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2. 21:06

어제 대덕화 보살님과 그 올케인 성진행 보살님이 다녀갔다. 어머니께서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하신다. "졸업생들이구먼." 하신다. 그러나 어렴풋이 기억이 깔려 있으신 듯, 몇 마디 주고받으면서 도반을 상대하는 어투가 되신다. 사고력이 명민하신 데 비해 기억력에 결함이 있으신 것인데, 생각하면 그걸 꼭 '결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기억력이 완벽한 사람은 보르헤스 작품에나 나온다. 찾아오는 이들을 그 정도 응대해서 당신 마음을 보여주실 수 있다면 나름대로 정상적인 삶이라 할 것이다. 요양원에 옮기시면 생활을 충분히 즐기며 지내실 것이 기대된다.

두 분 보살님이 재작년 초여름 어머니 쓰러지실 때 모시고 있던 분들이다. 병원에 여러 번 찾아준 것이 어머니를 불제자로서 존경하기 때문이라 하지만, 아마 그 인연도 많이 생각될 것 같다. 대덕화 님에 비해 성진행 님이 자주 못 왔는데, 알고 보니 전주에 사신다 한다. 그렇게 먼 데서 서울 오는 길에 이렇게 시간 내 찾아와 주시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나무 관세음보살...

대덕화 님은 산뜻한 용모처럼 성품도 명민한 분인데 성진행 님은 차분한 눈길에서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분이다. 두 분 다 어머니의 씩씩하면서도 부드러운 모습에 무척 기뻐했지만, 더 오랫만에 온 성진행 님의 소감이 더 큰 것 같았다. 그런 모습으로 회복되시도록 보살펴드린 공로를 치하받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이 되어 가고 있는데, 성진행 님의 치하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어머니만이 아니라 내 모습도 좋아졌다고, 큰 수행을 닦은 스님 같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씀 들으며 참 눈밝은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맞다. 지난 2년간의 내 생활에는 수행의 의미가 있었다. 엄격한 절제를 통한 수행은 아니었지만, 일과 생활이 의미가 큰 화두들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축이 어머니 모시는 일이었다. 2년간 어머니께 제일 많은 자극을 드린 것이 나였는데, 내 마음에 그만큼의 안정감이 있었던 것이 어머니의 회복 방향에 작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두 분을 보낸 뒤 작은형과 통화가 되었다. 일요일날 오후에 다녀간 얘기를 여사님들에게 듣고 여러 번 시도한 끝에 드디어 받았다. 실망감을 어쩔 수 없다. 파라밀과 용인백암을 들러 보라고 당부한 지 보름이 넘었는데 아직 못 가봤다는 것이다. 일요일 올라오는 길에 들러보려 했는데 못 찾았다고 한다. 동네 이름과 시설 이름만 외워 가지고 전화번호도 없이 나섰던 모양이다.

왜 그럴까? 3월 초 이래 매주 어머니 뵈러 오는 것을 보며 생활감각이 좀 안정됐는가 했는데... 남쪽으로 모시면 형이 더 쉽게 자주 찾아뵙는 것이 어머니께도 기쁨이 되고 우리 내외도 책임을 더는 길이 되지 않을까, 형제간에 당번 교대하는 것도 모양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형 성격에 맞지 않는 역할을 내가 꿈꾸었던가보다. 딴 세상 사는 신선인 줄 뻔히 알면서도. 역시 요양원도 우리 내외가 결정해야겠다. 요즘 어머니가 사람들 응대하시는 가닥을 보면 한편으로 요양원에 가서 생활 내용이 풍부해지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빠지고, 또 한편으로는 답답한 병원 생활에 언제 짜증을 일으키기 시작하실지 조마조마하다.

진인선원과 용인백암 사이의 선택이다. 진인선원이 오래된 곳이라 운영에도 안정감이 느껴지고 시설, 환경에서도 약간 우월하다. 위치에서만 용인백암이 우월하다. 그런데 내 마음에는 불교계 시설을 꺼리는 구석이 있었다. 이번 회복되시면서 여러 가지 집착을 벗어나신 느낌을 받는데, 불교에 대한 집착도 그중의 하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여생을 지내시는데, 불제자라는 이름표도 떼어버리시고 가급적 보통 할머니로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불교계 시설을 꼭 피할 것은 아니라도, 더 못하지 않은 곳을 찾을 수 있으면 하는 생각으로 용인백암을 살펴 왔다.

그런데 어제 두 분 보살님이 찾아왔을 때 어머니가 보이신 불제자 모습에서 느껴진 것이 있었던지, 불교계 시설을 회피하는 마음이 약해졌고, 또 형에게 책임을 떠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해서 진인선원에 무게를 두게 된다. 요양원이 안정된 곳이면 가족에게 살펴볼 부담이 적고, 또 진인선원 같으면 우리가 다니기 쉬운 곳이다. 형이 다니기엔 좀 힘들지만, 덜 힘들다 해서 책임감을 더 느낄 사람도 아니니 앞세워 고려할 조건이 아니다. 다음 주 중에 진인선원에 모실 준비를 하고, 형이 이번 주 중에 의견을 내면 받아들일 여지를 두기로 한다.

막상 진인선원으로 마음을 돌리고 보니, 불제자 이름표 붙이고 지내시는 것이 어머니께 크게 불편한 일 없으실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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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