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에 도착했다. 현관을 향해 가다가 주방 밖에 있던 송 여사와 마주쳤다. 반가워하다 말고 난감한 표정으로 조금 후에 올라오라고 부탁한다. 침대에 누워 계시는데, 요즘 무심결에 긁는 습관이 심해져 피부가 더러 상하셨기 때문에 볼일 보러 내려온 동안 손을 묶어놨다고.
아마 내가 예고를 하고 왔다면 그런 난감한 장면을 어떻게든 피해 뒀겠지. 그러나 너싱홈의 운영 기준과 송 여사의 일하는 자세에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차피 별 문제가 없다. 그 동안 쌓아 온 신뢰가 없다면 민감하게 느낄 수도 있는 일인데. 그리고 어머니는 불평할 능력(?)을 충분히 가지셨기 때문에 심한 불만을 일으킬 방법으로 다룰 리도 없다.
"묶이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셨나. 3년 전 막 쓰러져서 일산 백병원 중환자실에 계실 때 생각이 난다. 보호자도 접근 못하게 하고 모든 책임을 다 질 것처럼 큰소리치던 년놈들이 한 시간 간격으로 나를 불러올렸다. 귀찮게 군다고 묶어놓은 것을 못 참아 어찌 날뛰시는지 감당이 안 되니까 할 수 없이 보호자를 불러들이고, 온갖 공갈협박을 해 대던 년놈들. 쓰러진 문제보다 중환자실의 학대가 그분 건강에 더 큰 위험을 가져왔다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도저히 그곳에 모셔둘 수 없다 생각해서 일반 병실로 옮겨달라고 하니 1인실밖에 없다고. 돈도 지지리 없던 시절인데, 끼니 거를 각오 하고 1인실에 며칠 모셨다. 제일 가까운 종합병원이라고 일 있으면 이용해 왔는데, 이젠 건강검진도 거기 가선 안한다. (이 대목에서 "년놈" 같은 표현을 참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내 화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 백병원 년놈들이 이 글 보고 명예훼손으로 고발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귀찮아서 그냥 놔두고 있었지만, 정말 그 병원 한 번 뒤집어주고 싶은 생각이 꿀떡같다.)
요양병원에 계실 때도 묶어드릴 필요가 있는 상황이 가끔 있었다. 매일 가 뵌 이유의 하나가 거기에 있었다. 필요할 경우 스스럼없이 묶어드리라고 나는 간병인에게 권하곤 했다.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보호자가 붙은 환자를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묶어놓는다든가, 함부로 다루는 짓은 어차피 못한다. 오히려 필요한데도 눈치보느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상황이었다. 간병인이 어머니 때문에 쓸 데 없는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줘야 그가 어머니에게 잘해드릴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래도 묶어드릴 필요가 생겼다는 사실은 걱정스러웠다. 한 달 전부터 기력이 조금이나마 떨어지신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묶어드릴 필요가 있을 만큼 당신 몸을 손상할 위험이 있다는 것은 정신이 혼미하신 때가 많아졌다는 것이 아닐까?
5분 후 방에 들어가 보니 편안하게 누워 계신데, 의식이 전처럼 초롱초롱하지 못하신 것으로 느껴졌다. 누워서 생각이 여기저기 옮겨다닐 때도 그 때 그 때 집중이 선명했는데, 어제는 사이사이에 초점 없는 시선을 허공에 던지는 공백이 있었다. 노래가락 화법의 틀도 좁은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송 여사 귀띔 하나는 요즘 들어 "떠날 때", "헤어질 때" 말씀을 많이 하셔서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내 앞에서 그쪽으로 얘기를 이끌어줬는데, 심각한 징조로 생각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언제든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말씀 범위인데, 송 여사가 가까이 느껴져서 그런 쪽으로 표현이 치우쳐 나타나는 정도인 것 같다. 간호사 서 선생과 원장님이 번갈아 들어와 의견을 말해 주는데, 전만 못하신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크게 걱정될 일은 없다고. 한 가지 특기사항으로 새로운 욕을 최근 쓰기 시작하셨다고 해서 무슨 희한한 욕인가, 잠깐 긴장했는데, "개년"이라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쌍년"보다 더 심할 것이 없지 않은가.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시간이 전보다 줄었다고 하기에 네 시쯤 앉혀서 바깥바람 좀 쏘여드리면 다섯 시 식사시간까지 앉아 계시기 좋겠다 생각되어 혼자 모시고 얼마동안 앉아 있었다. 반야심경을 외우니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따라 외우시고, 정신도 바짝 초롱초롱해지셨다. 그래서 예정보다 일찍 모시고 나와 우선 간식부터 드렸다. 식사량도 전보다 줄었다고 송 여사는 걱정했는데 간식 입맛은 여전하셨다. 과자를 드시다가 녹차잔을 드는 손길이 아주 익숙해 보였다.
테라스에 나가 햇볕과 바람을 접하자 바로 정신이 고양되시는 것이 분명했다. 반야심경을 다시 한 차례 외우는데, "고득 아녹다라삼먁삼보리..." 이하의 한 귀절을 빼먹으셨지만, 그냥 늠름하시다. 노래 몇 곡을 함께 부르다가 "네 노래 좀 듣자. 불러봐라." 해서 병원 계실 때 불러드리던 노래 몇 곡을 뽑으니 따라 부를 만한 것은 따라 부르고 그냥 들을 것은 듣고 계시다가 한 마디 아첨을 하신다. "노래 잘 부르는 아들이 있으니 참 좋구나." <행복의 나라로>는 앙콜을 거듭하셔서 3절까지 다 불러드렸는데, 가사에 매혹되는 감각이 그대로이신 것 같다. "제 친구가 만든 노래예요." 했더니, 반 년 전 여러 번 들은 말씀은 물론 다 잊으셨다. "그래? 참 훌륭한 친구를 뒀구나."
식탁에 앉혀드리고 떠나는데, "너 가지 마라. 여기 그냥 있어라." 하시다가 곁에서 원장님이 두어 마디 해드리니까 풀어주셨다. 가지 말라는 말씀은 방에서 혼자 모시고 앉았을 때도 한 번 하셨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기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지셨기 때문에 편안하고 즐거운 상대와의 시간을 아끼는 마음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내가 어머니와 거리 둘 생각을 근래 하는 것이 어떻게든 감지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금년 들어 시작했고, 몇 주일 전부터는 내년 봄 중국으로 떠날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면서 어머니 방문도 월 2회로 제한하고 있다가 더 줄일 기회를 찾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난 번 방문기에 이런 생각 적은 것을 보고 몇 분이 전화와 메일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표해 주셨다. 딱 한 분이 내 '결단'을 지지하고 격려해 주셨다. 참 고맙게 생각했다. 어머니도 아끼고 나도 아껴주시는 분인데, 어쩔 수 없는 내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흔쾌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써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런데 어제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면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게 무엇인가. 이 세상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애틋한 마음 일으키고 베푸는 것을 넘어서는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합리적' 사고라는 것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구석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삶의 의미 전체를 합리적 사고 아래 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어머니가 얼마나 더 오래 이승에 계시든 내가 붙어 있지 않아도 나름대로 어느 정도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을 영위해 가시리라는 것은 합리적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내 존재를, 그리고 나와의 시간을 아끼고 즐기시는 것보다 더 절실하게 내 존재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다른 일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것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주 나온 책이 예상 외의 좋은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어떤 섭리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그 책 덕분에 내 일과 생활의 조건이 크게 좋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책 성공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내가 '인간적 면모'를 드러낸 데 있다고 모두들 분석한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를 넘어 "어떤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하느냐?" 하는 데로 독자들의 관심이 넓혀졌다는 것이다.
'인간적 면모'를 드러낸 요체가 어머니와의 관계를 밝힌 데 있었다. 어머니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수십 년간 내가 '이성'에 의지해 살려고 발버둥친 것은 의지할 '사랑'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머니와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다른 사랑을 찾는 데는 큰 제약이 있을 것이다. 쉽게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오랫동안 나 자신을 괴롭히고, 주변사람들을 괴롭히고, 세상에 대한 내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살아 왔다. 어려웠던 만큼 늦게나마 큰 사랑을 깨우치게 되었으니, 현명하게 살기보다는 사랑을 지키고 키우는 일을 더 앞세우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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