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의무’교육이 ‘권리’교육 쪽으로 성격을 바꿔가고 있다. 중등과정까지의 학교교육이 국민의 의무가 아니라 권리로 인식돼 가는 것이다.


학부모의 선택에 따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자기들 식으로 교육시키는 것을 허용하는 주(州)가 늘어가고 있다. 이렇게 독학한 학생들이 명문대학에 진학해 뛰어난 수학능력을 보이는 예가 많아서 학교교육의 제도적 결함을 살피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수학능력을 효과적으로 키워주는 외에도 환경친화적 생활방법을 익혀준다던가, 특별한 기능에 전념하게 한다던가, 다양한 가치관에 맞는 교육방향의 성공사례가 많이 전해진다.


의무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국가와 주가 교육비를 제공해 주지만 이것을 마다하고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실정이라면, 교육비의 부담이 거의 전적으로 학부모에게 있어도 선택할 대안이 따로 없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적령기 학동의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률이 90%가 넘는다면 이것은 실질적으로 의무교육이다. 국가의 부담이 없는 의무교육일 뿐이다.


다양성의 보장은 우리 교육에 절실한 문제다. 획일적 이념주입이 교육의 1차 목표였던 군국주의 시대가 아니라면 복잡한 사회에서의 다양한 역할을 준비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방법과 환경을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중등교육의 평준화에는 여러 면의 득실이 엇갈리지만, 다양성의 축소라는 측면은 가장 뚜렷한 평준화의 약점이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수목적고는 중등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러나 외국어고의 교육자와 피교육자들 가운데 그 교육의 전문성을 대학진학에 유리한 조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비교내신제의 존폐를 놓고 예민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붙이고 치우기에는 그 뒤에 깔려 있는 제도적 결함이 너무 심각하다.


예술고의 경우는 전문성이 뚜렷한 편이지만 과학고나 외국어고의 경우는 경쟁이 인위적으로 봉쇄된 조건 속에서 예외적으로 경쟁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 학생을 끌어들이는 가장 큰 매력이다. ‘대입명문고’라는 양적 특성이 ‘특수목적’이라는 질적 특성을 압도하는 것이다. 일반고와 특수목적고 학부모들 사이의 시비곡직보다 중등교육의 다양성 문제를 깊이 살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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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