보수주의를 지향합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예컨대 ‘체벌 전면 금지’에 반대합니다. 체벌의 오용과 남용은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전면 금지가 원칙과 상식으로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는 조심스럽게 생각할 일입니다.

우리 사회 교육계는 원칙과 상식은커녕 말도 안 되는 많은 폐단에 오랫동안 빠져 있었습니다. 고치려는 노력이 커진 것은 반갑지만, 손쉬운 구호에 빠져 반대쪽 폐단을 일으킬 위험을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교육이 미래를 좌우하는 분야라는 점에서 다른 분야보다 보수주의적 입장이 더 중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프레시안」에 ‘망국 100년’ 연재를 마치고 지금은 해방공간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해방일기’)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저술 계획을 들려달라.


<해방일기>는 평생 제일 큰 일거리로 세운 겁니다. 3년의 계획 중 6분의 1이 진행되었고, 3년 작업이 끝나도 거기서 이어지는 작업이 있겠죠.

3년 전 <밖에서 본 한국사>를 낼 때는 <안에서 본 동양사>, <곁에서 본 서양사> 하는 식으로 역사를 개관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뉴라이트 비판> 작업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한다고 판단되는 일을 찾게 되어 <망국의 역사>, <해방일기>로 작업이 이어지게 되었죠. 개인적 만족보다 사회의 필요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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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