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 선생님,

 

지난 글을 각별하게 느끼셨다니 감사한 마음이 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당연하다 여겨지기도 하네요.

한 여름에 '제국의 정치철학'이라는 제목을 뽑아두고,

석 달을 묵히고 삭힌 연유가 선생님과의 교신이 준 자극에 있었으니까요.

선생님과 대화한 내용을 제 식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레시안에 오르기 전에, 먼저 원고를 드려볼까도 했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문득, 보시는 것이 더 재미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곧장 편지를 주신 걸 보면, 제 짐작이 통했다 싶네요. ^^

 

헌데 저는 좀 심적 부담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그간 저와 친분이 있고 면식이 있는 분들은 제법 당혹스럽지 않았을까 짐작이 됩니다.

마침 같은 날 프레시안에 박명림 교수 인터뷰가 실렸더군요.

제가 무척 따랐던 분입니다.

거의 매학기 그 분이 하시는 지역학과 수업을 들었던 것 같아요.

동아시아 지역주의, 동아시아 통합론, 동아시아와 미국 등등.

따라가기 어려운 동양 고대사, 중세사 수업은 슬슬 피해 다니면서,

네가 편한 정치학 수업이나 듣냐며, 백영서 선생이 종종 퉁, 을 놓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처와 깊어진 인연에도, 그 분이 진행하던 세미나에 함께 참여했던 것도 있고요.

본인이 주례를 서야 되는 것 아니냐며, 김칫국도 드셨더랬죠.

 

그 박명림 선생을 비롯하여, 이번 글을 어떻게 받으들이셨을까, 슬쩍 걱정이 입니다.

미국 나가 있더니, 이 친구 아주 엉뚱해지고 있네, 하시지는 않을지.

대학 이래 함께 '신청년'을 자부했던 친구, 지인들도 유학, 운운에 뜨악해 하지는 않을지.

당장 제 옆에 있는 친구도 좀 의아해 하는 것 같아요.

진보를 자처하던 사람이, 때 아니게 유학 경전과 연구서를 잔뜩 빌려와 읽는 모습이 낯선가 봅니다.  

여하튼 저는 10여년 전 서에서 동으로의 회심 이후에,

또 한번 크게 생각이 바뀌고 있는 이행기를 지나고 있지 싶어요.

비유하자면 금에서 고, 로의 회심쯤 됩니다.

이 동서고금의 반전에 선생님과의 대화가 기름을 붓고 있는 격입니다. ^^

 

유학과 근대의 불화에서, 세계관의 차이도 차츰 더듬어 보고자 합니다.

헌데 프레시안 지면에서 너무 추상적인 얘기를 늘어놓는 건 힘들지 싶어요.

여느 매체와는 비교가 안될만큼 수준 높은 글이 실리는 곳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언론사이고 공론장이라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사에서 출발하되 역사를 짚고, 다시 시사로 돌아오자, 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시사와 역사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것이 저 나름의 목표인데,

요사이 대선 국면에서 문/안에 관하여 쓰신 평론들이 제가 지향하던 딱 그 지점에 서있는 듯 합니다.  

  

말씀하신 세계관의 차이를 제 식으로 풀면,

물리학적 세계관과 생물학적 세계관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좀 더 폼을 내서 표현하면, 수학과 시학의 차이가 아닐까.

플라톤은 '기하학을 모르는 자, 아카데미에 들지말라'고 했다죠.

반면 공자는 '시 삼백을 모르는 자, 벽을 대하는 것과 같구나'라고 합니다.

그 동서 문명의 뿌리가 노정한 차이가 갈수록 예사로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삼 학부 시절때 읽었던 서구 근대 정치사상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입니다.

이제는 좀 줏대를 가지고 읽을 수 있지 싶거든요.

그때는 겉멋에 취해 허겁지겁 '흉내내기'에 급급했습니다.

최근 유학 공부하다 짚이는 바가 있어,

에드먼드 버크의 <Reflection on revolution in France>을 조금 들추어 봤는데,

예전처럼 '보수주의 사상가'라고 딱지를 붙이고 말기에는 통찰력이 이만저만 아니더군요.

말씀하시는 '국가', '제도', '안정', '발전' 등을 궁리하는데 유용한 자극이 되어준다 여겨집니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라는 것도 뉴튼 물리학의 차용은 아니었을지,

사회계약론이 일종의 '사회공학'이라면, 유학은 '사회생물학'에 방불한게 아닌가.

요즘 물리학은 점점 생물학에 가까워 진다던데...

20세기 좌파들은 진화론을 비롯한, 자연과학 공부가 턱없이 부족했던게 아닐까 등등등

오고 가며 이런 궁리를 하다보면, 공부할 거리가 태산을 이룹니다.

지도교수는 꿈에도 나오셔서, 논문 완성을 채근하는데 말이죠...^^

 

그러나 다른 방면으로 저 스스로 지적 긴장을 잃지 말자 다짐하는 구석도 있습니다.

저는 작금 진행 중인 권력 이동이 패러다임 전환을 수반할 것이라는 예감은 크게 틀리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러면서도 유교 국가에 선뜻 손을 들어주기도 때이른 감이 듭니다.  

특히 193-40년대 일본 사상계의 동향을 반면교사로 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동아협동체, 동아신질서에서 대동아에 이르기까지,

근대를 초극하는 세계사의 철학 모색이 지금 제가 궁리하는 지점과 통하는 바 크지 싶습니다.

그네들도 영미가 주도하는 근대 질서를 타파하고자 하면 할수록, 중화질서에 근접해 갔던 것 같아요.

자본주의(미국)와 사회주의(소련)를 동시에 넘어서!, 라는 지향 속에서,  

아시아주의의 언어와 문법도 나날이 유학과 흡사해진 것도 같고요.

그래서 대동아공영권은 그 속 깊이 중화세계를 (왜곡된 형태로) 모방(하려고)했지 싶습니다.  

그런 곡절이 있었기에, 쉬이 동아시아, 유교 등등에 의탁하지 말자 다그치는 중입니다.

제가 점점 동방의 과거에 기울어지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역사가 끝내 뒤집히는 구나,

그 성급한 흥분이 혹 열등감의 지속을 반증하는 것일지 모르니까요.

 

저는 이 방면으로 초입자에 다름 아니니,

오래 고민을 익혀 두셨을 선생님이 더 말씀을 주시면 계속 생각을 일으켜 보겠습니다.

이런 편지를 주고 받았을 수 있음이, 2012년의 큰 수확이라 여겨집니다.

끝맺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신합니다.

 

-이병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