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0일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는 점심 후에 연락이 왔는데 오늘은 아침 후에 연락에 왔다는 차이뿐. 몸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 모셔야겠다는 것이었다. 증세도 비슷한 것 같았다.
여러 해 전부터 혈당 조정에 문제가 있으셨는데, 요양원으로 옮기신 후 17개월 만에 지난 번 문제가 있었고, 그로부터 백여 일 만에 다시 문제가 일어났다. 그런데 병원 가서 이틀 정도 치료받고 오시면 되는 별것 아닌 일이 지금 상황에서는 별것이다. 이천의료원 여건이 별로 안좋아서 거처를 옮겨 지내시는 것도 불안하고, 입퇴원을 위해 내가 가야 한다. 전번에도 그렇더니 이번에도 하필 토요일이라 진퇴가 더 어렵고...
아침에 연락 받고는 월요일에 올릴 원고를 써놓고 저녁때쯤 내려가 이천에서 묵으며 월요일 퇴원 때까지 살펴드릴 생각을 하고 일단 입원시켜 드리라고 부탁해 놓았다. 그런데 점심 때까지 연락을 보니 병원생활 적응이 지난 번보다도 힘드신 것 같았다. 그래서 원고는 팽개쳐놓고, 상황에 따라 일산으로 모셔올 가능성도 체크해 놓은 다음 서둘러 떠났다. 요양원 가기 전 계시던 현대요양병원에서 그 사이에 차려놓은 한가족요양원을 출발하는 길에 살펴두었다.
세 시 반쯤 병원에 도착해 보니 당장 급한 상황은 아니신 것 같아서 옮기기로 했다. 한가족요양원에 연락해서 모실 준비를 해두라 하고 세종너싱홈에는 어머니 짐을 꾸려달라고 했다. 한가족요양원에 모시면 1년간 살펴드리던 위층 현대병원의 닥터 한이 다시 살펴드릴 수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
아내가 어머니 출발 준비를 살펴드리는 동안 세종으로 가서 원장님, 이사장님에게 인사하고 짐을 찾아왔다. 참 고마운 분들이다. 덕분에 어머니는 1년 반 동안 참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을 누리셨다. 이런 좋은 분들과 좋은 시간 더 가지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그러나 건강에 위험이 없도록 해드리는 일이 첫 번째다.
공교로운 일이다. 세종너싱홈 떠나실 가능성을 20개월 만에 처음 원장님께 말씀드린 게 하필 바로 그저께였는데. 그리고 그 생각을 접었다고 어제밤에 다시 메일 드렸었는데. 이틀 동안 오고 간 메일을 밑에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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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oung <kistella49@hanmail.net> |
책이 나온 후 어머니께 관심을 일으켜주신 분들 중에
모시기 더 좋은 곳을 알아보도록 권한 분들이 계셨습니다.
자기 어른이나 주변 어른을 모셔봐서 좋다고 여긴 곳을 말씀들 해주셨죠.
무엇보다, 위치가 더 편리한 곳을 권한 분들이 많았죠.
그런 중에 저희로서도 한 번 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떠올랐습니다.
구파발 진관사 입구에 있는 '인덕원'이란 곳이죠.
불교시설이라는 점, 시설이 좋다는 점, 위치가 좋다는 점이 두드러졌습니다.
2년 전 요양원 알아볼 때 그곳 얘기를 해주신 분들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건물 신축이 진행중이라 해서 포기했었습니다.
어제 가 봤습니다.
282명 정원인데, 입소 신청을 하면 대개 2-3개월 기다려서 들어가게 된다는군요.
솔직히, 끌리는 점이 많았습니다.
매일 예불시간이 있다는 점,
저희 집에서 35분 거리밖에 안 된다는 점,
서울의 지인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다는 점,
북한산을 한 눈에 내다볼 수 있다는 점 등등...
그래서 일단 신청을 해두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신청을 해두더라도 꼭 옮겨모실 확신은 없습니다.
세종너싱홈 때문에 눈이 너무 높아진 탓입니다. ^^
예를 들어 식사를 각자 자기 침대에서 하시게 하는 것...
세종에서는 떠먹여 드리더라도 홀에 나와서 드시게 하는 것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그런 한 가지 일을 보더라도...
노인들을 관리 대상으로 보느냐, 생활의 주체로 보느냐 하는 차이를 느낍니다.
층마다 있는 거실도 크기가 작고 나와 계신 분들이 적더군요.
관료주의로 빠지기 쉬운 대형 시설의 약점이기도 하겠지만,
세종너싱홈의 노인 모시는 자세가 특출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아침에 남지심 선생님께 전화로 의논드렸습니다.
불교계 명사이기 때문에 불교계의 큰 사업이나 활동가들을 대개 아는 분이죠.
그분도 제가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점에 동의하시더군요.
그러나 객관적 장점이 많은 곳이니 더 세밀히 살펴보도록 권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 신청은 넣어놓고 틈틈이 나가서 더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곳 떠나시게 할 가능성 이렇게 말씀드려도...
정말 그분께 더 좋은 길이라면 저희 못지않게 열심히 권해드릴 것을 알기에 스스럼없이 알려드립니다.
20개월 전 그곳에 모실 때에 비해
어머니의 앞으로 생활에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큰 기대를 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쪽으로 이사 갈 궁리도 얼마 전부터 하게 된 것이지요.
앞으로 몇 주일 살펴보고 궁리해서 결정하려 합니다.
김기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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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협씨!
전번에 못뵈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어머님께서는 3월1일부터 신여사가 다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모셔온 엄여사는 밤근무로 바뀌었지요. 몇일전부터 엉덩이 부분에 아주 조그만 욕창이 자리를 잡으려고 해 지금 집중 치료중입니다. 크게 걱정 안해도 될것 같아요. 옮기실 마음이 있으시다구요? 불교계통이라니 그러시겠어요. 저희로서는 많이 섭섭하지만, 우리 욕심만 차릴수 없고 편하신 대로 하세요. 꼼꼼하게 살펴보신 후 결정하시면 따르겠습니다. 어서빨리 따뜻한 봄이 왔으면 좋겠어요. 어르신들 모시고 밖에 나가야 할텐데... 가슴 가득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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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장 너싱홈 <kistella49@hanmail.net> |
2월 12일과 25일 어머니 뵈러 가는 길에 여주 쪽의 전원주택을 구경했다. 아마 결국은 아파트로 낙착되겠지만, 혹시 전원주택 빌려서 살 만한 곳도 있을지 우선 검토해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25일 아내랑 가는 길에는 양평으로 둘러서 갔다. 아파트에서 살기로 할 경우 양평도 고려할 만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5일 다녀온 뒤 다른 가능성이 마음에 떠올랐다. 어머니를 옮겨 모실 만한 곳부터 한 차례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20개월 전에 비해 어머니의 '장래'가 커졌다. 그 때 막연히 생각하던 것보다 이 세상 계실 기간도 길어 보이고, 또 생활의 폭도 훨씬 넓게 내다보인다. 전망이 달라졌다면 다른 가능성도 검토해 드리는 것이 마땅한 길일 것 같았다.
책 나온 뒤 전화를 줬던 K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와 절 생활로 가까웠던 K 교수는 나와 동갑이고 그 어머님이 어머니와 동갑이다. 어머니 모실 요양원 찾는 데 나보다 더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내가 확실히 아는 사람이 K 교수다. 그는 내게 세 군데를 검토해 보도록 권했다.
세 군데 중 한 군데는 너무 시내라서 제쳐놓고, 원당 부근의 조그만 집을 1일에, 그리고 구파발 부근의 인덕원을 2일에 찾아가 보았다. 원당 쪽은 장점도 많지만 너무 규모가 작아서 의료 서비스 측면이 약할 것 같아 크게 기대를 걸기 어려웠다. 인덕원은 생활 분위기가 탐탁치 않은 점이 있지만 확실한 장점이 너무 많아서 일단 신청을 넣어두고 천천히 더 검토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덕원 다녀온 이튿날 원장님에게 옮기실 가능성을 메일로 알려드린 것이었다. 상대방이 서운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빨리 알려주는 것이 좋다는 게 내 신조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 하는 게 그 뜻 아닌가? 결과적으로 옮기실 수도 있고 옮기지 않으실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 어머니 걱정을 나 못지않게 알뜰히 해드리는 원장님이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하시도록 하는 것을 나는 대단히 중요한 일로 생각한다.
그런데 어제 아침 원장님의 너그러운 답장을 받고, 또 점심 때 만난 H 씨 부부에게 그 얘기를 하고 의견을 얻으면서 다시 생각하니 인덕원 정도의 대안을 갖고 어머니 아껴드리는 분들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릴 일이 아니라는 마음이 정해졌다. 그래서 인덕원에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일을 밤에 보내드리고야 편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는데... 그로부터 24시간이 지난 지금 어머니 옮겨온 이야기를 여기다 적고 있는 것이다. 사람 일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지금 한가족요양원에 누워서 편안히 주무시고 있다. 아침부터 식사도 못 하시고 몸도 덜 좋으신 상태니까 링거 꼽고 앰뷸런스로 모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천의료원의 간호사님이 면밀히 살펴보고, 또 살펴보고, 승용차로 모셔도 별 문제 없겠다고 다짐해 주었다. 뒷자리에 아내와 앉아 기분좋게 모처럼의 긴 여행을 즐기다가 끝자락에 와서 깊은 잠에 빠지셨다. 주차장에서 휠체어로 옮겨 앉힐 때 쌍욕 몇 마디 뱉으신 다음 싱긋이 웃고는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처음 들어가는 침대에 들어가 바로 단잠이 드셨다.
늦은 저녁을 아내와 먹고 죽 한 그릇 챙겨 어머니 방에 다시 올라갔지만, 죽보다 잠이 더 좋으시다는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다짐을 둔다. "가까이 계신다고 해서 제가 매일 가 뵈리라는 상상은 하지도 마세요. 저는 1 주일에 세 차례 이상은 안 가뵐 거예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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