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5. 11:25

 

한국의 고스톱처럼 중국의 '국민스포츠'로 꼽을 것이 '훙스(紅十)'였다. 한국에서 더러 노는 '빅투(big two)'와 노는 방식이 꽤 비슷한, 브리지 종류 카드놀이인데, 훙스(하트10과 다디아먼드10)를 쥔 선수끼리 편이 된다는 점이 특색이다. 훙스 두 장을 혼자 쥐었으면 나머지 세 사람이 모두 한 편이 된다. 공원에서든 길가에서든 네 사람 둘러앉을 만한 자리가 있는 곳에서는 훙스 노는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카드 한 벌 있고 사람 넷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으니 고스톱에 필적하는 간편한 놀이다.  

 

간편하다는 점에서 훙스에게 밀리지만 진짜 인기있는 놀이는 역시 마작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훙스는 마작의 대용품이다. 마작용구(패와 상)가 갖춰져 있지 않은 곳에서 놀고 싶을 때 부득이하게 훙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처가 식구들 노는 품을 보면 근년 마작이 힘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중국 경제가 빈약하던 10년 전에는 괜찮은 마작패 한 벌 갖추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웬만한 꾼이 아니면 집에 마작상(床)까지 갖춰놓지 않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대개 동네 노년활동실에서 놀거나 집에서 밥상 위에 담요를 깔고 놀았다. 그렇게 놀아서는 오래 놀기 힘들다. (중국의 노년활동실은 한국의 경로당보다 훨씬 잘 활용되는 공간이다. 누구 사회학자가 그 차이를 한 번 살펴주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은 웬만한 집에 자동화된 마작상까지 갖춰져 있다. 이 상에는 마작패 두 벌이 들어 있어서 한 판 논 뒤에 스위치를 누르면 가운데 구멍이 열려 논 패를 쓸어넣을 수 있고, 다시 스위치를 누르면 준비되어 있던 패가 상 위로 올라온다. 그리 비싸지도 않은 모양이다. 우리 동네 노년활동실까지 자동 마작상을 갖추고 있다.

 

큰언니(예봉 어머니) 집에는 자동 마작상이 있고,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 집에는 일반 마작상이 있다. 모처럼 4자매가 어울려 놀 수 있는 요즘, 집합만 하면 제일 열심히 하는 것이 마작이다. 우리집에 한 번 모였을 때는 식탁을 거실 가운데 꺼내 놓고 놀았다.

 

전에 연변 있을 때 훙스는 배웠지만 마작은 배우지 않았다. 훙스야 소시쩍부터 즐겨 온 카드놀이와 수준이 비슷한 거니까 사교활동을 위해 배우는 데 별 부담감이 없었다. 하지만 마작은 워낙 그 중독성이 악명높은 놀이인 데다, 거창한 기구까지 사용한다는 점에서 거부감이 들었다. 연변을 떠나 한국에서 7년 지내는 동안, 연변 그립다는 소리를 훙스 놀고 싶다는 말로 표현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연변 와도 훙스 놀아주는 사람이 없다. 처가 식구들과 어울리려면 마작을 배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여기 건너온 이래 대략 하루 건너 실습을 하고 있다. 서너 차례 노니까 조교의 도움 없이 혼자 놀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받은 패에 따라 나름대로 작전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10년 전처럼 마작 배우기를 꺼리지 않게 된 것은 중독성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연속적 움직임이 필요한 놀이를 잘 못하는 만큼 차례에 따라 노는 보드게임(장기와 바둑, 화투로 시작)에 쉽게 빠지는 성향이 있었다. 지나친 중독 성향을 스스로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 몇 해 동안 바둑에 손이 가지 않게 되면서 그 걱정이 없어졌다. 평생 가장 강한 중독 대상이 바둑이었는데, 거기에 묶이지 않는다면 묶일 데가 어디 있겠나?

 

바둑도 더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이것이 바로 중독현상의 원흉!) 어느 단계에서 가라앉았다. 고수들 바둑을 재미있게 관전할 만한 안목, 그리고 편안한 친구와 대국을 더러 즐길 만한 기량에 만족하게 되었다. 그러니 인터넷에서 모르는 사람들과는 대국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마작도 그럴 것 같다. 작전 선택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바둑으로 치면 5급 정도라 할까? 조금 더 익히면 가족들에게 환영받는 선수가 될 것이고(지금은 입문시키느라고 억지로 붙여준다.), 거기서 조금 더 익히면 보드게임에 강한 적성을 활용해서 가족들 사이에서는 꽤 강한 선수로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까지다. 가족들이 무서워할 선수가 될 일은 결코 없다.

 

한 차례 모여 몇 시간 놀면 따고 잃는 것이 30원 안쪽이다. 50원 넘게 잃거나 따는 일이 어쩌다 있으면 온 동네 소문날 정도다. 지금까지 수업료 바친 게 100여원 되는데, 이제 수업료가 크게 더 들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재밌는 놀이를 전엔 왜 그렇게 무서워했지?

 

'사는 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삼 장수  (2) 2014.01.30
고마워요, 창비!  (5) 2014.01.18
경박호(鏡泊湖) 유람기  (2) 2013.09.21
게으름  (13) 2013.09.18
연변 - 집과 이웃  (3) 2013.09.10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