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빠릅니다.

그 사이에 훌쩍 열흘이 흘렀네요.

논문도, 연재도 진척이 안되어서 조바심이 나는 요즘입니다.

한중수교 20주년, 중일국교정상화 40주년, 동아시아 영토분쟁, 시진핑 시대 등,

좋은 소재거리를 다룰 적기를 자꾸 놓치는 듯 하여 아쉬움도 크고요.

글 쓰는 것도 습관이고 관성인지라,

다시 마음 다잡고 책상에 앉아도, 커서만 껌뻑, 껌뻑 합니다.

샛길로 너무 오래 빠져 있었나 싶기도 하고요.

꼬박 꼬박 올라오는 <해방일기> 보노라면, 부러움이 입니다.

어서 감을 좀 찾았으면 좋겠는데요...

 

박영재 선생님과는 묘한 인연이 있습니다.

직접 뵌 적은 없어요.

그 분이 신촌에 계실 때는 전 사회(과)학에 푹 빠져 있어서,

동양사 쪽은 전혀 건너다 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제 일본사 선생님이 된 임성모 선생 통해 귀동냥한 정도지요.

 

헌데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친구가 박영재 선생님을 잘 압니다.

UCLA에서 북한사를 공부하고,

주로 월북한 지식인들의 북한에서의 활동을 훑고 있습니다.  

한국에 필드웍으로 나와 있는 동안 저를 만났고,

그러다 지금은 제가 이곳에 와 있게 되었네요.

그 친구가 자료를 구하러 두 차례 연변대학에 갔습니다.

그때마다 박영재 선생님이 도서관 이용하는데 도움을 주셨다고 해요. 

애주가이신지라, 술을 안하는 이 친구는 고생도 좀 한 모양이고요.

연변에서 많은 말씀을 들어서, 전주에 자리잡게 된 사정도 짐작이 된다 하는군요.

 

두 번째 연변길은 저도 데이트를 겸하여 따라 갔는데, 마침 계시지 않았어요.

2주 정도 낮에는 도서관, 밤에는 연변 구경 하며 지내다 왔습니다.

2010년 여름이었지 싶습니다.

연변의 '한국화'가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처를 처음 만나게 된 계기도,

"조선족의 귀환: 환류하는 한인 네트워크"라는 잡문을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발표자였고, 그 친구가 토론자였지요.

새삼, 인연이 묘합니다.

 

논문 심사는...

저도 석사 때 괴로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글쓰기가 통 즐겁지가 않았거든요.

형식에 맞추다 보니, 어거지로 쓴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요.

주제가 반둥회의(를 둘러싼 이런저런 사정들) 였습니다.

1955년 4월 말에 열렸었지요.

저는 실감을 얻는답시고, 직접 짬을 내 반둥까지 갔어요.

반둥회의가 열렸던 장소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당시 참여했던 네루와 주은래, 수카르노 등 주요 인물들의 마네킹도 만들어 두었고요.

그곳에 앉아서 중국어, 영어, 일본어로 발간된 회의록을 읽어나갔지요.

생생했습니다.

자카르타 가는 비행기에서, 반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또 그 회의장에서 여러 생각들과 감회들이 일었고,

그걸 잘 녹여내는게 제 논문의 핵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시 반둥으로 향했던 신생국가 지도자들과,

그들의 회합을 복기하고자 하는 2008년의 저를 포개보고 싶었습니다.

일종의 여행기 형식으로 쓰고 싶었던 것이지요.

물론 불발되었지요.

지극히 평범하고 밋밋한 석사 논문을 제출했습니다.

 

학위 논문을 '독창적'으로 쓸 욕심은 일찌감치 접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자격증' 취득 정도로만 여기고 있어요.

논문보다는 산문, 혹은 잡문이 제 본령이다 싶고요.

학위 논문에 담을 내용을 풀어서 산문/잡문으로 옮기려고 합니다.

프레시안 연재가 저로서는 실험장인 셈이죠.

좀 더 내쳐 말하면,

산문과 잡문의 현대적 부활이 "동(아시아)학"의 형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짐작도 해봅니다.

논문 중심주의의 병폐가 이쪽보다, 한국이 더하다 싶습니다.

 

 

산타 모니카에 있는 퍼블릭 라이브러리에서 인사드렸습니다.

해변에 자전거 타러 나왔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들어왔는데, 몹시 좋네요.

Library Journal에서 뽑은 별 다섯개 짜리 공공 도서관이라고 합니다.

마을도서관과 학생식당을 그 나라의 복지수준을 가늠해 보는 나름의 잣대로 삼았는데,

자금껏 가본 공공 도서관 가운데 최고이지 싶습니다. 

탁자는 넓고, 천장은 높고, 창문은 큼직합니다.

야자수와 태평양과 푸른 하늘이 내다 보이고요.

저는 꽉 막힌 곳보다 뻥 뚫린 장소를 좋아해서 카페를 주유하고는 하는데,

왠지 이곳과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은 예감입니다.

그래서 저부터 연재를 순조롭게 진행해야,

모처럼 주어진 선생님과의 대화도 생산적으로 이루어질 듯 하고요.

 

다음에는 요사이 품고 있던 질문 보따리 몇을 풀어볼까 합니다.

건강, 건필하시길 바라며.

 

-이병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