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말 도널드 트럼프가 드디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2016년 공화당 후보로 나서서 패퇴한 트럼프는 2020년 공화당의 '불공정 경선'에 불복, 무소속 후보로 나서서 다시 패퇴하고, 2024년 또 무소속으로 나가 39% 득표로 당선되었다.) 미국의 제반 정책, 특히 대외정책은 반동적인 방향으로 치달았다. 경제 쇠퇴로 달러화의 권위가 무너진 후 미국의 힘은 군사력에 편중되었고, 이 힘을 최대한 휘두르자는 일부 미국인의 야욕이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실현된 것이었다.

 

2026년 7월 4일 미국의 무수단리 핵공격을 트럼프 행정부는 '실수'라고 변명했다. 발사장치가 실수로 작동되어 핵폭탄이 발사된 것이라는 변명이었다. 그러나 수천 명의 목숨을 빼앗고 핵전쟁의 위험을 불러낸 사건을 놓고 이 변명을 곧이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국 정부는 그 얼마 전에 미사일디펜스(MD)의 완성을 장담했다. 40년에 걸쳐 수백조 달러 미국민의 세금을 잡아먹은 MD는 미국의 경제적 쇠퇴를 몰고 온 주범으로 매도당해 왔다. MD가 가치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북한의 핵공격을 유도하는 데 무수단리 핵공격이라는 '실수'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했다. 행여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거사일을 미국 건국 250주년 기념일로 잡지 않았는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정부들이(미국 정부를 포함해) 유감을 표하고 거의 모든 기관들이(미국의 기관들을 포함해) 미국 정부에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북한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더욱 뜻밖인 것은 가장 예민한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던 중국 정부도 긴 침묵을 지킨 것이었다. 언론이 접촉한 중국 지도자들은 이 일이 너무 중대한 일이라서 대응 방향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7월 7일 정오(현지시간)에야 나온 중국의 첫 공식 반응은 총리 담화의 형식이었다. 담화문 모두에서 예 총리는 무수단리의 핵미사일 폭발이 실수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 미국 정부의 해명을 믿는다는 점에서 북한 정부와 입장을 함께 하며, 따라서 중국도 북한도 이 일 때문에 미국을 적대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이어진 중국의 대응 방침은 중국의 입장을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중국 정부는 '실수'의 위험을 가진 미국의 핵무기를 전면 철폐하고 핵미사일기지를 해체할 것을 미국에게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담화문의 말미에는 거의 '선전포고'의 의미를 가진 내용이 담겨 있었다. 미국이 자진해서 핵무기를 철폐할 것을 중국은 믿지만, 그 시작을 돕기 위해 이번 '실수'를 일으킨 애리조나 주의 조지 부시 기지는 중국이 파괴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7월 10일 오후에 다섯 발의 핵미사일을 이 기지를 향해 발사하겠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MD가 완성되어 있는 이상 중국의 핵미사일은 미국인의 분노를 일으키는 것 외에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7월 10일의 발사 계획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10대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했다. 중국 정부는 사흘 동안 아무런 대꾸도 없다가 다섯 발의 핵미사일을 발사했다.

 

7월 7일의 총리 담화를 앞두고 중국 정부가 미국의 어떤 사람들과 어떤 접촉을 가졌는지는 그로부터 20년 넘게 지난 2047년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7월 7일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놓고 보면 중국 정부와 미국 군부 사이에 어떤 범위의 강력한 합의가 이뤄져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트럼프는 조지 부시 기지의 민간인은 소개시키더라도 군 소속 요원들은 기지를 지킬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기지의 지휘관들은 7월 9일 밤 모든 병력의 철수를 명령했다. 이 철수가 치밀하고 순조롭게 이뤄진 것을 보면 더 상급의 지휘관들이 개입한 것이 분명하다. 덕분에 세 발의 중국 핵미사일이 기지에 명중했지만 기지에서는 인명 피해가 하나도 없었다.

 

인명 피해는 엉뚱한 데서 일어났다. 트럼프가 자랑하던 MD는 예고된 시간, 예고된 장소의 공격임에도 겨우 두 발을 요격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요격된 두 기 중 하나가 샌프란시스코 서쪽 20킬로미터 해상에 떨어지면서 폭발, 작은 해일을 일으키고, 이 해일이 금문교 밑으로 밀려들어와 저지대 시가지를 파괴하면서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미사일이 떨어지고 있는 동안 현역 장성들로 구성된 혁명위원회가 트럼프 대통령과 울포비츠 국방장관을 반역 혐의로 체포하고 국정을 장악했다. 혁명위원회의 첫 코뮈니케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미국 혁명위원회는 조지 부시 기지를 폭파한 중국 정부의 도움에 감사한다. 이제부터 미국인은 전 세계 인민과 운명을 함께 할 것이다."

 

'7월 위기'를 계기로 인류사회가 깨어났다. 산업혁명 이래 계몽주의 차원에 묶여 있던 사람들의 정치의식이 인류의 장래를 함께 걱정하는 방향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정치사상계에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 개인주의와 사회주의의 길항으로 옮겨졌고, 민주주의에 대한 맹신이 선거주의와 계급주의의 분화로 나아갔다. 이 변화에서 '중국 모델'이 큰 역할을 맡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새로운 정치사상의 함양을 위한 고전 자료가 풍부하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15억 규모의 사회를 운영해 온 경험이 인류사회의 운영에 유리한 점이었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2047년에도 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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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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