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8. 13:43

'20세기 중국사' 또는 동아시아 20세기사'는 '20세기 세계사'의 핵심부로 서술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20세기사는 19세기와 21세기를 이어주는 시기로서 1차적인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가 제국주의 침략의 가장 큰 무대가 되어 있던 19세기 후반과 그 동아시아가 세계 질서의 중심부로 떠오르고 있는 21세기 전반 사이에 어떤 변화가 이 세계에 일어났던 것인지, 가장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동아시아다.

19세기 후반,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보면 동아시아 지역 전체가 같은 운명 속에 놓여 있었지만, 한-중-일 3국의 대응 자세는 판이하게 보였다. 21세기 전반에도 동아시아 지역 전체가 같은 운명을 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많은데, 과연 각국의 대응 자세에도 150년 전과 같은 큰 편차를 보이게 될까?

이번 서술에서는 아마 '침략자'로서 일본의 위상을 많이 희석시키게 될 것 같다. 미시적-국지적으로 볼 때 침략자의 역할이 두드러지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20세기 전반 침략전쟁을 일으킬 때도, 20세기 후반 경제대국으로 일어설 때도, 일본의 역할은 능동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서양에서(전반부에는 유럽에서, 후반부에는 미국에서) 도입된 관념에 지배된 것으로 볼 측면이 크다. 요컨대 침략자로서 일본을 분노나 증오의 대상 아닌 연민 내지 경멸의 대상으로 부각시키고 싶은 것이다.

한편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동아시아에서 제시하는 관념에 따라 세계가 움직여지는 폭이 클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는 서양 근대사상의 완전 '막장' 버전인데, 그것을 견제할 만한 노선이 2008년 위기를 겪고도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인류 문명이 한계점에 온 것은 아닐 텐데, 서양 근대문명의 지도력이 한계에 온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자원과 환경의 명백한 위기 앞에서 '인권'의 개념, 즉 '인간'의 개념도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다. (반비에서 곧 펴낼 <회색쇼크> 같은 책에서도 그 필요를 떠올리게 된다.) 인권과 인간의 개념이 바뀌면 정치-사회-경제-문화의 모든 제도 또한 변화를 겪게 된다. 근대체제가 정리되고 막연히 떠올리고 있던 '탈근대'가 현실로 닥쳐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어느 정도라도 질서 있게 이끌어줄 담론체계를 바랄 수 있는 곳이 동아시아다. 근대체제에 대한 중독이 덜하면서 거대문명 조직의 내공이 확인된 곳이며, 담론을 실천할 실력도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가 끌고 나올 21세기 주류 담론이 어느 방향일까? 이 작업을 끝낼 때까지 그 윤곽을 얼마만큼 밝혀낼 수 있게 될지 모르지만, 실마리는 이미 나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도 떠올라 있는 담론의 방향이 있고, 인류의 장래를 걱정하는 수많은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나름대로 떠올리고 있을 것이며, 앞으로 몇 년 동안에는 그 생각들이 모여 하나의 뚜렷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내 작업도 그 흐름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기 바란다.

자원과 환경의 위기를 극명하고 처절하게 겪고 있는 일본에서 새 담론의 형성과 확장을 위한 노력이 집중적으로 나올 것을 기대한다. 현실 속에서 큰 권리와 책임을 가질 중국에서도 역시 많은 노력이 나올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만한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양쪽에서 나오는 큰 흐름들을 조율할 촉매나 양념 노릇이라도 하려는 노력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역할이 되는 작업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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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