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세의 미국 연방파산법정 판사 데이비드 숄은 자기 식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백인 남편과 흑인 부인의 부부는 요즘 세상에 제법 흔한 현상이지만 숄의 집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양아들까지 있다. 변호사 시절 마약중독자인 의뢰인이 버린 아이를 입양한 것이다.
요즘 숄 판사는 조금 쑥스러운 일로 주변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비아그라 값을 의료보험에 포함시켜 달라는 집단소송을 준비하는 것이다.
숄은 6년 전부터 건강상의 문제로 성행위가 부진하다. 여러 가지 요법을 시도해 봐도 별 효험이 없다가 작년 초 비아그라가 나오자 드디어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았다. 그 아내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한 알에 10달러씩 하는 비아그라 값이 숄에겐 벅차다. 소비자 보호운동에 다년간 종사해 온 숄은 원만한 성생활이 의료보험 가입자의 필수적 권리임을 주장하는 집단소송을 작년 가을에 제기했다.
소송이 계류된 상태에서 지난 12월 숄이 속한 의료보험조합 칼메드가 한 달에 네 알씩 비아그라 값을 보험금으로 지급하도록 방침을 바꿨다. 그러나 숄 판사는 소송을 취하하지 않고 보강해서 다시 제출했다. 한 달에 여덟 알 값은 지급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의 아내는 “아쉬운 대로 그 정도는...” 말끝을 흐리고 웃는다.
자신의 성적 무능력을 선전하는 것과 같은 이 소송이 악의 없는 농담꺼리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 친구 주장이 법정에서 발기가 될까?” 숄과 맞서는 칼메드 측 변호사의 말이다. 그래도 24세의 딸은 아버지의 고충을 이해하고 오히려 그 용기를 가상해 한다. 50대 남자라면 당연히 가질 문제를 감추는 사람들이 더 딱하다는 것이다.
‘삶의 질’을 위한 비용을 어디까지 의료보험에 넣느냐 하는 것은 명쾌할 수 없는 문제다. 혜택의 폭이 넓어지면 그만큼 가입자의 부담이 많아진다. 미국의 의료보험업체 중 40%가 비아그라 값을 보험내용에 포함시키고 있고 보험가입자의 49%가 이에 찬성한다는 것이 최근 조사다.
의료보험은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에게 건강의 조건을 최소한의 수준까지 충족시켜 주는 제도다. 가난한 사회라면 기초수준의 의료서비스만이 제공될 것이고, 부유한 사회라면 비아그라나 미용수술 같은 사치스러운 서비스까지 포함될 것이다. 숄 판사의 용기와 솔직성은 보기 좋지만 기아와 질병이 판치는 세계의 구석구석을 생각하면 씁쓸한 느낌이 든다. 건강이 행복의 조건이지, 행복이 건강의 조건이라 할 수 있는가.
10년쯤 전에 썼던 글 한 꼭지가 생각난 것은... 연초부터 <망국 100년>을 주 2회로 끌고 오다가... 내일은 한 차례 꼭 쉬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주 2회"의 강박에 생각이 미친 겁니다. 근데, 꺼내 놓고 보니 10년 전에는 완전히 남의 나라 일로 생각하던 것이 이제 우리 사회에도 가까이 닥쳐 있네요. 남의 나라 일로 볼 땐 속 편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