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책" 함께 만들 서해문집 김선정 주간과 함께 갔다. 출판사에서 점심 후에 출발했는데 3시 막 넘어 도착했으니 집에서 가는 것과 시간이 비슷하게 걸렸다. 볕이 살짝살짝 들기도 하지만 비도 살짝살짝 뿌리는 꽤 선선한 날씨다.
방에 누워 계셨다. 너스 스테이션으로 먼저 가서 안내를 받아 들어갈 때 간호사님이(서 선생 말고 또 한 분, 이름도 모르는 채로 오래 지내다 보니 새삼 물어보기도 쑥스럽다.) "할머니, 누구 오셨나 보세요." 하니까 고개를 들고 바라보시는데, 김 주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눈쌀을 찌푸리고 집중해서 바라보며 "이 사람 난 모르는 사람인데?" 좋은 징조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라고 공자님도 말씀하셨지. 기억에 자신이 없으면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 얼렁뚱땅하실 텐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이만큼 자신있게 판별하시는 것은 상당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일이다.
김 주간이 "네, 저는 처음 인사드리는 거예요. 이 분은 아시는 분이죠?" 하면서 한 옆의 나를 가리키니까 눈길을 내게 돌리면서 순간적으로 얼굴이 허물어지신다. 그냥 기뻐하는 게 아니고, 마음이 턱 놓이면서 긴장 수위가 푹 내려가는 것이다. "그럼, 알구말구." 하시고는 또 한 순간에 표정에 장난기를 떠올리며 "셋째야, 너 셋째 맞지?" 그러고는 내가 뭐라고 엉구럭떠는 것은 들은 체도 않고 손을 뻗쳐 내 손을 당겨서 입을 맞춰 주신다. 말씀이나 동작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 내가 "저도 어머니 뽀뽀해 드리고 싶어요." 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들고 이마를 내놓으며 "어떠냐, 이마가 넓어서 뽀뽀하기 좋지?"
오늘은 많이 누워 계셨다고, 그때부터 저녁식사 때까지 앉아 계셔도 좋겠다는 간호사님 의견에 따라 복도 가 지정석에 모시고 나왔다. 녹차와 과자가 먼저 나오고, 얼마 후 김 주간이 사 간 딸기가 나왔다. 과자보다 찻잔부터 집어 드시기에 "어머니, 너무 뜨겁지 않으세요? 조금 있다가 드시죠." 했더니 "이게 뭐가 뜨거워? 딱 좋구만." 같잖아 하신다. 잘 드시고 잘 권하신다. 음식을 남기면 죄가 된다는 강박관념은 그냥 남아 계신 것 같다. 과식하시지 않도록 우리도 열심히 먹어야 했다.
딸기를 어머니 드실 것은 얇게 저며 놓고 우리 것은 통째로 담아 왔는데, 내가 찍개로 한 조각 찍어 드리자 받아 잡순 다음 찍개를 빼앗아 손수 한 조각 찍어 잡수셨다. 그리고 다음에는 찍개를 저며 놓지 않은 통딸기에 들이박으시는 것이었다. 한 입 가득히 물고 우물우물하시는 표정이 맛은 차치하고 그 충족감과 촉감을 즐기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저며 놓은 딸기는 내 차지가 되었다.
간식그릇을 깨끗이 비운 후 테라스에 모시고 나오려고 숄과 모포를 걸쳐드리는데 그릇들을 가리키며 "우리 참 깨끗이 먹었지?" 하며 좋아하신다. 나중에 치료사 김 선생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요즘은 몸의 불편도 별로 느끼시는 것이 없고 식사도 잘 하신다고. 4월 중에는 식사를 힘들어 하실 때가 많아 몇 주일 동안 죽을 드렸는데도 대충 절반밖에 못 드셔서 조금 걱정이 되었었다고 한다. 요즘은 충분한 분량을 즐겁게 드신다고.
테라스에 나가니 화분의 꽃을 보고 좋아하셨지만, 몇 분 안 되어 "춥구나, 들어가자." 하신다. 이것도 좋은 징조로 보인다. 바깥 공기를 좋아하시지만, 오래 있어서 좋겠다, 안 좋겠다 하는 것을 쉽게 판단하시는 것이다. 복도 가 옅은 햇볕이라도 있는 자리에 돌아와 앉아서도 자연을 누리는 마음은 그대로 이어졌다. 정원과 건너편 숲의 나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저 나무에도 생명이 있지. 또 저 나무에도." 불쑥 말씀하시고는 한참 있다가 "생명이란 참..."
다른 날에 비해 말씀 없이 앉아 계신 시간이 많았다. 나는 이것도 좋은 징조로 봤다.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기실 수 있는 것으로.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쭉 이어지지 않고 불쑥불쑥 이런 말씀이 나오다 저런 말씀이 나오다 해서 내용이 많이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인상적인 대목은 김 주간을 향해 "나는 우리 셋째 아들이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아서 좋아요." 별 맥락도 없이 꺼내셨던 말씀 같다. 또 한 대목은 나를 향해 "네가 이렇게 와 주니 내 마음이 감격스럽구나. 정말 기쁘고 고맙다." 그래서 "어머니, 어제는 와서 감격시켜 드리지 못한 것이 미안합니다." 능청을 떨었더니, "아니다, 너무 자주 감격하면 감격 값이 떨어진다. 가끔씩 와주면 된다."
기억력에는 문제가 있어도 사고력에는 별 문제가 없으시다고 여러 달 전부터 생각해 왔는데, 이런 말씀 하시는 걸 보면 기억력도 많이 향상되신 느낌이 든다. "너무 자주", "가끔씩", 이런 말씀이 시간의 흐름에 대한 분명한 의식 없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지 않다. 아니나다를까, 식탁에 앉혀 드리고 작별을 드리는데 언제 또 오겠냐고 물으시기에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너무 먼 장래라는 인상을 드리고 싶지도 않아서 "다음 주에 또 와 뵙겠습니다." 정도로 대답했더니, "다음 주?" 되뇌며 생각하는 기색이시더니 "그러면 이번에는 조금 일찍 오겠다는 거구나?" 하시는 것이 아닌가!
4월에 한 차례 기력이 떨어졌다가 회복되시면서 3월 이전보다 더 좋아지신 것이 분명하다. 마침 <망국 100년> 연재도 다음 주에 끝나니, 이제부터 매주 와 뵙는 쪽으로 애써 봐야겠다. 생각이 저렇게 명민하시면 "어머니 책"에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원고보다 더 좋은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모자와 숄을 참 좋아하신다. 테라스에서 들어와 숄을 벗겨드리려 했더니 "그냥 둬라. 난 이거 좋다." 모자는 우리가 들어올 때도 쓰고 계셨다. 주무실 때도 벗지 않으신다며 간병사님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