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6. 08:39

그저께는 점심시간에 조금 늦게 도착해서, 들어서며 보니 장 여사가 떠먹여 드리고 있다. 얼른 손을 씻고 숟갈을 넘겨받았는데, 좀 웃기신다는 생각이 든다. 장 여사가 떠 드릴 때는 한 입 무실 때마다 흥에 겨워 고개도 흔들고, 눈길도 움직이시던 분이, 내가 앞에 앉으니 근엄한 표정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입만 벌려 죽을 받아 잡수신다. 뭔가 시치미를 떼고 계신 것 같아, 저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 사래라도 들리지 않으실까 걱정될 정도다.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나도 근엄한 표정과 자세로 작업에 열중했다.

다 잡수시고 물까지 드신 다음 무심한 척 앞만 바라보고 계신 어머니 얼굴을 약간 치뜬 진지한 눈길로 20초 가량 쳐다보고 있으니 내게 눈길을 돌리신다. 이럴 때 눈에 힘을 줘 크게 부릅뜨고 나를 마주 보시다가 내가 "픽!" 웃음을 터뜨리면 따라서 "픽!" 웃으시며 긴장을 풀 때가 많다. 그런데 그저께 반응은 "뭘 노려봐, 이놈아!" 하는 호통이셨다. 나는 움찔! 하는 기색을 과장되게 보여드리고는 진지한 표정을 그대로 지키며 "노려본 게 아니고, 어머니 모습이 고와서 쳐다봤습니다, 어머니." 능청을 떠니까 퉁명스럽게 "곱거나 말거나!" 하고 눈길을 도로 돌리신다.

침대 머릿가 서랍장 위에 놓아두었던 간 과일 병으로 손을 뻗치니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곁눈질로 힐끗 보시고는 "그건 뭐냐?" 물으신다. "소화제예요, 어머님." "소화제? 무슨 소화제?" "며느리가 만들어드린 맛있는 소화제 모르세요?" "모르겠는데? 아무튼 먹는 거라면 먹어보자." 이제 시치미는 안녕이다. 향기롭고 달콤한 과일즙의 매혹 속에 못생긴 아들까지도 예뻐 보이시는 모양이다. 드실 만큼 드신 뒤에 내가 또 한 숟갈을 푸자 말씀하신다. "너도 한 입 먹으렴."

과일즙의 매혹에서 헤어나오시자 다시 호통 모드. 그런데 역정이 깔려 있지 않은, 순전히 재미로 치시는 호통인데, 어찌 그리 시치미를 잘 떼시는지. 이건 그 다음날(어제) 아내랑 함께 갔을 때 여사님들이 해준 말인데, 왜 그 착한 아드님을 자꾸 야단치시냐고 했더니 흐뭇한 웃음을 띠고 "그놈이 내 앞에선 벌벌 떨지." 하시더라고. 살아오시는 동안 호통 모드는 대인 자세의 기본 패턴 중 하나인데, 그것을 써먹어 보실 상대역으로 내가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사님들이 일 없을 때 잠깐씩 앉아 쉬는 간이침대가 어머니 발치 건너편에 있다. 마침 두 분이 쉬고 있기에 내가 물어보았다. "오늘은 그렇게 많이 드시려고 하지 않네요. 이제 드시는 분량이 자리 잡힌 걸까요?" 그러자 두 분이 마주 보며 한 차례 웃고 한 분이 대답해 준다. "오늘 워낙 많이 드셨어요. 바나나도 반 개 잡수시고, 과자도 하나 드셨어요." 틀니를 안 하시고도 잡수실 만한 것은 이제 다 잡수실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 단계 식생활 대책의 필요가 분명해졌다. 병원 식사가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은 공급해 주지만, 웬만한 음식 드실 수 있는 것은 권해드려도 좋다는 닥터 한의 얘기는 들어 두었으니까.

세 가지 종류의 요구르트와 웨하스(이제 영어 이름을 일본식으로 쓰는 건 이걸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는 물건)를 갖춰 저녁때 다시 갔다. 정말 시간 감각은 확실히 되찾으셨다. 전 같으면 왔으면 왔나보다 하실 뿐 얼마 만에 다시 온 것인지 감을 잡지 못하셨는데, 내 얼굴을 보자 "어? 너 또 왔니?" 하신다. 식사 마치고 30분쯤 되셨을 것 같은데, 여사님께 간식 드려도 괜찮겠냐 물어보니 너무 많이 드리지는 않는 게 좋겠다고 한다.

요구르트 중 떠먹는 것 하나를 먼저 드렸더니 그 강한 향기에 충격을 느끼시는 것이 역력하다. "맛이 어때요, 어머니?" "와~ 너무 달다." "이건 그만 드릴까요?" "그래도 먹을 건 먹어야지." 결국 오만상을 찡그리신 채로 다 받아 드신다. 요건 당분간 다시 권해드리지 말아야겠다. 웨하스를 한 입 크기로 쪼개 드리니 입안에서 녹이시면서 입맛을 짝짝 다시신다. 두 쪽을 드신 다음 입가심 하시라고 물을 드리니 빨대로 빨아 물이 조금 입에 들어가자마자 밀쳐내신다. 왜 그러시냐 했더니 "싱거워." 하신다. 웨하스의 뒷맛이 씻겨 사라질까봐 아까우신 것이다.

요즘 어머니 모시는 주요 메뉴의 하나로 긁어드리는 일이 떠오르고 있다. 머리가 가렵다고 긁어달라고 하시는데, 긁어드리면 눈을 지긋이 감고 완전 엑스터시에 빠지신다. 끝도 없다. 적당히 끝내려고 수작을 걸면 "잔소리 말고!" 하며 머리를 들이대신다. 어떤 때는 2,30분 하고 있으면 틈나는 여사님 한 분이 와서 교대해 주며 빨리 가시라고 한다. 며칠 전부터 내가 개발한 방법은 긁어 드릴 만큼 긁어 드린 뒤에 물티슈를 하나 꺼내 한 차례 두루 문질러 드려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원한 맛이 좋으신지 불평이 없으시다.

사흘 전(1일)인가? 진짜 기막힌 경지를 보여주신 일이 있다. 건너다 보이는 저쪽의 할머니 한 분에게 그 아드님이 와서 팔다리를 주물러드리고 있었다. 그걸 가리키며 "저거 봐라." 하시기에 "뭐를요, 어머니?" 했더니 "저 착한 아들이 어머니 팔을 주물러드리는구나." 하고는 내게 눈길을 돌리시더니 "나도 뭐 좀 해받아야 되지 않겠니?" 하시는 거다. 그래서 "어디가 가려우세요, 어머니?" 했더니 "그래, 뒤통수가 좀." 하며 긁기 좋도록 머리를 한쪽으로 돌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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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