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computer)란 원래 ‘계산하는 기계’란 뜻이다. 컴퓨터의 출발점은 역시 계산기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 뜻은 출발점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전자공학의 탄생이 컴퓨터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948년 완성된 최초의 전자계산기 에니악(ENIAC)은 전자공학으로 기계공학을 대신하였을 뿐, 기본개념은 전통적 계산기 그대로였다.


그러나 수학자 폰 노이먼이 에니악을 참관한 후 설계한 에드박(EDVAC)이 컴퓨터의 개념을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갔다. 1952년 완성된 에드박은 연산명령을 연산수치와 같이 수학적 요소로 처리했다. 이로써 프로그램의 개념이 세워지고 컴퓨터가 연산의 주체로서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에니악에 이르기까지 계산기의 발달은 ‘자동화’라는 목표를 향해 필요한 기술을 수집, 개발하는 직선적인 것이었다. 근대과학의 전형적 발전패턴이다.


그런데 에드박 이후로 사정이 달라졌다. 컴퓨터의 기능이 계산의 영역을 넘어 걷잡을 수 없이 발전해 나가는 통에 ‘계산기’라는 뜻이 무색하게 됐다. 몇년 후 컴퓨터의 발전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지 전문가들도 단정하기 어렵게 됐다. 컴퓨터의 발전 자체가 ‘자동화’된 셈이다.


컴퓨터의 이름을 ‘시뮬레이터(simulator)’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 중심기능이 계산에서 모의(模擬)로 옮겨졌다는 말이다. 인간이 입력하는 데이타를 연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범위를 넘어서는 데이타를 가지고 가상현실(假想現實)을 빚어내는 데로 컴퓨터의 역할이 옮겨진 오늘날 상황에서 적절한 제안이라 하겠다.


이 기능변화는 컴퓨터 원래의 출생배경인 근대과학의 연구방법을 떠나가는 경향을 가져오기도 한다. 방대한 데이타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을 단순화하는 연역법, 귀납법 등 전통적 추론방법을 쓸 필요 없이 현실을 그대로 모의해 보는 탐구방법이 등장한 때문이다. 카오스 연구가 그 단적인 예다.


근년 컴퓨터통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컴퓨터의 존재가 갈수록 많은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키워가고 있다. 컴퓨터가 모의해 주는 무한한 가상현실에서 실제현실 못지 않은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이다.


“내가 꿈속의 나비인가, 꿈속의 나비가 나인가?” 통신의 접속을 해제할 때마다 네티즌들이 일상적으로 흘리는 탄식이 되고 있다.


'미국인의 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로자와 戰士 (97. 4. 4)  (1) 2011.11.24
진정한 고수(高手)  (0) 2011.11.23
황제의 꿈 - 人治와 法治 (97. 3. 23)  (0) 2011.11.23
진보의 액셀러레이터 (97. 3. 16)  (0) 2011.11.23
臺灣의 과거청산 (97. 3. 9)  (0) 2011.11.23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