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어머니 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일전에 서해문집과 계약했습니다. 재작년 11월부터 작년 6월까지 쓴 시병일기와 요양원 옮기신 후의 방문기를 중심으로 하고, 책으로 묶기 위해 무엇을 덧붙일지는 차츰 결정해 나가야지요. 오는 10월 중에 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사적인 글을 대중 독자에게 내놓는다는 것이 조심스러운 일이죠. 아버지 일기 낼 때보다 더 조심스럽습니다. 아버지 일기는 '일기'라고는 하지만 공적 성격이 강했던 글이니까요.
책으로 낼 가능성이 시병일기를 서너 달 쓴 시점부터 생각했던 것이기는 합니다. 애초에 큰형을 비롯해 어머니 상황 궁금해하는 분들께 소식 알려드리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지만, 아무래도 쓰다 보니 제딴에 글다운 글을 쓰려 애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생각도 들게 되었던 거죠.
그 가능성을 생각하다 보니 어머니를 뵈며 떠오르는 생각 중에서도 독자들을 염두에 둔 방향으로 글의 흐름이 잡힌 면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를 모르던 사람에게도 알려주는 내용. 그리고 저랑 비슷한 입장에서 노인 모시는 사람들이 함께 생각할 만한 내용.
병원에 계시는 동안에는 매일 가 뵈면서 눈에 보이고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적기에 바빠 그 가능성을 어렴풋이 생각은 하면서도 구체적인 생각을 하거나 글쓰기에 의식적으로 반영할 경황은 없었습니다. 요양원으로 옮겨 그곳에서 어머니 생활이 자리 잡히신 것을 보고 금년 들어서면서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기 시작했죠.
막연히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부터 마음에 걸린 것이 돈 문제였습니다. 책을 만들면 얼마라도 돈이 생길 것이고, 생긴 돈은 제 주머니로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잘못하면 효도를 빙자해 노모를 팔아먹는 꼴이 되지 않을까 겁이 나데요.
이 걱정 때문에 책 만드는 명분에 생각이 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싸한 명분이 있어야 "책은 이런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고, 돈은 부수적으로 생긴 것일 뿐이다." 우길 수 있잖아요? 옛날 어느 도둑놈이 "저는 새끼줄 하나밖에 집어온 게 없어요. 그 새끼줄에 소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던 것은 전혀 몰랐던 사실입니다." 우기더라는 얘기가 생각나네요. 쪼잔하죠? 제가 원래 좀 그렇잖아요.
<역사 앞에서>를 통해 아버지 모습이 세상에 전해지고 남은 것처럼 어머니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드리는 책이 된다면 명분이 그럴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는 핑계거리로 짜낸 생각인데, 막상 떠올리고 보니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굳어지네요? 이것도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이 즐겨 행하는 자기최면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최면이 너무 깊이 걸렸는지 이제 벗어날 수가 없네요.
계약을 맺고 난 지금까지도 마음에 불안이 남아 있어요. 그래도 저지르는 쪽으로 나서는 것은, 이 일이 제가 원래 안하던 짓인 만큼 마음이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할 만한 일이라는 개연성이 이만큼 있다면 용기를 내서 움직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글 팔아먹고 산 지 20년이 되어 가지만 지금까지는 글의 실용적 가치만 팔아먹은 셈인데, 이번 일은 글 자체를, 인격 자체를 팔아먹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해문집과의 묘한 인연 덕분에 이 일 진행이 빨라졌네요. 지난 달 낸 책, 책으로 묶어 낼 가치가 있는지 저는 자신이 없던 것을 열심히 만들어줬고, 만들어놓고 보니 정말 괜찮은 책 한 권이더라구요. 그러니 제가 자신 없고 불안한 구석이 있어도 좋은 결과로 이끌어줄 능력이(또는 인연이) 있는 회사 같잖아요.
<망국 100년> 작업을 7월 중순 끝낼 때까지는 이 책을 만들 방향에 관심 가진 분들 의견을 들으며 만연하게 생각하고 지내다가 7월 하순부터 달포 가량 작업으로 원고를 준비하려 합니다. 어머니도 의견 있으면 주세요.
기협 올림
'어머니 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일전에 서해문집과 계약했습니다. 재작년 11월부터 작년 6월까지 쓴 시병일기와 요양원 옮기신 후의 방문기를 중심으로 하고, 책으로 묶기 위해 무엇을 덧붙일지는 차츰 결정해 나가야지요. 오는 10월 중에 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사적인 글을 대중 독자에게 내놓는다는 것이 조심스러운 일이죠. 아버지 일기 낼 때보다 더 조심스럽습니다. 아버지 일기는 '일기'라고는 하지만 공적 성격이 강했던 글이니까요.
책으로 낼 가능성이 시병일기를 서너 달 쓴 시점부터 생각했던 것이기는 합니다. 애초에 큰형을 비롯해 어머니 상황 궁금해하는 분들께 소식 알려드리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지만, 아무래도 쓰다 보니 제딴에 글다운 글을 쓰려 애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생각도 들게 되었던 거죠.
그 가능성을 생각하다 보니 어머니를 뵈며 떠오르는 생각 중에서도 독자들을 염두에 둔 방향으로 글의 흐름이 잡힌 면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를 모르던 사람에게도 알려주는 내용. 그리고 저랑 비슷한 입장에서 노인 모시는 사람들이 함께 생각할 만한 내용.
병원에 계시는 동안에는 매일 가 뵈면서 눈에 보이고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적기에 바빠 그 가능성을 어렴풋이 생각은 하면서도 구체적인 생각을 하거나 글쓰기에 의식적으로 반영할 경황은 없었습니다. 요양원으로 옮겨 그곳에서 어머니 생활이 자리 잡히신 것을 보고 금년 들어서면서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기 시작했죠.
막연히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부터 마음에 걸린 것이 돈 문제였습니다. 책을 만들면 얼마라도 돈이 생길 것이고, 생긴 돈은 제 주머니로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잘못하면 효도를 빙자해 노모를 팔아먹는 꼴이 되지 않을까 겁이 나데요.
이 걱정 때문에 책 만드는 명분에 생각이 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싸한 명분이 있어야 "책은 이런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고, 돈은 부수적으로 생긴 것일 뿐이다." 우길 수 있잖아요? 옛날 어느 도둑놈이 "저는 새끼줄 하나밖에 집어온 게 없어요. 그 새끼줄에 소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던 것은 전혀 몰랐던 사실입니다." 우기더라는 얘기가 생각나네요. 쪼잔하죠? 제가 원래 좀 그렇잖아요.
<역사 앞에서>를 통해 아버지 모습이 세상에 전해지고 남은 것처럼 어머니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드리는 책이 된다면 명분이 그럴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는 핑계거리로 짜낸 생각인데, 막상 떠올리고 보니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굳어지네요? 이것도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이 즐겨 행하는 자기최면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최면이 너무 깊이 걸렸는지 이제 벗어날 수가 없네요.
계약을 맺고 난 지금까지도 마음에 불안이 남아 있어요. 그래도 저지르는 쪽으로 나서는 것은, 이 일이 제가 원래 안하던 짓인 만큼 마음이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할 만한 일이라는 개연성이 이만큼 있다면 용기를 내서 움직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글 팔아먹고 산 지 20년이 되어 가지만 지금까지는 글의 실용적 가치만 팔아먹은 셈인데, 이번 일은 글 자체를, 인격 자체를 팔아먹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해문집과의 묘한 인연 덕분에 이 일 진행이 빨라졌네요. 지난 달 낸 책, 책으로 묶어 낼 가치가 있는지 저는 자신이 없던 것을 열심히 만들어줬고, 만들어놓고 보니 정말 괜찮은 책 한 권이더라구요. 그러니 제가 자신 없고 불안한 구석이 있어도 좋은 결과로 이끌어줄 능력이(또는 인연이) 있는 회사 같잖아요.
<망국 100년> 작업을 7월 중순 끝낼 때까지는 이 책을 만들 방향에 관심 가진 분들 의견을 들으며 만연하게 생각하고 지내다가 7월 하순부터 달포 가량 작업으로 원고를 준비하려 합니다. 어머니도 의견 있으면 주세요.
기협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