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사회는 한국 사회에 비해 사람을 비판하는 방식이 두루뭉술한 느낌이 들었다. 두 가지 이유가 생각된다. 중국에 속해 있으면서도 최근까지 연변 조선족 사회는 외부와의 연결이 적은 편이어서 '좁은 사회'였기 때문에 '체면'을 조심스럽게 여긴 편이었을 것 같다. 또, '근대화'가 덜 되어 있어서 '엄밀함'이 덜한 전통시대 분위기가 많은 남은 편이었을 것도 같다.

두루뭉술한 태도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행방 없음"이다. 크게 봐서 두 갈래로 쓰이는 것 같다. 부드러운 편으로는 전혀 악의가 없는 사람인데 기능적인 판단력이 모잘라 엉뚱한 짓을 한다는, 감싸주는 뜻이다. "어리숙하다"는 뜻에 가깝다. 보다 가혹한 뜻으로는 잘못을 저지를 이유가 없는 데도 잘못을 저지른다는, "대책 없다"는 뜻이다. "그 사람 행방 없다." 고 하면 두 가지 뜻 사이의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어떤 뉘앙스를 띤 것인지 알아서 이해해야 한다.

반대말은 아니라도 대비되는 말이 "도리 없음"이다. "그 사람 도리가 없다"고 하면 단호한 비판이다. 비판을 넘어 비난에 가깝다. 말하는 데건 행동하는 데건 '도리'가 없다는 것은 존중할 만한 원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니 "사람도 아니다." 하는 뜻이다.

"행방 없음"은 보통사람들의 영역이고, 그런 말 듣는 사람은 행방을 찾으려고 애쓸 마음이 드는 것이 보통이다. 애쓸 마음도 들지 않는다면 "도리 없음"으로 넘어가게 될 것 같다.

어제 올린 평등에 관한 글은 내가 행방이 없었던 것 같다. 도리 없다는 말 듣기 전에 행방을 되찾도록 애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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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