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2. 21:10

오늘 아침부터 진지를 제대로 드시기 시작했다. 점심 때 식사를 모시니 지난 주까지처럼 적극적으로 빨리 드시지는 않지만 죽 한 그릇 가뿐히 비우신다. 절반쯤 드셨을 때 잔 새우 볶아둔 것을 섞어 드리느라고 사이가 좀 떴지만 재촉하는 기색이 없으시다.

어제 식사를 영 못하시는 것을 보고는 튜브 피딩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닥터 한이 얘기했었다. 그저께부터 링거를 꼽아놓았지만 속도를 높이지 못하기 때문에 영양 공급이 충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 연말까지 반 년 너머 튜브 피딩을 하며 맥없이 누워계시던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부쩍 걱정이 되었었기 때문에 안정된 모습을 되찾으신 것이 무척 반가웠다. 지난 월요일부터 시작된 한 차례 고생이 이제 마무리되시는 것 같다.

닥터 한은 가벼운 감기일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만일을 생각해서 혈액검사를 맡겨놓았다고 했다. 노쇠하신 몸이라서 가벼운 문제에도 반응이 크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 년 전 회복을 시작하신 뒤로 이 정도 문제가 처음이라는 것이 아마 운이 좋으신 편일 것이다.

어제까지 힘들어 하시는 것을 보면서는 요양원으로 옮겨 모시는 것이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고비를 넘겨 기력을 되찾으신다 해도 병원 아닌 곳에서 이런 문제를 겪으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볼 일 보기 전과 본 후의 생각이 다르다더니, 용태가 안정되신 것을 보니 역시 옮기시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도로 고개를 든다. 아무래도 병원에 계시면 뭐든 감염 위험이 더 클 것이고, 생활을 즐겁고 편안하게 해드리는 일이 위험 조금 줄이는 것보다는 중요할 것 같다. 다만 응급 태세는 더 비중을 두어 생각할 일이니 규모가 작은 시설에 모시지는 말아야겠다.

혹시 비슷한 문제를 겪으실 경우를 대비해 며칠 동안의 용태 변화를 적어둔다.

월요일(4): 화요일 오전에 들은 바로, 저녁 후에 기침을 좀 힘들게 하시다가 음식을 조금 토하신 뒤 기력 없이 쉬셨다고 한다. 월요일 점심때 모셨던 아내가 이 말을 듣고는 평소보다 더 많이, 좀 과하시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간식을 드셨다고, 체하신 게 아닌가 싶다고 얘기했다.

화요일(5): 점심 전에 가 보니 기운 없는 모습이었고, 점심식사는 절반 안 되게 하셨다. 의식은 분명하셨고, 천천히 잡수시다가 어느 시점에서 그만 드시겠다는 말씀도 분명히 하셨다. 저녁 후에 가 보니 점심때와 별 차이 없는 모습이셨고, 저녁식사는 반 그릇 하셨다는 애기를 들었다.

수요일(6): 9시에 들르니 닥터 한이 방 앞에 있어서 가벼운 감기로 생각된다는, 별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들었다.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6시경 들르니 37.3도 가량의 미열이 있고 조금 멍하신 상태였으나 점심, 저녁 식사를 모두 괜찮게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목요일(7): 점심때 가니 체온은 정상이시라 하는데 의식이 조금 흐리신 것 같았다. 식사를 떠 드리는데 입에 무신 채 잊어버리시는 것 같을 때도 있고 삼키기 힘들어 하시는 것 같을 때도 있었다. 3분의 1 가량 떠 드린 뒤 포기했는데, 잠시 후 오한이 드는 것처럼 괴로워하셨다. 닥터 한이 와 보고 아직 체온이 정상이라도 열이 오르기 시작할 것 같다고, 링거를 꼽도록 했다. 저녁 후에 가 보니 머리에 찬 물수건을 얹어놓아 드렸는데, 얼굴의 홍조로 보아 열이 꽤 있으신 것 같고 의식이 잘 잡히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금요일(8): 점심 전에 가니 열은 내리신 듯 홍조가 가셨고 괴로움이 없어 보였다. 내가 온 것을 보고 빙긋이 웃음을 띠시니까 곁에 있던 여사님들이 반가워하는 것이, 그 동안 그만한 표정도 없이 지내셨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말씀이 없으시니까 저희가 너무 재미없었어요.” 하고 농담도 건넨다. 그러나 의식이 오래 집중되지 못하시는 것 같았고, 식사가 나와 권해 드리려니 눈은 뜨신 채로 반응을 못하신다. 닥터 한이 와 보고는 저녁까지 식사를 못하실 경우 튜브 피딩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오늘(9): 기운이 떨어지셨을 뿐,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신다. “어머니, 노래 부를까요?” 해도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이었는데, <푸른 하늘 은하수> 가사를 보여드리며 부르니 즉각 따라 읊으신다. 그러면서 정신이 바짝 드시는 듯 눈에 장난기가 초롱초롱 떠오르고 농담도 시도하신다. 수필집에서 한 꼭지 읽어드리니 그만큼은 집중이 계속되지 못하시는 것 같다. 식사는 천천히라도 힘들지 않게 하시고 딸기와 과자도 좀 드셨다.

기운을 되찾으실 동안 두 차례씩 계속 가 뵈어야겠다. 의식이 다시 활발해지시는 과정에서는 내가 드릴 수 있는 종류의 자극이 요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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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