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밖에서 본 한국사>를 내고는 중국사 작업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뉴라이트 비판>으로 시작해 <망국의 역사>를 거쳐 <해방일기>까지 오며 한국근현대사 속에 파묻혀 있다. 중국사를 <밖에서 본 한국사>처럼 한 권의 에세이집으로 내고, 그 뒤에 세계사를 대상으로 한 에세이집도 시도해 보려던 원래의 뜻은 5년 이상 접혀져 있게 되었다.

<해방일기> 집필이 어느 정도 안정된 궤도에 오른 몇 달 전부터 중국사 생각이 꼬물꼬물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대사에 3년여 동안 이렇게 몰두했다가 전통시대 역사를 다시 훑어보는 데 감각의 문제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다가 "에라~ 기왕 버린 몸! 아예 현대사한테 바쳐버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20세기>를 떠올린 것이다. 20세기 중국사라면 <망국의 역사>와 <해방일기>에서 얻은 지식과 감각을 알뜰하게 써먹을 수 있는 분야다. 그리고 20세기 중국사를 내가 쓴다면 다른 현대사 연구자들에 비해 전통의 작용을 중시하는 쪽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시대 역사의 내 공부도 써먹을 만큼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접어놓았던 꿈이 다시 펼쳐지기 시작한다. 중국인 독자들을 상대로 하는 책! 통사에 가까운 에세이집이라면 꽤 경쟁력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 1만 부 팔아먹을 수준의 책이라면 30배 인구의 그 쪽 시장에선 적어도 10만 부는 팔아먹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밖에서 본 한국사>에는 솔직히 말해서 그 꿈을 위한 '연습용'의 의미가 있었다.

중국사로 돌아갈 생각을 하며 그 꿈을 다시 살펴본다. 3년 전에 비해 전망이 더 좋아 보인다. 지금 <해방일기> 작업을 통해 역사의 세밀한 굴곡을 더듬으며 이성적인 이해를 넘어 감성적인 질감과 촉감까지 얻고 있다. 독자에게 내놓는 데는 일반 연구자들이 갖추기 어려운 강점이다.

오늘 아침 돌베개 조성웅 선생을 만나 구상을 설명하고 의견을 청했다. 중국 전문 출판기획자답게 좋은 의견을 여러 모로 내주었는데, 그중에 기획의 범위와 구조를 바꾸는 것까지 있었다. <중국의 20세기>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20세기>를 겨냥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다.

그렇다! 19세기까지도 동아시아 3국의 역사는 서로 얽혀 있었지만, 20세기 역사 속에서는 그와 다른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얽혀 있었다. 20세기 전반부는 현장에서 완전히 뒤얽혀 지냈고, 후반부 냉전기에는 직접 접촉과 충돌은 줄어들었어도 긴밀한 상호관계가 은연중에 서로간의 역사 전개에 기본조건으로 작용해 왔다. 20세기 역사에서는 동아시아 역사를 함께 묶어서 볼 의미가 엄청나게 컸던 것이다.

2013년 들어서며 <해방일기>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때 이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리라고 보면 1년반 남았다. 하나의 작업을 놓고 그렇게 긴 동안 구상에 매달려 본다는 것은 처음 하는 일일 뿐 아니라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한번 해봐야겠다. 이제부터 카테고리 하나 열어놓고 떠오르는 생각을 적으며 관심 가진 분들의 훈수도 바라며 지내겠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7월 1일. 작년에 <해방일기> 구상을 떠올렸던 날이다. 앞으로 7월 1일을 '기획절'로 기념하며 지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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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