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3. 11:50

 (제일 처음 썼던 글을 잃었다가 이제 메일 속에서 찾아 올립니다.)

며칠 전부터 정신이 많이 맑아지신 것 같다. 영양상태, 혈액순환 등 건강의 기반조건이 안정되신 덕분인 것 같다. 그러나 큰 회복을 바랄 일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두 달 되었나? MRI 뇌 촬영을 한 후 한 선생도 "뇌가 쪼그라드신다"는 표현으로, 뇌 세포의 신진대사가 거의 막힌 본격적 노쇠현상이니 이제 더 다른 검사를 해 드릴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체념을 권했었다.

그래도 좋아지신 상태가 1주일 가까이 유지되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서너 달 동안 사람 못 알아보시는 것은 물론, 주변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인식하는 상태를 반 시간도 유지하지 못하시던 분이 눈알을 또록또록 움직이시고, 주변의 배려를 느낄 때는 입술을 오무려 웃음도 띠신다.

간병인 여사분들이 어머니를 진심으로 귀여워들 하는 것 같아 참 다행이다. 내가 곁에 모시고 있을 때는 긴장이 되지 않는지 입을 떼어 말씀하시는 일이 별로 없는데, 틈 나는 여사분이 있으면 곁에 와서 어머니를 얼려 입을 떼시게 만들어드린다. 모시고 지내는 시간이 나보다 길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어머니 주의를 불러일으키는 재간들이 참 좋다. 내가 없을 때도 저런 식으로 적당한 자극을 드리려고 애써 주리라 생각되어 참 고맙다.

늙으면 애기가 된다더니, 여사님들 앞에서 어머니는 온갖 애기노릇을 다 하신다. 내가 없을 때 재미있는 반응 보이신 것을 여사님들은 녹화방송도 해준다. 요새만큼 회복되시기 전 언젠가, 식사 준비를 해드리면서 "할머니, 지금 식사가 아침이예요, 점심이예요, 저녁이예요?" 말을 걸었더니, 눈을 모처럼 똑바로 뜨시고는 "지금 나를 시험치는 거냐?" 호통을 치시더라고, 몇 번째 리플레이를 해주면서도 하염없이 재미있어들 한다. 역시 박사 할머니가 다르시다고.

정신이 맑아지시니 걱정되는 면도 있다. 모시고 앉았을 때 눈길이 마주치거나 이마에 뽀뽀를 해드리는 등 조그만 자극이 있을 때, 얼굴을 찡그려 울상이 되시고는 눈물까지 흘리시는 일이 자주 있다. 한 번 그런 상황에서 마침 곁에 김 여사가 있어 물어보았다. 내가 없을 때도 저런 표정을 지으시는 일이 자주 있냐고.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역시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심리적 고통을 느끼시는 것일 게다. 내 얼굴을 보며 지나간 일의 어떤 대목이 떠올라 회한에 빠지시는 것이겠지.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오신 일생을 마무리하는 자리에 누워서도 마음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시다니...

그러나 이것도 마음을 다잡아 생각한다. 기나긴 고해를 떠나시는 마당에 회한을 반추할 시간을 가지시는 것도 당신의 일생을 더욱 충실하게 만드는 기회가 아니겠는가. 몸의 고통이 적어서 마음의 고통에 몰두하실 수 있는 것이 그분의 복이라 생각하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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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