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뜻이다. ‘글[文, 書]’이라 하지 않고 ‘소리[音]’라 한 데서 당시 훈민정음의 위상이 오늘날의 한글과는 비할 수 없이 소박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문명의 핵심인 문자(文字)가 아니라 민간의 말소리를 담는 하나의 그릇일 뿐이었던 것이다.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은 그 2년 뒤 간행된 동국정운(東國正韻)과 함께 세종조 어문정책의 양대축을 이뤘다. 동국정운은 한자 발음을 표준화하여 한자문명의 유통과 발전을 원활하게 하려는 것이었고, 훈민정음은 고유언어의 표기법을 만들어 기층문화를 안정시키려는 것이었다.


두 책이 제시한 표기법은 종래 쓰이던 반절(反切)과 이두(吏讀)를 대치하는 것이었다. 반절과 이두는 모두 한자로 발음을 표시하는 관습적 표기법이었다. 세종은 이것을 모두 우리 음운체계에 맞는 합리적 표기법으로 바꿈으로써 내외의 문화가 활기차게 융화되는 고유한 문자문명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훈민정음으로 한자의 표준발음을 고정시키려는 동국정운의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당시의 훈민정음은 오늘날의 한글을 키워낸 씨앗과 같은 것이었으니, 갓 뿌린 씨앗으로는 당시 들여오기만도 벅차던 한자문명을 감당할 수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언문(諺文)’이니 ‘암클’이니 하는 멸시가 오히려 이 씨앗에 거름이 되었을까. 수백 년간의 질곡을 지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민족 최고의 보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


한글을 오늘의 보물로 만든 것은 세종 한 분의 공이 아니다. 씨앗을 뿌린 그분의 공도 크지만, 수백 년간 그 쓰임새를 지키고 키워온 조선의 서민들, 그리고 주시경(周時經) 이래 한글의 새로운 위상을 세워 온 선현(先賢)들의 공로가 모두 어우러진 것이다. 한글을 아끼는 지금 사람들의 마음도 한글의 가치를 계속 키워주고 있다.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한글의 위상은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외래어의 범람은 지난 날 한자어의 위력을 능가할 지경에다가 영어교육의 열풍은 전통시대 한문의 위세를 무색하게 한다. 지금 한글의 주인은 세종대왕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다. 앞으로 더 넓은 문명현상의 주인공으로 한글을 키우느냐 여부가 곧 21세기에 있어서 한국인의 자리매김이 될 것이다. 국경일 아닌 한글날을 지낸 감회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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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