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큰 정당이 있다. 리쿠드당과 노동당이다.

 

몇 해 전 라빈의 노동당 정권은 “땅을 주고 평화를 얻는(Land for Peace)” 평화정책의 길을 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최초의 대 아랍 유화정책으로, 중동평화를 바라는 세계인의 마음에 희망을 심어주었으나 이스라엘 내에서는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라빈의 암살과 작년 총선의 노동당 패배로 이어졌다.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리쿠드당의 네타냐후 정권은 노골적으로 노동당의 평화공존정책을 뒤집어놓고 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영토로 예정되어 있는 서안지구에 ‘정착촌’이라는 이름의 식민활동을 강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아랍인구역에 이스라엘인 아파트단지를 짓는 등 도발적인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두 정당의 대 아랍 정책 차이는 뿌리깊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건국 준비과정에서 지도자들은 유태인의 민족성을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반호”의 아이작,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처럼 나약하고 음흉한 전통적 유태인상을 깨뜨리려는 노력에 두 정당의 연원이 있다.

 

하나의 방향은 유태인이 훌륭한 ‘근로자’가 되는 것이었다. 유럽 유태인사회는 뛰어난 예술가, 학자, 법조인, 사업가를 배출했다. 그러나 유태인이 훌륭한 농부와 직공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땀의 소중함을 새로운 세대에 일깨워주는 근로시오니즘 운동에서 출발한 노동당은 같은 근로자인 아랍인에 대한 도발을 최소화하려는 전통을 가져 왔다.

 

한편 리쿠드당은 또 하나의 방향, ‘전사(戰士)’의 모습을 추구하는 노력에서 유래한다. 영화 “엑소더스”에도 소개된 테러조직 하가나와 이르군이 리쿠드당의 선구다. 투쟁시오니즘 운동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건국이 유태인이 유럽인으로서 아랍인을 정복하러 가는 길이며, 거기에는 도덕성보다 힘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1910년대 이래 시오니즘의 양대 줄기가 된 두 노선 가운데 처음에는 진보적 유태인들의 지지를 받은 근로노선이 우세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나치 박해를 피해 난민들이 밀려들면서 차츰 투쟁노선이 득세했다.

 

이스라엘인은 근로자로서도, 전사로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오니즘의 두 계열이 모두 결실을 맺은 셈이다. 그러나 아랍인과의 관계에서 두 계열은 아직도 치열한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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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