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16. 13:06
 


1984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몇 달을 일본 교토에서 지냈다. 중국과학사에 마음을 두고 고대 역법을 공부해 온 내게 교토대학의 인문과학연구소는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교토대학에서 중국사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박 선생이 내 보호자 노릇을 해줬는데, 박 선생 소개로 역시 중국사를 공부하고 있던 정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정 선생이 바둑을 무척 좋아하는 분이어서 바로 바둑판 앞에 앉게 되었다.

정 선생 기력은 내게 석 점 붙일 만한 정도라고 생각되었는데, 치수 내려가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분이었다. 몇 판 둬보고 두 점까지 내린 다음 더 이상은 때려죽여도 내릴 생각이 없었다. 나는 치수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라서 그 정도로 두게 되었다.

둘이서 몇 판 두다가 정 선생이 사에키 기원으로 안내해 줬다. 일본에 생각 외로 영업하는 기원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며, 일본인들이, 적어도 바둑 두는 일본인들이 집밖에서 노는 것을 한국사람들처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에키 기원은 교토대 정문에서 남쪽으로 십여 분 거리의 전통가옥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책하기도 좋은 동네라서 며칠에 한 번씩 들르게 되었다.

정 선생과 함께 구경간 며칠 후 혼자 바둑두러 들르니 부사범이(이름이 도다였던가? 4단이었다.) 몇 급 두냐 해서 1급이라 했다. 아마5단 단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아마 단제가 정착되어 있지 않아서 아마추어로 센 사람을 그냥 1급이라고 할 때였다.

그런데 일본에는 아마 단제가 정착되어 있어서 1급이라면 아마초단보다 아래였다. 그래서 내게 대여섯 점 붙여야 할 상대와 대국을 하게 되었다.

한 판 두는 것을 보니 자기네 1급 하고는 다르니까 부사범이 말을 붙인다. 그래서 사정을 얘기하니까 한참 생각해 보다가 자기랑 한 판 둬보자 하고 내게 흑돌을 준다. 그래서 가볍게(나로서는 매우 점잖은 수법으로) 밀어붙여 줬더니 이제부터 3단으로 두라고 한다. 한국기원 5단이면 일본기원 3단 정도가 맞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 기원에서는 얼마동안 수십 국을 두면서 무패의 전적을 기록하게 된다.

며칠 후 내가 기원에 있을 때 마침 정 선생이 들렀다가 내가 3단으로 두고 있는 것을 보고 분개해서 이 분은 5단이라고 항의했는데, 부사범은 웃으며 천천히 올려드리겠다고, 곧 올라가실 거라고 대답했다. 정 선생은 거기서 2단으로 두고 있었는데, 내게 석 점으로 내릴 생각은 안 하면서 일본인 상대로는 내 단수를 확보해 주려 하니, 참 애국자시다.

며칠 후 사에키 사범에게 한 수 지도를 받았다. 사에키 7단은 교토 아마바둑계의 원로로 온화한 인상의 노신사였다. 기원에 나와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지도를 받으려면 약간의 수업료를 내는 것이 그곳 예절인 모양인데, 나랑은 예외로 무료지도를 베풀어주셨다.

역시 고수였다. 그러나 석 점이나 깔았는데... 석 점 붙이면 조훈현도 자신있을 때였다. 신나게 까불다가 두어 군데 당하고는 너무 늦기 전에 정신차려서 안전한 승리를 지켰다. 판이 끝나자 사에키 선생,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빙긋이 웃음을 띠고 몇 가지 촌평을 해준 다음 옆에서 관전하고 있던 부사범에게 말했다. "김 선생은 이제 4단으로 두시도록 하게." 부사범, 눈이 뗑구레져서 뭐라고 하려는데 노 사범이 한 마디 덧붙였다. "자네보다 센 분이야." 부사범은 어안이 벙벙해서 나오려던 말이 도로 들어가버렸다.

그러다가 임자를 만났다. 농학부에 유학 와 있던 송 선생을 정 선생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나랑 딱 맞는 상대였다. 기력도 비슷할 뿐 아니라 우격다짐으로 두는 힘바둑 취향이 서로 딱 맞았다. 학위논문 준비에 매달려 좋아하는 바둑도 잊어버리고 살다가 겨우 풀려나는 판에 나랑 마주치니 너무너무 좋아한다. 둘이서 둔 바둑에 내가 승률이 앞섰지만, 그분이 오랫동안 안 둬서 손이 굳어 그렇지, 나보다 약한 바둑이 아니었다.

교토를 떠날 때가 되어 갈 때 교토신문사에서 "아마추어 선수권 및 승단대회"가 있었다. 5단 이상은 선수권전이고 4단 이하는 승단대회였다. 승단대회는 4전 전승을 올리면 무료로 상위 단증을 수여하고, 4승 1패를 올리면 1만엥인가 최소한의 수수료를 내고 상위 단증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거 한 번 나가보자고 송 선생과 의논이 되어 일요일 아침에 교토신문사로 갔다. 그런데 둘이 나란히 접수시켜 놓았더니 1회전을 우리끼리 붙게 되었다. 내가 졌다.

동족상잔의 1회전을 넘기고 일본인 상대로는 피차 전승을 거둬 송 선생은 4전 전승, 나는 4승 1패로 승단 자격을 땄다. 그런데 대국 끝난 뒤 주최측에서 구수회의를 하는 것 같더니 한 사람이 우리에게 와서 얘기한다. 4단 단증을 가지지 않은 분들이기 때문에 5단증을 드릴 수 없다, 단증은 드리지 못해도 5단 기력을 가진 고수로서 존경심을 표한다는 것이었다.

송 선생은 불같이 화를 냈지만 나는 그저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처리를 어째 그 정도로밖에 못하는지. 와서 노는 행동거지만 봐도 일본기원 회원으로 끌어들여 손해날 일 없을 손님들이라는 게 뻔히 보일 텐데. 일본 사회에서 배울 만한 점이 여러 가지 있지만, 이런 건 정말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것이다. 접수를 받을 때는 자격에 문제가 없다가 상을 줄 때는 문제가 생기다니.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 돌아가는 걸 보면 이걸 타산지석이 아니라 모범으로 삼는 게 아닌가 씁쓸한 생각도 든다.

이튿날 사에키 기원에 들르니 면 있는 이들이 모두 승단을 축하한다고 하는데, 이러저러해서 승단이 안됐다고 하니까 누구보다 부사범이 분개한다. 사에키 사범께서 4단으로 인정하셨는데 자격에 무슨 문제가 있냐는 것이었다. 나를 상수로 인정하기가 그렇게 힘들던 분이 이렇게 나서주는 것은 애국심보다도 애원심이 더 강해서였을까?

그 후로 일본에 많이 다니지 않게 되었다. 잠깐잠깐 들러도 그곳에서 바둑돌 만질 일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만일 일본기원 5단증을 쥐고 있었다면, 들르는 길에 기원 들르는 재미도 더러 찾게 되고, 그 재미에 더 많이 머무르게 되고, 그러다가 내가 지금보다는 친일파가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데... 하는 생각도 든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