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13. 11:29
1월 31일에는 혼자 갔고, 어제는 아내와 둘이 갔다. 해밑에 갔을 때는 모처럼의 언론 노출로 문의 전화가 많다고 직원 여러 분들이 다소 흥분된 기색을 보이기도 했었는데, 이제 차분한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 문의 전화에서 결실도 좀 있으면 좋을 텐데. 노인 모시는 일은 젊은이들 옮겨다니는 것처럼 바로바로 할 일이 아니니 더 기다려봐야지. "방귀가 잦으면 뭐가 나온다"는 말은 <임꺽정>에서 본 것이었던가?
점심 후에 노래자랑 시간을 가질 때가 많은가보다. 두 시쯤 도착했을 때는 파장 무렵이었는데, 역시 어머니가 판을 치고 계셨다. 정말 잘 부르신다. 일상의 대화를 거의 노랫말로 하시니 연습이 많이 된 덕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표현에 거리낌이 없으시다는 점이 더 중요한 이유 같다. 표정에도 말씀에도 거리낌이 없다. <아흔 개의 봄> 표지의 어머니 모습을 좋아한 이들이 많은데, 그 표정에서도 '거리낌 없음'이 느껴진다.
아드님 노래도 듣자고 청이 들어오는데, 여기저기서 "멍청송아지" 소리가 섞여서 들린다. 그 정도 봉사를 반갑게 받아들여들 주시니 정말 보람을 느끼겠다. 봉사 수준을 좀 높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께 "어머니, 며느리 노래도 한 번 들어보시죠." 했더니 어머니를 필두로 직원과 할머니들이 일제히 저쪽 구석에서 원장님과 이야기 나누고 있던 아내에게 공격 방향을 돌렸다.
공격이 거세기도 했지만, 아내는 어머니가 알아봐 주시는 것이 기뻐서인지 쉽게 호응했다. 들어올 때 아내가 먼저 올라왔는데, 곁에 있던 원장님이 "누가 오셨나요?" 여쭈니 "내 며느리구만." 바로 알아보시더라고. 아내 노래가 솜씨도 솜씨지만, 취향이 할머니들에게 그만이다. 두 곡을 뽑고도 열광적인 앙코르가 사그러들지 않자 내게로 화살을 돌려놓는다. 분위기 김빼는 데야 역시 내가 고수지. "꿈길" 한 곡 뽑으니 더 이상 "앙코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창가 지정석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머니 사교생활의 새롭게 발견한 측면 하나. 성질이 좀 괴퍅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다. 성미 급한 분이 치매에 드신 듯, 말을 빨리 하시고 좀 거칠게 하신다. 혼자 앉아 계실 때가 많고, 늘 주변에 관심을 강하게 기울이는 분이다. 한 번 어머니랑 앉아 있는데 잠깐 끼어들었다가 금세 제풀에 일어나 가시는 것을 보며 어머니가 "문제가 많은 사람이야, 참..." 하신 일을 적은 일이 있다. (이제 찾아보니 꼭 1년 전, 1월 30일의 일이었다. 적어놓는 것이 이렇게 좋은 면이 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반년쯤 전의 일인 것 같았는데.)
그런데 지난 번(1월 31일) 왔을 때 보니 이 '문제 많은' 할머니랑 어머니가 잠깐 농담을 나누시는데, 진짜 절묘한 수준이었다. 무술영화 고수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몇 합을 주고받는 것처럼 탁탁탁! 거의 선문답 수준으로 쿨하면서도 드라이한 응구첩대가 오고간다! 어제는 그 할머니 앉아 계신 옆으로 어머니 휠체어를 밀고 가는데, 어머니가 무슨 동작을 취하시기에 살펴보니 그 할머니랑 손가락으로 키스 날리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1년 사이에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몰라도, 그 할머니의 '문제'를 파악하고 소화해서 '특별한 친구'로 만드신 모양이다.
한 가지 뜻밖의 일은 반야심경을 외우는 데 함께 외우지 않고 내가 외우는 것만 주의깊게 듣고 계셨다. 다 외우니 "잘 외웠다." 칭찬해 주시고. <아흔 개의 봄> 몇 대목 읽어드리니 재미있게 듣고, 일부는 손수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하셨다. 정확히 기억되지 않는 일이라도 당신이 하셨음직한 말씀이나 행동으로 느껴지니까 흥미롭게 받아들여지시는 것 같다. 기억력의 문제점이 입력 측면에 많이 있는 것 같은데, 기록된 내용으로 반복해서 자극을 드리는 데 좋은 활성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며느리를 이제 제대로 알아보시는 것도 여러 해에 걸친 기억보다 최근의 입력이 제대로 된 덕분일 것 같다.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에서 "화탕중생" 한 꼭지를 읽어드렸는데, 14년 전의 글인데도 기억이 좀 되시는 듯, 주의를 잘 집중하고 반응이 활발하시다.
엄 여사 말로는 요즘 기력이 조금 떨어지셨다고 한다. 엄 여사는 간병인 중 제일 젊은 사람답게 행동거지에도 활기가 느껴지는 사람인데, 어머니 살펴드리는 두 달 동안 보니 뜻밖에 말하는 것은 매우 진중하다. 모처럼 의견을 주는 것이 내 관찰과 다른데, 나보다 더 잘 살핀 점이 있는지, 가급적 속히 다시 한 번 와서 살펴봐야겠다. 엄 여사 말을 들은 것 때문에 그럴싸하게 보인 것인지, 떠날 무렵 좀 더 놀아달라고 조르시는 것이 그냥 장난이 아니라 정말 원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머니의 공연 연장 요청 때문에 군포 형님 댁에는 일곱 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우리가 오늘(일) 올 것으로 메시지가 잘못 접수되어 있어서 식사는 좀 늦어졌지만, 내외분 다 티없이 반가워하신다. 형수님이야 원래 마음이 밝은 분이시지만, 형님 모습이 전보다 참 좋았다. 얼굴빛도 좋고 기분도 내내 좋으신데, 알고 보니 담배를 끊으셨단다. 세상사람 모두 끊어도 형님은 못 끊으실 줄 알았는데! 아이들을 현주가 거둬준 지 반년이 되는 이제 마음도 좀 놓이시는 것일까? 두 분 지내시는 것도 이제 걱정을 넘기는 것 같다.
'어머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국대 병원에 모셨습니다. (0) | 2011.03.09 |
---|---|
일산으로 모셔오다. (0) | 2011.03.05 |
어느 독자의 메일 (2) | 2011.01.28 |
2011. 1. 15 (0) | 2011.01.16 |
<아흔 개의 봄> 표지 (11) | 2011.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