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12. 09:05

 

지금이야 어차피 퇴직할 나이가 되었지만, 또래들이 다 현직에 있어서 "어느 대학 아무개 교수"로 이름 내놓을 때 나는 "역사학자 아무개"로 통하면서 마음이 좀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확실한 소속이 없는 타이틀이니까 인정하고 않고가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다. 내 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저게 무슨 역사학자야?" 할 것이 안 봐도 훤하다.

 

나는 워낙 타이틀 붙이기를 싫어했다. 현직에 있을 때도 여러 사람들 어울리는 자리에서 초면 인사하는 상대와 악수하며 거두절미하고 "김기협입니다." 하면 상대가 어리둥절할 때가 더러 있었고, 곁에 있던 친한 선배에게 "당신은 이름 석 자면 통하는 '천하의 김기협'인가?" 농담조의 주의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현직에서 빠져나오고 보니 세상 살아가며 뭐라도 하려면 타이틀이 있어야 한다. 신문사 비정규직으로 있을 때 더러 "oo일보 김기협입니다." 자기소개를 하며 낯 간지러울 때도 있었는데, 그나마 그만두고 나니 "역사학자" 밖에 남은 게 없었다. 그러니 그 타이틀마저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최후의 정체성' 같은 느낌이 드는 이 타이틀에 근년 스스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작년에 학계 후배들이 모처럼 연구프로젝트 참여를 권해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여러 해 치밀한 연구작업 없이 평론활동으로 지내온 내게 대단히 반가운 권유였다. 이거 제대로 해내면 "역사학자" 타이틀 쓰는 데 불안한 마음이 싹 가실 것 같았다.

 

그런데 고심 끝에 이 권유를 사양하면서 내 정체성 불안증은 오히려 도져버렸다. 하려 들면 웬만큼이야 해낼 수 있겠고, 품질에 대해서도 함께 하는 동료들이 보증을 해줄 테니 타이틀 굳히는 데는 첩경에 틀림없다. 연구비 등 조건도 좋았다. 분명히 참여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마음을 먹고 나니, 이 작업에 들일 노력을 다른 데 써야겠다는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가 "I would prefer not to." 하는 심정을 알겠다.

 

다른 한편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근대학문에까지 번져왔다. "질문하는 능력"의 거세가 체계적으로 이뤄져 온 것이 분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계속하는 사람은 혁명적 성과를 이루거나 아니면 묵살된다. 나는 혁명을 싫어하는 보수주의자인데다가 묵살을 싫어하는 자존심은 가진 사람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그래서 소설 쓸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남아있었다. 소설을 써 내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을 쓴 나의 타이틀은 무엇이 될 것인가? 일흔 나이에 데뷔작을 내는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일 것이고, 소설 작가도 "역사학자 김기협"으로 통하게 되는 것 아닐까? 불편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쓰는 일 자체에 비해서는 큰 문제가 아니니까 그냥 접어두었다.

 

그런데 며칠 전 뜻밖의 초청 하나를 받으며 접어둔 문제를 도로 꺼내보게 되었다. 11월의 홍명희문학제에서 발표를 해달라는 초청이었다. 초딩 때 빠져 읽은 <임꺽정>은 내 생각과 심성을 빚어내는 데 재료도 되고 틀도 된 내 '인생의 책'이다. 그런 만큼 그 책에 관한 생각을 여기저기 적은 데가 있는데다, <해방일기> 작업에서 그 작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그것을 보고 주최측에서 나를 초청할 생각이 든 것이다.

 

홍명희와 가까웠던 정인보, 신채호, 안재홍, 문일평 등 '국학자'들 생각이 난다. 근대학문을 들여오면서도 그대로 들여오지는 않았다. 전통학문과의 접목을 시도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그 시대 그 사회의 필요에 맞춰 '공부' 방법을 모색했다. <임꺽정> 집필도 그런 맥락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임꺽정>에 그려진 조선시대의 모습에만도 큰 학문적 가치가 인정되는데, 홍명희는 자기 공부의 성과를 그 작품으로 풀어낸 것이다.

 

내가 소설 쓸 생각을 한 것이 홍명희를 꼭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니지만, 서양의 여러 사상가들이 '공부'를 담는 그릇으로 소설을 활용한 것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근대적 학문의 한계를 생각하며 소설을 떠올린 것이다. 지금 "역사학자"의 자격이 근대적 학문의 기준에 따라 판별되는 것이라면, 그 타이틀을 반납하는 것이 옳겠다. 몇 주일 홍명희의 입장에 생각을 모아 보면서 내가 역사학자의 정체성을 벗어던질 길을 가늠해보겠다. 아마 11월 초의 문학제 때는 "전 역사학자 김기협"의 이름으로 발표하게 될 것 같다.

 

평생의 공부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이후"를 화두로 거는 일이 거듭되었다. 냉전 이후, 자본주의 이후, 서세동점 이후... 이제 "역사학자 이후"까지? 역사학자 이후의 김기협이 역사학자 이상이 될지 이하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려나, "역사학자 이외"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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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