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선택"을 다시 생각한다.

 

평화운동가 정욱식 선생이 소설을 써냈다. 잘 썼는지 못 썼는지를 떠나, 그가 왜 소설 쓸 생각이 났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 자신 내년부터는 다른 형태의 글보다 소설을 통해 생각을 발표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남의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좀 더 재밌고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는책을 쓰고 싶었다고 본인은 말한다. 지금까지 적잖은 글을 발표해 온 그가, 자기 글이 별로 재미가 없고 알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물론 재미가 있고 없고, 알기 쉽고 어렵고는 상대적인 문제다. 하지만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필요를 느낀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자기 글에 스스로 불만을 가졌다는 증거로 볼 수 있겠다.

집에서 새던 바가지가 밖에 나가면 안 새나?” 하는 말이 있다. 장르를 바꾼다 해서 같은 사람 쓰는 글이 재미가 더 생기고 알기가 더 쉬워질 수 있나? 내 보기엔 그렇다. 소설에서는 정확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확성을 아주 내다버리는 것은 아니라도, 적어도 한 발 물러설 수 있다.

지난 십여 년간 정 선생이 열심히 글을 써온 목적이 뭔가? 자기 생각을 널리 알리려는 것이다. 그 글을 독자가 시간 내어 읽어주려면, 전하려는 생각도 좋은 생각이어야 하지만, 전달수단인 글에도 이런저런 장점이 있어야 한다. 여러 장점 중에 제일 앞서는 것이 신뢰성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글이라도 내용이 믿을 수 없는 것이라면 효용성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신뢰성을 담보하는 첫 번째 조건이 정확성이다. 이 필자가 글에 담는 내용이 사실과 부합한다는 믿음 없이는 생각의 전달이 안 된다. 아무리 밀리언셀러라도 이 믿음이 없으면 소비재 역할에 그친다. 독자에게 쾌락의 대상일 뿐이지, 독자의 생각과 힘을 키워주지 못한다.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필자는 정확성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정확성은 경쟁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방향의 영향을 사회에 끼치고자 하는 필자들이 각자의 글의 정확성을 독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이 경쟁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 학술과 자료다. 이 때문에 개혁파는 수구파와의 경쟁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에 직면하기 쉽다. 학술적 권위와 자료의 생산-유통에서 수구파가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정의의 관점에서 비판할 생각이 없다. 세상이 바뀔 필요가 있다 해도 가급적 서서히 바뀌는 편이 좋다고 보는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안정성도 사람들의 행복과 만족을 보장하는 중요한 조건 아닌가. 서서히 바뀌는 편이 더러 답답한 문제는 있다 하더라도 너무 빨리 바뀌어서 위험을 겪기보다는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정의(正義)의 문제보다 정도(程度)의 문제를 나는 중시한다. 개혁의 속도가 늦더라도 방향만 지켜진다면 참고 견디겠는데, 방향까지 뒤집히거나 사라질 정도로 수구파의 전횡이 심하다면 참고 견딜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좀 점잖지 못한 짓이라도 할 필요가 있다. 소설 쓰는 것 같은 짓이라도.

그런 취지에서 정 선생의 새로운 시도를 지지하고 공감한다. 다년간 많은 글을 통해 정확성에 대한 신뢰도를 쌓아온 단골 독자들은 근거를 명시하지 못하는 상상이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답답한 글을 저자의 좋은 뜻 때문에 읽어야 하던 글 고문에 대한 보상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내게는 그렇다.) 그리고 정 선생 글에 접해보지 못한 이들에게도 좀 더 재밌고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는책으로 권할 수 있을 것이다.

본격문학으로서의 가치는 저자 자신 바라보지도 않은 것이고, 2018년 봄의 상황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수명도 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길지 않은 기간이라도 “2017년의 선택에 어떤 의미가 얹혀 있는지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고, 그 효용에 맞춰 분량도 가볍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운명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하고 공부를 해온 사람의 하나인 저자가 생각을 알뜰하게 담은 이 책은 이미 그의 주장에 공감하던 이들에게도 생각을 정리하는 데 적지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