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오랜만에 모르는 사람들의 모임에 초청받아 나갔다. 언론계 등 문화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매달 한 권씩 책을 읽고 저자를 초청해 토론을 벌이는 자리에 내가 <밖에서 본 한국사>를 업고 나간 것이다. 지난 연말부터 작업이 벅차 모든 초청을 사양하고 있는데, 이 모임은 너무 좋은 피드백 기회가 될 것 같아 예외로 한 것이다.
연락을 해준 김 선생이 몇 해 전 가까운 몇 분 모인 자리에서 마주친 일이 있는 분이고, 그 외에는 모두 초면이었다. 초면이라도 성화나마 미리 받들던 분은 '독설'로 일세를 풍미하는 고재열 기자. 이야기를 나누며 "역시..."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하는 내용보다 그 방식이 정말 감명깊은 것이었다. 강약, 완급의 조절이 자유자재한 그 재주는 타고난 품성과 깊은 연마가 합쳐진 작품 같다. 담론을 발전시키는 데 아주 훌륭한 재주다.
기대했던 대로 여러분들에게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듣고 좋은 자극도 많이 받았다. 자기 분야의 첨단에서 각자 활약하기도 바쁜 분들이 이렇게 꾸준히 공부의 길을 함께 지켜나간다는 것부터 존경스러운 일이고, 다년간 그 길을 지키면서 각자의 내공도 든든해졌을 것은 물론, 토론 분위기도 매우 활달하다.
활달한 분위기 속에 화제가 천방지축으로 오가다가, 문득 어느 분이 물었다. 내가 '노빠'로 통하는 까닭이 뭐냐고. 글쎄, 이 양반은 작년 내내 내가 <프레시안>에 쓴 글을 별로 안 본 분인가보다, 생각하며 "제가 노빠 맞거든요?" 대답하고 보니 싱겁다. 그래서 덧붙였다. "노빠뿐이 아녜요. 저는 유빠이기도 하답니다." 이건 역시 자극성이 있다. 내 글을 빠삭하게 살펴본 바 있는 김 선생까지 뜻밖이란 표정을 짓는다.
어쩌다가 그런 이상한 게 되셨냐는 당연한 질문에 나는 사실대로 고지식하게 답변을 했는데, 온 좌중이 기막힌 우스개라도 들었다는 듯이 폭소를 터뜨린다. 그 고지식한 답변인즉, 유 선생의 따뜻한 인간성에 내가 반했다는 것이었다.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유 선생의 능력만이 아니라 인품까지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조차도 '인간성'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는, 아주 광범하고도 강고한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언론의 보도만이 아니라 유 선생 자신의 글을 통해서도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유 선생의 모습에는 내가 크게 느끼는 그의 "따뜻한 인간성"이 잘 비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그의 인간성에 반하게 된 것은 98년 1년간 <삼성그룹사> 작업을 함께 하면서였다. 이제 기업사도 주례사 스타일을 벗어나 냉정한 반성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내 주장이 마침 IMF 사태 속에서 통한 덕분에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용역을 따냈는데, 역사학 쪽의 나랑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할 경제학자로 독일에서 막 돌아온 유 선생이 걸렸다. 여담으로, 우리의 연구 결과물은 사장되고 말았다. 삼성 측이 그것을 좀 제대로 받아들였으면 지금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얘기를 얼마 전 유 선생과 나눈 일도 있다.
유 선생의 프로젝트 수행 능력도 기대 이상이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배려 자세에서 나는 더욱 큰 감명을 받았다. 함께 일한 배 선생, 송 선생도 나에게서보다 그에게서 더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얻었을 것이 분명하다. 1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내가 유 선생 만나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능력보다 그의 인품 때문이고, 그 인품의 다른 면보다 바닥에 깔린 따뜻함 때문이다. 뜨거운 사람은 아니다. 그 따뜻함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두루 깔려 있어서 특별히 드러나지 않는 편일 것이다.
좌중의 여러분들이 유 선생의 '인간성' 얘기에 너무나 황당해 하는 기색이기에 떠오르는 대로 몇 주일 전 유 선생과 나누던 얘기 한 토막을 소개했다. 박정희 시대 고급관료들의 자세를 유 선생이 높이 평가한 얘기였다. 복지 분야 정책 발달 과정을 볼 때 계급이나 당파의 이익보다 공익을 앞세우는 자세가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유 선생의 얘기는 그 시대를 부정적인 눈으로만 보던 내게는 일단 뜻밖이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하면 비판보다 평가를 앞세우고자 하는 유 선생의 자세가 이 세상을 아끼는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깨달으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얘기를 듣고는 좌중에서도 다시 생각해 볼 면이 있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았다.
정치인으로서 유 선생의 역할에 대해 막연한 기대는 많이 가지만, 확실하게 바라는 마음은 없다. 그의 정책노선을 얼마만큼 지지하게 될지 확실한 판단도 없다. 그냥 사람 자체가 허턱 좋을 뿐인지라,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안 들고 그저 구경할 뿐이다. 이러면 유빠 맞지?
연락을 해준 김 선생이 몇 해 전 가까운 몇 분 모인 자리에서 마주친 일이 있는 분이고, 그 외에는 모두 초면이었다. 초면이라도 성화나마 미리 받들던 분은 '독설'로 일세를 풍미하는 고재열 기자. 이야기를 나누며 "역시..."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하는 내용보다 그 방식이 정말 감명깊은 것이었다. 강약, 완급의 조절이 자유자재한 그 재주는 타고난 품성과 깊은 연마가 합쳐진 작품 같다. 담론을 발전시키는 데 아주 훌륭한 재주다.
기대했던 대로 여러분들에게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듣고 좋은 자극도 많이 받았다. 자기 분야의 첨단에서 각자 활약하기도 바쁜 분들이 이렇게 꾸준히 공부의 길을 함께 지켜나간다는 것부터 존경스러운 일이고, 다년간 그 길을 지키면서 각자의 내공도 든든해졌을 것은 물론, 토론 분위기도 매우 활달하다.
활달한 분위기 속에 화제가 천방지축으로 오가다가, 문득 어느 분이 물었다. 내가 '노빠'로 통하는 까닭이 뭐냐고. 글쎄, 이 양반은 작년 내내 내가 <프레시안>에 쓴 글을 별로 안 본 분인가보다, 생각하며 "제가 노빠 맞거든요?" 대답하고 보니 싱겁다. 그래서 덧붙였다. "노빠뿐이 아녜요. 저는 유빠이기도 하답니다." 이건 역시 자극성이 있다. 내 글을 빠삭하게 살펴본 바 있는 김 선생까지 뜻밖이란 표정을 짓는다.
어쩌다가 그런 이상한 게 되셨냐는 당연한 질문에 나는 사실대로 고지식하게 답변을 했는데, 온 좌중이 기막힌 우스개라도 들었다는 듯이 폭소를 터뜨린다. 그 고지식한 답변인즉, 유 선생의 따뜻한 인간성에 내가 반했다는 것이었다.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유 선생의 능력만이 아니라 인품까지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조차도 '인간성'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는, 아주 광범하고도 강고한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언론의 보도만이 아니라 유 선생 자신의 글을 통해서도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유 선생의 모습에는 내가 크게 느끼는 그의 "따뜻한 인간성"이 잘 비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그의 인간성에 반하게 된 것은 98년 1년간 <삼성그룹사> 작업을 함께 하면서였다. 이제 기업사도 주례사 스타일을 벗어나 냉정한 반성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내 주장이 마침 IMF 사태 속에서 통한 덕분에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용역을 따냈는데, 역사학 쪽의 나랑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할 경제학자로 독일에서 막 돌아온 유 선생이 걸렸다. 여담으로, 우리의 연구 결과물은 사장되고 말았다. 삼성 측이 그것을 좀 제대로 받아들였으면 지금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얘기를 얼마 전 유 선생과 나눈 일도 있다.
유 선생의 프로젝트 수행 능력도 기대 이상이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배려 자세에서 나는 더욱 큰 감명을 받았다. 함께 일한 배 선생, 송 선생도 나에게서보다 그에게서 더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얻었을 것이 분명하다. 1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내가 유 선생 만나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능력보다 그의 인품 때문이고, 그 인품의 다른 면보다 바닥에 깔린 따뜻함 때문이다. 뜨거운 사람은 아니다. 그 따뜻함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두루 깔려 있어서 특별히 드러나지 않는 편일 것이다.
좌중의 여러분들이 유 선생의 '인간성' 얘기에 너무나 황당해 하는 기색이기에 떠오르는 대로 몇 주일 전 유 선생과 나누던 얘기 한 토막을 소개했다. 박정희 시대 고급관료들의 자세를 유 선생이 높이 평가한 얘기였다. 복지 분야 정책 발달 과정을 볼 때 계급이나 당파의 이익보다 공익을 앞세우는 자세가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유 선생의 얘기는 그 시대를 부정적인 눈으로만 보던 내게는 일단 뜻밖이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하면 비판보다 평가를 앞세우고자 하는 유 선생의 자세가 이 세상을 아끼는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깨달으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얘기를 듣고는 좌중에서도 다시 생각해 볼 면이 있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았다.
정치인으로서 유 선생의 역할에 대해 막연한 기대는 많이 가지만, 확실하게 바라는 마음은 없다. 그의 정책노선을 얼마만큼 지지하게 될지 확실한 판단도 없다. 그냥 사람 자체가 허턱 좋을 뿐인지라,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안 들고 그저 구경할 뿐이다. 이러면 유빠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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