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7. 16:02
 


11시 안돼 이천에 도착했지만 은행을 찾아 큰형이 환전하는 데 30분 너머 걸리고 보니 점심시간이 임박했다. 둘이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12시 반에 요양원에 도착했다.

식사가 막 끝나고 아직 식사하던 자리에 앉아들 계실 때였다. 우리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간병인이 휠체어를 밀고 나오니 어머니는 왜 나만 먼저 내보내나,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가 "누가 오셨나 보세요." 소리에 눈을 들어 큰형이 보이자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신다. "너 기봉이 아니냐?" 웃음이 얼굴을 채우고 한 순간 뒤 말씀을 이으신다. "너 먼 데 있지 않았냐?"

잠깐 동안의 일이지만, 어머니 건강상태를 형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형이 와서 이틀 묵을 예정을 직원들이 모두 알고 있었고 어머니께도 틈틈이 말씀 드렸을 텐데, 그런 기억은 이 순간에 없으셨다. 그저 큰아들 얼굴을 바로 알아보셨고, 이 아들이 쉽게 찾아올 형편이 못 된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계신 것이다.

형이 "네, 어머니. 어머니 뵈러 미국에서 왔어요." 하면서 내미는 손을 우선 잡으셨다가 얼른 손을 뻗쳐 얼굴도 한참 만져 보신다. 그러다 흥분이 가라앉으셨는지 형의 손을 쥔 채 노래가락 화법으로 돌아가신다. "우리 아들이~ 날 보러 왔어요~ 착한 아들이~ 날 보러 왔어요~"

둘러선 여러 사람을 둘러보며 아들 타령을 한 동안 하신다. "이 녀석이~ 내 큰아들이요~ 큰아들은~ 착한 아들이요~ 저 녀석은~ 내 셋째아들이요~ 셋째아들도~ 착한 아들이요~" 이런 잘난 체를 둘러선 분들이 다들 곱게 봐주시는 기색인 것을 보면 어머니의 인기가 나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들 타령이 한참 나가다가 아들이 셋도 되고 넷도 된다. 큰형이 보고드릴 틈을 찾았다. "아들이 넷이면 영아까지 아들인가요? 어제 오랫만에 영아 보니까 잘 지내데요." 영아 얘기가 나오니까 주춤, 보통 말투로 물으신다. "그래? 영아를 봤어? 밥은 잘 먹든?" "네, 밥도 잘 먹고, 잘 지내는 것 같데요." 대답을 듣고는 도로 노래가락이다. "그러면 됐어~ 밥 잘 먹으면 됐지~ 그러면 됐지~ 뭘 더 바라겠니~" 잊지는 않으셔도 걱정 또한 않으시는 것을 보며 형이 정말 마음이 놓이는 기색이다.

아들 타령올 오래 끌다 보니 망발에 가까이 가셨다. "우리 큰아들~ 참 잘난 놈이요~ 다른 놈들은~ 아무것도 아니지~" 둘러섰던 분들이 아니, 셋째 아드님도 얼마나 잘하시는데요, 항의들 하시는데, 내가 짐짓 삐진 시늉으로 일어설 듯하며 "어머니, 잘난 큰아들이랑 잘 노세요. 아무것 아닌 소자는 물러가옵니다." 했더니 끄떡도 않으시며 노래가락을 이으신다. "갈 테면 가라, 이놈아~ 이놈은 아무것도 아니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지요~ 아무것 아닌 게 나는 좋아요~" 모두들 손뼉을 치며 웃는다.

정말 대단하시다. 노래가락에 이렇게 중층적인 정감을 담아 풀어내시다니. 옛날 음유시인이나 고급 광대가 쓰던 표현기법이 이런 것이었을까? 노래가락으로 이야기하시는 까닭이 뭐냐고 나중에 형이 여쭐 때는 웃음을 잠깐 거두고 보통 화법으로 대답하셨다. "말하면서 산다는 게 너무 힘들어. 그 동안 너무 힘들었어. 이젠 노래나 부르고 살겠어."

한 시간 가까이 앉아 있다 보니 혹시 힘드시지 않을까 싶어 내가 여쭸다. "어머니, 똥구멍 아프지 않으세요?" 전에 보면 휠체어에 앉은 지 네 시간 정도 될 때 "야, 똥구멍이 아프다. 나 좀 눕혀다고." 하셨었다. 그런데 이번엔 눈을 크게 뜨고 되물으신다. "뭐? 뭐가 아프냐고?" 귀에 가까이 입을 대고 다시 말씀드렸다. "똥구멍 아프지 않으시냐고요. 눕지 않으시겠어요?" 이제 얼굴까지 찌푸리고 소리를 높이신다. "안 들려! 어디가 아프냐고?" 텔레비 보던 분들이 고개를 돌려 쳐다들 보는데 알아들으시도록 외칠 엄두가 안 나 쩔쩔 매는데, 형에게 고개를 돌리며 흉보는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저 놈 우물쭈물하는 거 보니까 뭐 나쁜 소리 했나보지?" 아무래도 일부러 골탕먹이신 것 같다.

욕도 한 차례 얻어먹었다. 나이 얘기가 나와 "내 나이가 얼마냐?" 묻다가 주변에서 아흔 소리가 나오는 걸 듣고 "내가 아흔이냐?" 나를 향해 물으신다. 장난기가 동해서 "아흔씩이나 되셨겠어요? 마흔이겠죠." 잠깐 어리둥절해서 "마흔?"하다가 장난을 알아채신 듯 인상을 한 차례 북~ 긁고 "예잇! 이 쌍놈!" 한 방 지르시고는 바로 웃음으로 돌아가신다.

이사장님이 올라와 어머니를 모시고 4층의 형이 묵을 방을 보고 나서 그 옆의 아늑한 거실에 넷이 한참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사장님과 큰형이 주로 얘기를 주고받는데, 어머니가 이따금씩 끼어드는 화법이 여간 절묘하지 않으시다. 말씀을 혼자 많이 하실 때보다 그 묘한 점이 더 뚜렷이 보인다. 다른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흥을 돋워주시는 것이다. 어리숙한 체하는 화법을 원래도 많이 쓰셨지만,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도착한 지 두 시간이 되어 가는데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셔서 바람 쏘이러 2층 테라스로 모시고 나갔다. 꽃을 보고 좋아하신다. 그늘에 앉으시겠는가, 볕에 앉으시겠는가 여쭈니 싱긋 웃으며 볕 쪽으로 고개를 돌리신다. 아무래도 볕을 쪼이시는 시간이 넉넉지 못한 모양이다. 형이 있는 동안 간병인들을 재주껏 구워삶아 놓겠지. 날씨가 괜찮은 동안 바깥바람을 최대한 쏘여드릴 수 있도록.

기억력 테스트를 하나 시도했다. "어머니, 며칠 후에 대덕화 보살님이 어머니 뵈러 온대요." "대덕화? 그게 누구냐?" "어머니 쓰러지셨을 때 병원에 모셔다 드린 임 교수요. 그 분 오면 어머니가 좋아하시잖아요?" "그래? 그런 분이 있었던가?" "그분 오면 대덕화 보살님 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하세요. 모르는 체하면 서운해 하잖아요?" "알았다,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짖궂은 웃음을 띠우신다. 이름으로는 전혀 기억이 되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지금보다 기력이 약하실 때도 나타나면 바로 알아보시던 얼굴인데.

아들들이 모시고 앉은 동안 노래가락 화법을 많이 안 쓰시는 걸 보면 접대용 화법인 모양이다. 가끔 아들들에게도 접대할 마음이 드실 때는 수시로 쓰신다. 형이 "어머니, 작년 뵐 때보다 더 예뻐지셨어요." 하니까 같잖다는 듯이 하! 헛웃음 뒤에 "우리 아들이~ 날 보고 예쁘대요~ 칭찬을 들으니까~ 기분이 좋아요~" 노래가 나오시고 내가 "어머니, 지금 들으신 건 칭찬이 아니고 아첨이었어요." 하니까 곧바로 "칭찬도 좋고요~ 아첨도 좋아요~ 좋은 말 들으니까~ 기분이 좋아요~" 이어지신다. 이런 끼가 있으셨던가, 감탄스럽다.

세 시 가까이 되어 눕고 싶으시다기에 방에 모셨다. 금강경을 읽어드릴까 여쭈니 즉각 "그래, 읽어다고." 하신다. 경문을 꺼내면서 "먼저 반야심경부터 한 번 외우시죠. 마하반야바라밀다..." 하니까 바로 따라 외우시는 데 거침이 하나도 없으시다. 금강경을 읽어드리니 또 내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눈길을 떼시기는커녕 깜박이지도 않으신다. 뭔가 실수가 나올까봐 감시하시는 건지, 소리가 나오는 발원지를 바라보면 더 잘 들릴 것 같아서 그러시는지. 한 꼭지 읽고 나서 "잘 읽었죠?" 하니까 심각하던 표정에 웃음을 떠올리면서 "그래, 잘 읽었다." 다음 꼭지를 읽기 시작하니까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자주 뵙지 못하니 이런 것은 아쉽다. 금강경 듣기 좋아하는 걸 형이 봤으니 혼자 모시고 있을 때 읽어드리려고 애를 쓰겠지. 예수쟁이가 익숙하지도 못한 경문 읽느라 버벅거릴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온다.

제일 긴 꼭지, 제13분까지 읽은 뒤에 "어머니, 저는 가볼께요. 큰형이랑 잘 노세요." 하니까 순간적으로 서운한 표정을 떠올리며 "어디 가려고?" 하셨지만 "집에 가서 일 좀 하려고요." 대답하는 동안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가 "그래, 잘 가거라." 하신다. "뽀뽀를 뺨에 해드릴까요, 이마에 해드릴까요?" 하니까 조금 멋적은 표정으로 "아무 데나 하렴." 하신다. 뽀뽀는 원래 큰형 전매특헌데, 그 동안 내게 허용하신 데 죄책감을 느끼시는 걸까? "괜찮으시면 앙쪽에 다 할께요." 하고 입술을 댈 때는 또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가 계시다.

배웅하러 나온 형과 정원에 앉아서 잠깐 얘기를 나눴다. 어머니 상태가 기쁘다는 얘기, 시설이 상상 못한 정도로 좋다는 얘기에 이어 형이 한 가지를 묻는다. 이사장님 아까 말씀 중 다른 요양원에서 3, 40만원까지 깎아내리는 바람에 운영이 힘들다는 애기가 무슨 뜻이냐고. 내가 이해하는 대로 설명을 해줬다. 장기요양보험이 1인당 120만원씩 나오니까, 수익성 위주로 경영하는 업자들이 원가를 줄여서 달려든다고. 1인당 비용을 20만원 줄이면 요양원 수입을 10% 줄이면서 본인 부담을 40% 줄여줄 수 있으니까 보험 적용을 위한 최소조건에만 맞추려 하고, 여기처럼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려 애쓰는 요양원이 불리한 입장이 된다고. 시혜적 복지에는 일반적으로 따르는 문제라고 바로 알아듣는다.

작은형이 6시에 강의 끝난 뒤 온다고 했으니 7시까지 기다리면 3형제가 모처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앉을 수도 있고, 여기 적을 내용도 늘어나겠지만, 작은형이 약속 지킬 것을 믿고 투자하기에는 네 시간이 너무 아깝다. 65세에 요양원 임시 입원한 큰형을 뒤로 하고 집을 향했다. (작은형은 아까 점심때 내게 전화해서 요양원 가는 길과 전화번호를 묻기에 친절히 대답해 줬다. 석 달 전에 가르쳐준 것은 벌써 소용이 없고, 어제 가겠다던 사람이 이제야 길을 묻다니, 정말 신선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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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27. 15:54

지난 월요일에 가 뵈려다가 그 날 마침 차 선생님이 찾아가신다기에 늦췄다가 어제(17일) 부산에서 올라오는 길에 뵈었다. 자주 가 뵙지도 못하는데, 방문자가 같은 날 겹치면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같은 노력을 쏟고도 효용이 줄어들 테니까.

그래서 전번 방문 후의 간격이 좀 길었는데, 그 사이에 전번과 노시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제일 드러나는 현상은 무슨 말씀을 하시든 노래가락에 실어서 흥얼거리시는 것이다. 글자 수가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그걸 맞추기 위해 변조를 더하는 방식도 아주 익숙하신 게, 하루이틀 닦은 솜씨가 아니시다. 하실 말씀 빠트리지도 않고 다 챙기시는 것 같다.

인사 드리고 자리 잡아 앉자 마자 원장님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나와 보여주신다. 어머니 팬을 자처하는 버지니아의 에스터 엄마가 보내준 것이 바로 전날 도착했다고. 다른 것보다 캐시미어 목도리, 정말 좋은 걸 보내주셨다. 과자도 아주 맛있게 드신다. "어머니, 맛있어요?" 여쭈니까, "맛은 무우슨~ 맛이 있겠어요~ 맛이 없어도~ 잘 먹어야죠~" 능청스런 가락을 뽑으시며 잘도 드신다. 양초 세 개도 향이 좋은데, 그것은 원장님께 떠넘겼다. 적당한 행사에 쓰시라고. 한참 사양하시다가 생일파티에 쓰면 좋겠다고 간수해 두신다. 물건 하나라도 어머니가 공동체에 기여할 기회를 가지시는 것이 좋은 일이다.

조금 후에 엉뚱한 가락이 불쑥 튀어나오신다. "똥구멍이 아파요~ 똥구멍이 아파~ 드러눕고 싶어요~" 눕혀드리러 방에 들어가는데, 간병인 6~7명이 다 몰려들어간다. 나중에 내가 어머니 모시고 앉아있는 동안 아내가 여사님들에게 들은 얘기로 여사님들 사이에 어머니 인기가 짱이란다. 기력이 떨어진 노인분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활기 있고 재미 있는 태도를 보이시니까 틈만 나면 어머니 곁에 몰려들게 된다고. 그런 인기가 또 어머니 딴따라 기질을 북돋워 드려서 독특한 화법까지 개발하시게 된 게 아닌지.

눕혀드린 뒤 한참 지나 여사님들이 대부분 물러간 뒤(그때까지도 두 분이 어머니 '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방에 남아있었다.) "어머니, 금강경 읽어드릴까요?" 했더니, "좋아요~ 금강경~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그래서 금강경 경문을 어머니 흥얼거리시는 가락에 맞춰서 읽어드리니까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걸고 내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신다. 그런데 적혀 있는 경문을 읽으면서도 가락에 딱딱 맞추기가 힘들어 자꾸 버벅거리게 된다.(내 '쇼'는 재미없으니까 여사님들도 다 나갔다.) 하고 싶은 말씀을 그렇게 가락에 얹으시는 게 보통 재주가 아니시다.

몇 꼭지를 흥얼거리는 식으로 읽은 뒤에 원래 읽던 식으로 바꿨다. 그러니까 경문에 더 집중을 하시고 이제 질문까지 하신다. 그런 질문 받는 데는 나도 숙달이 되어 있다. "어머니, 쉬운 데는 놔두고 왜 제일 어려운 데만 물어보세요? 여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수보리야' 하고 이런 말씀이 나온 뒤에 이 얘기가 있는 걸 보면..." 식으로 대답해 드리면 흐뭇한 미소가 더욱 짙어지신다. 강독 시간 중에는 노랫가락이 아닌 평상 화법을 쓰신다. 옆자리의 할머니도 열심히 들으신다. 처음에 방해가 될까봐 목소리를 한껏 낮췄더니 뒤에서 내 등을 툭 치고는 "나도 듣게 목소리 좀 높여줘요." 하셨다.

창문 닫은 방에 30분쯤 앉아 있다 보니 노인들께는 쾌적한 듯한데, 나는 좀 덥다. 아내가 들어오기에 교대하고 마당에 나가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왔다. 오늘은 이사장님이 안 계신 모양이다.

네 시 15분쯤 된 것을 보고 식사 전에 바깥바람 좀 쐬어드릴 것을 원장님께 허락받고 테라스로 모시고 나갔다. 다른 사람 없는 테라스에서 모처럼 노래를 마음껏 불러보시게 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부터 집중적으로 부르던 몇 곡 중에서 <푸른 하늘 은하수>는 더욱 발전하셨는데, <아리랑>도 좀 낯설어지신 것 같고, <섬아기>와 <꿈길>은 기억이 흐려지신 것 같다. 동요가 더 좋으신 것 같다. <찌르릉>은 전보다 흥이 더 나시는 것 같고, <송아지>는 언제나처럼 좋아하신다. "얼룩송아지 / 엄마소" 버전의 뒤를 이어 "신통강아지 / 엄마개", "예쁜병아리 / 엄마닭", "얼룩망아지 / 엄마말"을 행진시키면 하나 나올 때마다 이번엔 뭐가 나오나 하는 기색으로 눈이 초롱초롱하시다.

노래 밑천도 다할 때쯤 되니 마침 원장님이 나와서 지내시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해주신다. 어머니 입에서 쌍욕을 들은 지가 오래됐다는 얘기부터. 이곳 환경에 잘 적응하시는 것이 자기부터 놀랄 만큼 순조로우시다고. 그 동안 복숭아 몇 상자 들여보낸 공도 있고, 또 어머니 경력을 존중하는 면도 있겠지만, 어머니는 지금의 모습, 바로 그것을 가지고 함께 지내는 분들, 일하시는 분들의 사랑을 모으고 계신 것이다. 그야말로 어머니의 황금시대다.

식탁에 앉혀드리니 "너희도 먹어라." 하신다. "집에 가서 먹겠어요.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하니까 선선히 "그래 잘 가거라." 하신다. 우리가 나타나면 기쁘고 즐거우시지만, 없어진다고 하늘이 두 쪽 나는 게 아니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노래가락으로만 입을 떼시는 마음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계단 어귀까지 배웅해 준 원장님께 "여기 모시고는 돌아설 때 발길이 가볍습니다."하고 치사를 드리니까 "이이고~ 저희가 고맙지요~" 하고 기뻐하신다.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병원에 계시는 2년 동안은 어머니 의식 내용을 거의 빠짐없이 우리가 파악하고 있으면서 필요한 조건을 마련해 드렸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가 필요한 생활조건을 스스로 빚어나가기 시작했고, 무엇을 어떻게 누리고 지내실 수 있을지, 우리가 이해하는 범위를 넘어서셨다. 건강상태도 너무나 좋아 보이신다. 이제 지난 2년간보다는 거리를 두고 어머니를 바라보는 위치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이가 커서 학교 다니며 자기 식으로 친구 사귀고 놀이를 찾아내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버이의 마음이 이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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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27. 15:48

목요일(27), 이천에 12시 도착, 둘이 점심부터 먹고 요양원으로 향했다. 11시나 11시반쯤 도착해서 요양원으로 바로 가면 점심을 먹지 못해 오후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2시 45분 요양원에 도착해 현관에서 벨을 누르고 올라가니 원장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2층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얼굴이 보이자마자 곁에서 묻기도 전에 "아~ 내가 아는 사람들이구먼!" 하시고, 복도 가의 탁자에 앉은 뒤 옆에 앉은 며느리 손을 쥐신다. 곁에서 "이 분 누구신데요?" 하니까, 서슴없이 "내 며느리예요." 이렇게 거침없이 며느리 알아 보시는 건 우리 결혼 후 처음이다.

자나깨나 최대 관심사는 먹는 것인 듯, 다른 얘기 별로 나오기도 전에 "나는 아까 뭘 먹은 거 같은데, 너희는 뭐 먹었냐?" 병원 계실 때 금강경 읽어드리다가 식사가 나오면 "어머니, 금강경도 식후경이죠." 하던 생각이 나서 "네 어머니, 저희 밥 먹고 왔어요. 어머님도 식후경이란 옛말이 있잖아요?" 하니까 "뭣도 식후경? 그게 무슨 뜻이냐?" "어머님도 식후경이요. 아무리 어머님 뵙고 싶어도 식사는 먼저 해야 한단 뜻이죠." 했더니 "예끼, 그런 말이 어딨어?" 하시고는 한 숨 쉬고 표정을 가다듬은 뒤 "이 썅놈아!" 통렬하게 한 마디 내뱉으신다.

지난 주 뵐 때도 이제 쌍욕 안 하기로 약속하셨다고 김 여사가 자랑한 일이 있고, 며칠 전 원장님도 통화하는 길에 어머니 입에서 "썅년" 소리가 거의 없어졌다고 좋아하며 얘기한 일도 있다. 그렇지만 욕을 잊어버리신 게 아니란 사실을 확인하니 더더욱 안심이 된다. 욕을 먹을 만한 놈에게 정확하게 쓰시는 걸 보면 요즘 욕을 안 하시는 게 건전한 판단력에 입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욕을 벌으셨네, 벌으셨어!" "할머니, 그런 덴 욕을 하셔야 해요!" 옆에서 웃고 좋아하며 한 마디씩들 하신다.

영천에서 부친 복숭아가 어제 도착해서 한 차례 돌렸다고 한다. 우리도 먹으라고 한 접시 내 오면서 어머니 앞에도 얇게 썬 것을 작은 접시로 놓아드렸다. 이빨 없이도 우물우물 잘 잡수신다. 이 정도면 틀니 없어도 식생활 즐기실 수 있는 폭이 충분하겠다.

식사시간 직후라서 우리만 먹을것 놓고 있는 것이 그리 민망스럽지는 않은데, 영감님 한 분, 온화한 인상에 풍채도 좋으신 분이 서슴없이 다가와 내 옆에 앉더니 복숭아를 집어 드신다. 잠시 후 원장님이 지나치다가 보고 잠깐 멈칫, 망설이다가 우리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 싱긋 웃고 지나갔다. 나중에 이사장님 얘기를 들으니 교장으로 계시다가 퇴직한 후 풍을 맞고 판단력을 잃으신 분이라고. 그분 보살피는 데 제일 어려운 문제가 남존여비 관념이라고 한다. 여성 간병인이나 간호사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아 한 분 있는 남성 간병인이 없을 때는 이사장님이나 원장님의 권위라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까지도 팽배해 있는 남성 권위주의가 보이지 않는 중에도 사회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사장님과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남 같지 않아 그런지, 운영의 어려운 문제들까지 기탄없이 털어놓고 말씀하신다. 역시 사람 쓰는 일이 이런 벽지에선 문제다. 사람이 한 번만 바뀌어도 공백이 크게 될 위험이 있으니까. 그래서 간병인 인력은 가급적 여유있게 늘 확보해 놓는 방침이라 한다. 부인과 원장님 외에 그래도 나이 있는(그리고 정신 멀쩡한) 사람과 얘기 나누는 게 좋으신 모양이다. 아내가 어머니 살펴드리는 동안 이사장님 말씀 많이 들어 드리는 것도 어머니 위해드리는 일로 여기고 열심히 듣는다.

네 시경이 되어 요양원을 떠났다. 지난 주에 비해 우리가 응대해 드리는 걸 요긴해 하시는 눈치다. 금강경 읽어드려도 졸지도 않으시고, 노래도 싫증을 안 내신다. 그런데 이제 떠나야겠다 싶어 "저희 그만 가겠습니다." 했더니 "그래? 그럼 내일 또 올래?" 하시는데 "내일은 못 오고요, 머지 않아 또 올께요." 하니까 "그래, 잘들 가거라. 또 오렴." 선선하시다.

지난 주 뵐 때 황홀한 행복에 빠져 계신 것처럼까지 보이시던 데 비해서는 현실의 양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 달 후 큰형이 찾아뵐 때 기쁨을 느끼실 발판은 이쪽이 더 탄탄할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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