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린 세계관과 닫힌 세계관

 

최근 열린 세계관닫힌 세계관의 차이에 관한 생각을 적은 글을 먼저 보여드립니다.

 

앞서 열린 시스템닫힌 시스템에 관한 생각을 적으면서 칼 포퍼의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열린사회와 그 적들>(1945)이 생각났다. 40여 년 전에 읽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읽을까 생각하며 우선 <위키피디아>에 실린 요약을 읽어보니 읽을 생각이 없어진다. 요약의 일부를 옮겨놓는다.

당대의 주요 플라톤 연구자들과 달리 포퍼는 플라톤의 사상을 소크라테스로부터 떼어냈다. 후년의 플라톤은 스승의 인도주의적-민주주의적 성향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가 전체주의를 옹호한 것처럼 플라톤이 그렸다고 포퍼는 비판했다. 포퍼는 사회의 변화와 불만에 대한 플라톤의 분석을 격찬하면서 그를 위대한 사회학자로 추켜세우면서도 그가 제안한 해법을 배척했다. 포퍼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일으키고 있던 인도주의적 이념들을 그가 사랑하는 열린사회의 출산의 고통으로 보았다. 플라톤이 거짓말, 정치적 기적, 미신적 금기(禁忌), 진실의 억압, 그리고 야만적 폭력까지도 정당화한것은 그가 민주주의를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포퍼는 주장했다. 플라톤의 역사주의 경향은 자유민주주의가 가져올 변화를 두려워한 결과라고 포퍼는 느꼈다. 또한 귀족의 일원이며 한때 아테네의 참주였던 크리티아스의 친척으로서 플라톤은 당대의 권력자들에게 공감하면서 평민을 경멸했다고 포퍼는 보았다.”

이 책이 나온 것은 온 세계가 전체주의의 충격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30년 후 내가 이 책을 읽을 때도 자유민주주의의 열린사회가 한국사회의 열망이었다. 그러나 45년이 더 지난 지금 나는 포퍼보다 플라톤에게 배울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그 동안의 역사 공부 때문에 역사주의에 기울어진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열린사회의 한계와 문제점이 많이 드러난 결과일 수도 있다.

나 자신 닫힌 것보다 열린 것을 좋아하는 끌림이 있다. 어쩌면 이 끌림은 타고난 성정보다 내가 살아온 시대와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린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에 따라 닫힌 것을 좋아할 때도 있고 열린 것을 좋아할 때도 있는 것이 사람의 성정이다. 생태계 위기를 어떻게 의식하느냐에 따라 열린 시스템닫힌 시스템의 선택도 갈릴 것이다.

지난 회에 페어뱅크와 골드먼의 <China: A New History 신중국사>(1992)에서 시간이 지나면 명나라 시대의 중국이 폐쇄적 성장을 통해 얻은 어느 정도의 평화와 복지를 역사가들이 높이 평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대목을 인용했다. 명나라 때 고도로 발달했던 중국의 물질문명이 발전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유럽에 추월당한 사실을 하나의 실패로만 규정해온 것과 다른 관점이 나타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성장의 길에 개방적 성장만이 아니라 폐쇄적 성장(self-contained growth)”의 길도 인정하는 관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술과 경제의 성장은 자연(nature)과 인성(human nature)에 변화를 가져온다. 궁극적으로는 성장도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그에 따른 변화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완급을 조절해서 균형을 취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다. 조절의 필요를 부정하고 빠른 성장만을 바라보는 개방적 성장과 적극적 조절에 노력하는 폐쇄적 성장사이에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월간중앙> 2021. 11, “오랑캐의 역사”)

 

위 글을 보여드린 것은 열린것을 무조건 좋아하는 마음을 접어놓고 오늘 발표를 들어주시기 바라는 뜻입니다. 1945년에 비해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이 닫힌 세계관쪽으로 많이 돌아서고 있습니다. 캐나다 환경학자 바츨라프 스밀은 주간 <Noema> 인터뷰에서(2021. 2. 27, “Want not, Waste not")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아무리 열을 올려봤자 화성 식민지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 이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생태계이고 바로 지금 여기서 우리가 잘 관리해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의 생태계는 연약하면서도 다행히 저항력을 가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생태계에게 회복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회복 능력이 사라지는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파괴해도 생태계는 원래 모습을 되찾으려 들지만 무한정 계속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열린 세계관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 것은 근대 유럽에서였습니다. 당시의 유럽인은 착취할 자원이 외부에 얼마든지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음이 드러나면서 세계대전까지 겪었지만, 오랫동안 길들여진 외부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 바깥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이후 우주를 향한 길이 더 넓혀지지 않는 채로 반세기를 지나면서 지구는 하나!”라는 생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인류문명의 기본 속성은 닫힌 세계관 쪽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문명의 혜택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문명을 지키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문명세계를 닫힌 영역으로 생각했을 테니까요. 가장 넓은 지역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한자문명과 이슬람문명에서 천하움마를 세계관의 중심에 둔 것이 그 까닭입니다.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에 맞춰 보면 정상 상태에서는 닫힌 세계관이,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열린 세계관이 우세했을 것 같습니다.

 

 

2. 근대의 전국(戰國)’ 상황

 

문명 초기부터 온갖 형태의 사회 조직방법이 나타났고, 그중 어느 범주를 지금 사람들이 가리켜 국가라고 부릅니다. 그 범주를 판정하는 기준으로 국가론이 모색되어 왔지만 역사상 존재한 모든 사회조직을 국가와 비-국가로 엄밀히 구분할 길은 없을 것 같습니다.

국가로 대략 인정되는 범주의 조직에도 천차만별의 형태가 있습니다. 현대인은 오늘날 통용되는 국가의 개념을 이 범주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경향이 있고, 국가권력이 이 경향을 조장하는 일이 많습니다. 국가목적을 위한 국민의 동원에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전의 국가는 닫힌 세계관을 전제로 세워지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당시의 교통-통신 조건으로는 각각의 문명권이 그 구성원들에게 하나의 닫힌 세계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한자문명권과 이슬람문명권에서는 중화제국과 칼리프국이 천하와 움마를 총체적으로 책임지는 위치를 차지하고, 주변의 국가(라고 불릴 만한 조직)들은 그를 중심으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유기론적 원리를 추구했습니다.

유럽 기독교권도 베스트팔렌조약(1648) 이전에는 그런 틀 안에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는 교황이, 세속적으로는 황제가 전 기독교권의 종주권을 가진다는 관념이었지요. 그런데 베스트팔렌조약을 계기로 배타적 주권을 가진 국가들의 대등한 관계로 이뤄지는 근대적 국제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동이불화(同而不和)’의 원자론적 원리라 하겠습니다.

몇몇 유럽국이 베스트팔렌주권(Westphalian Sovereignty)’을 발판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그런 배타적 주권은 다른 문명권에도 존재한 일이 있습니다. 중국의 전국시대나 일본의 센고쿠시대가 가까운 예지요. 그러나 대개는 짧은 패러다임 전환기가 긴 정상 상태로 넘어가는 것처럼 일시적 난세에 그쳤습니다. 생산보다 파괴에 치중하는 상황이 오래 계속될 수 없다는, 전체 시스템의 비용 문제로 생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근대 유럽국들은 수백 년간 성장을 계속해서 자기네들 사이의 전국(戰國)’ 상황을 전 지구 표면으로 확장하기에 이릅니다. 그런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정복-착취의 대상으로 거대한 외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들이 근대세계의 열강(powers)’으로 근대국가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열강을 부러워해서 따라하려 애쓰기도 했고, 열강들이 지배력 확대를 위해 다른 지역에 이 모델을 강요하기도 한 결과입니다.

 

 

3. “상상의 공동체

 

유럽 열강들은 근대국가를 국민국가(national state)’의 형태로 이끌었습니다. 무한경쟁의 열린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국민국가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민족주의(nationalism: 맥락에 따라 국가주의국민주의가 더 적절할 때도 있음)를 통해 동원력과 통제력을 극대화한 것입니다.

열강의 팽창에 따라 정복과 착취의 대상으로서 외부가 줄어들면서 경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이에 따라 근대국가의 억압성이 안팎으로 강화되었습니다. 외부의 정복과 내부의 청소를 나란히 진행한 것은 나치 독일만이 아니었습니다. 2차 대전을 계기로 인권보호의 필요성이 부각될 때도 국가의 역할에 대한 반성은 거의 없었다고 M MamdaniNeither Settler Nor Native: The Making and Unmaking of Permanent Minotories(2020)에서 지적합니다.

2차 대전을 이은 냉전의 긴장 속에서 베스트팔렌주권에 대한 의문은 제기되지 못하고 있다가 1983년에 E HobsbawmThe Invention of Tradition(전통의 발명)B AndersonImagined Communities(상상의 공동체)가 근대 국가체제와 민족주의(국가주의)를 반성하는 담론으로 나왔습니다.

최근에 앤더슨의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물음표를 붙인 까닭은 꼭 새로 읽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처음 볼 때는 다른 동네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민족국가가 존재하지 않던 지역에 갑자기 만들어지면서 상상의 공동체성격을 띠게 된 것이 1천년 민족국가 역사를 가진 우리와는 무관한 이야기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읽으면서는 우리 이야기로도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과 1천 년간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민족국가의 모습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19-20세기에 유행한 상상의 공동체성격이 덧씌워진 데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가 베스트팔렌주권 개념의 적용 여부에 있고 그 차이는 이웃나라들과의 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 차이를 밝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역사의식을 키워내기 위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4. ‘원교근공책의 조건

 

이웃나라에게 유별나게 반감을 느끼는 것은 보편적 현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서로 이웃한 유럽국들 사이의 혐오감과 경멸감을 담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서점의 유머코너에 넘쳐납니다. 서로 다른 풍속을 재미있어하는 마음 편한 유머도 많지만, 수백 년 경쟁의 시대를 통해 날이 세워진 사실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가까운 이웃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라면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가 주도한 원교근공책이 떠오릅니다. 원교근공책이 하나의 정책노선이었다면 그와 대비되는 근교원공책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것은 따로 없었습니다. ‘근교원공은 춘추시대 이래 상식적 대외정책이었고, 이것을 뒤집는 놀라운 정책노선을 진나라가 채택한 것입니다.

전국시대에 원교근공책이 나타난 이유가 급격한 기술발전에 있었다고 통상 설명합니다. 생산력의 빠른 증가 덕분에 비용이 많이 드는 전면전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또한 기술발전이 농업문명권의 팽창을 가져온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국시대 국가들은 주변만이 아니라 내부의 비-농업 세력을 정복해 광대한 농경지대를 빚어냈습니다.

정복할 대상이 많은 상황에서는 열린 세계관이 통용됩니다. 그러나 어느 고비를 넘어 안정된 상태에 이르면 닫힌 세계관이 자리 잡습니다. 진 시황의 통일 이후 천하제국의 구조가 오랫동안 동아시아 지역에 자리 잡은 것은 지정학적 조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경 90도 언저리를 경계로 유라시아대륙을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북쪽으로부터) 동토지대, 초원, 사막, 고원, 아열대우림으로 이어지는 인구가 희박하고 교통이 어려운 이 경계선의 서쪽에는 농업문명의 발생과 발전에 적합한 지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데 반해 동쪽에는 황하-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모여 있습니다. 유라시아 동부 지역에서는 중원의 집중적 생산력 때문에 그를 중심으로 한 닫힌 세계관의 천하체제가 오래 지속된 것입니다.

이 경계선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13세기 몽골제국에서 있었지만 천하체제의 틀은 무너지지 않았고, 19세기에 증기선이 나타나면서 비로소 동-서 유라시아 간의 장벽이 소멸하고 동아시아가 유럽인의 정복 대상이 되었습니다. 16세기에 시작된 유럽인의 세계정복이 19세기 후반 동아시아 정복에 와서 그 큰 흐름이 막판에 이른 것을 20세기 전반 세계대전의 배경조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계기로 전 세계적 평화체제 구축의 염원이 크게 일어났지만 국제연맹과 유엔은 그 염원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A Getachew, Worldmaking after Empire: The Rise and Fall of Self-Determination(2019)민족자결의 원리를 중심으로 그 좌절의 원인을 규명한 책입니다. 경제적 자결이 정치적 자결을 따르지 못한 불구성에 문제가 있었고, 그 불구성은 근대적 대결체제를 지속시키려는 열강의 집착에 따른 것으로 설명됩니다.

세계대전도 크게 보면 자원의 한계에 기인한 것이었는데, 전후 처리과정에서 근본적 문제의 구조적 해결을 외면한 승전국의 태도는 전범재판의 성격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전쟁의 책임을 패전국 관계자들의 개인적 범죄로 규정하면서 승전국들도 공유하고 있던 구조적 문제들은 묵살하고 지나간 것입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부 세력의 일탈로 치부하고 접어두었던 자원의 한계 문제가 1970년대에 부각되기 시작한 후 50년간 인식이 심화-확대되어 왔습니다. 이 인식이 탈-근대의 과제를 압박하는 가운데 근대체제의 핵심제도인 국가의 성격에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5. 근대세계의 중력(重力) 변화

 

역사를 흔히 거울에 비유합니다. -근대 과제 앞에서 이 거울은 근대적 상황 속에서 빚어진 우리의 인식을 반성할 수 있는 배경으로 근대적이 아닌 상황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거울 표면 자체가 근대적 상황에 의해 흐려지거나 구부러진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합니다.

M-R Trouillot Silencing the Past: Power and the Production of History(1995)에서 아이티 역사의 서술을 되돌아보며 이 문제를 예리하게 부각했습니다. 한 조그만 나라의 짧은 시기 역사를 다룬 책인데도 널리 주목받고 역사학 입문서로 채택이 늘어나 온 것은 역사서술의 보편적 문제를 다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나온 P SatiaTime's Monster: How History Makes History(2020)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진보의 의미를 반성한 책입니다. 종래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철학적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 문제의식을 키워주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근대과제의 절실함을 보여주는 책들입니다.

역사를 통해 한국의 이웃은 중국과 일본이었습니다. 저는 중국사로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고 일본에 관해 아는 것이 적으므로 중국과의 관계에 관한 몇 가지 생각만 내놓겠습니다.

저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생각할 때 만유인력(중력)의 법칙을 먼저 떠올립니다.

 

F = G · m1·m2 / r²

 

F는 중력, G는 중력상수, m1m2는 두 물체의 질량, r은 거리입니다. 우리의 질량 m1은 우리에게 상수나 마찬가지이므로 결국 상대방의 질량 m2와 거리 r에 의해 중력의 크기가 결정되는 셈입니다. m2, r, 두 변수는 역사적 상황에 따라 값이 달라집니다.

특히 제곱반비례(inverse square)로 작용하는 r의 역할이 큰데, 19세기부터 그 값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가 좁아지면서 중국과의 가까움이 상대화되었을 뿐 아니라 서양과의 문화적 거리가 좁혀지면서 20세기 내내 한국과 중국은 과거에 비해 멀리 지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중국의 질량이라 할 국력도 그 기간에 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 사이의 인력이 매우 작아졌습니다.

21세기 들어 두 나라 사이의 인력이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국력이 커져 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적 자원 문제의 심화와 근대성의 한계 부각에 따라 상대적 거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이전처럼 밀착된 위치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20세기에 비하면 관계의 중요성이 크게 늘어날 것이고 그에 따라 상호 이해의 필요도 커질 것입니다. 앞으로 역사적 관계에 대한 이해의 틀이 19세기 이전과도 달라야 하고 20세기와도 달라야 하겠다고 생각됩니다.

20세기와 달라야 할 점은 무엇보다 베스트팔렌주권의 개념을 역사에 적용시키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반도국가는 7세기 신라통일을 계기로 중국 중심의 천하체제에 포섭되었고, 13세기 몽골 정복을 계기로 천하체제 속에서 확고한 자리를 갖게 되었다고 저는 봅니다. 천하체제 안에서 천자국과 조공국 사이에는 베스트팔렌주권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19세기 이전과 달라야 할 점은 중국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공국 시절에는 양자 관계를 통해서만 중국을 바라보았지만 현대세계에서는 중국의 내부구조와 대외관계를 망라하는 총체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특히 중국의 통일다민족국가체제의 이해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한민족의 일부이기도 한 조선족사회의 존재 때문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 이해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T Mullaney, Coming to Terms with the Nation: Ethnic Classification in Modern China(2011)J Scott, The Art of NOT Being Governed: An Anarchist History of Upland Southeast Asia(2009). 멀레이니의 책은 1950년대 초 중국의 소수민족 획정 기준이 스탈린의 민족정의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을 적극 수용한 사실을 밝혔고, 스코트의 책은 중국에서 민족 식별이 가장 까다로운 서남부의 상황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큰 참고가 됩니다. A Khalid, Central Asia: A New History from the Imperial Conquests to the Present(2021)는 가장 예민한 지역인 동투르키스탄 지역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6. ‘살아남은 자들의 연대

 

역사를 보는 눈도 닫힌 세계관쪽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은데, 아직 공부가 부족하군요. 지금의 세계가 매우 큰 획기를 앞에 두고 있다는 생각을 내놓는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먼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번역판(2016) 추천사 내용 일부를 보여드립니다.

 

당시의 사회과학이 헌팅턴의 전망을 뒷받침해 줄 수 없었던 큰 까닭 하나가 여기에 있다. 사회과학은 경제적 가치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경제외적 가치의 탐구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가 근년에야 비중을 키우기 시작했다. 1990년대 상황에서는 세계질서의 재편 전망 같은 포괄적 주제를 경제외적 가치에 입각해서 고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주장은 학술적 연구의 결과인 이론이 아니라 새로운 연구 영역의 개척을 제안하는 하나의 가설로 볼 것이다. 이 가설의 골자는 경제적 가치를 매체로 조직되어 온 기존의 세계질서와 달리 장래의 세계질서에는 경제외적 가치가 큰 몫을 맡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 제안의 바탕에는 지금까지의 세계질서가 경제적 가치에 매달려온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 인식은 지금까지의 사회과학이 경제적 가치만을 기준으로 삼아온 데 대한 반성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를 주로 다루는 경제학이 20세기 내내 사회과학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 인간의 동기를 이기심으로만 해석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 주장이 시대를 풍미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경제적 가치에 대한 집착을 공유했고, 그 사이의 대결 양상은 경제외적 가치에 대한 고려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양자 간의 대결이 세상을 뒤덮고 있던 냉전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경제외적 가치에 대한 학술계의 인식이 매우 빈약한 상태였다.

 

제국주의시대부터 냉전시대까지 국제관계의 중심축이던 경제적 이해관계가 상대화되면서 잠복해 있던 문화적 측면이 부각될 것을 헌팅턴은 내다본 것입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제적 이해관계의 큰 역할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데올로기로 고착되어 있던 종래의 상황과는 달라졌습니다. 그에 따라 중력의 법칙 중 거리(r)’를 측정하는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종래 무시되던 문화적 친연성이 다시 큰 몫을 맡게 된 것입니다. ‘거리의 기준에는 자원 문제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유지되던 에너지 저가(低價)체제가 1970년대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21세기 들어서는 에너지 가격 상승에 탄소배출권 문제가 겹치면서 19세기부터 세계를 좁게 만들어온 대량운송 기술의 위력이 비용 문제로 약화되고 있습니다.

인류사회의 변화는 헌팅턴이 설명하려 애쓴 범위를 크게 넘어섰습니다. U BeckThe Metamorphosis of the World(2016)에서 “metamorphosis(탈바꿈)”라는 말을 쓴 데서 설명의 어려움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책머리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다년간 사회학을 강의하면서 현대사회의 변화를 연구해 왔으면서도 간단하고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질문,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계적 사건들의 의미가 무엇인가하는 질문 앞에서 파산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 세상이 휩싸여 있는 이 소용돌이를 헤겔이 요구한 것처럼 관념적으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개념도 이론도 세울 수 없습니다.

이 소용돌이에는 사회과학에서 변화(change)’를 가리키는 'evolution', 'revolution', 'transformation' 같은 개념들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그냥 변화가 아니라 탈바꿈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뀌는 부분도 있고 바뀌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이 변화입니다. 자본주의가 변화한다고 할 때, 자본주의의 어떤 측면들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탈바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 나타나는 것들을 찾아내고, 옛것에서 무엇이 새로 나오는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지금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래의 구조와 규칙성을 파악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3)

 

베크 개인의 파산이라기보다 근대 사회과학의 파산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관찰 대상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도 변하고 관찰방법도 변하는 총체적 변화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문 자체의 탈바꿈이 필요하다는 것이 베크의 뜻일 것 같습니다.

지금의 혼란 속에서 미래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정밀성보다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하겠습니다. 맘다니가 -식민(decolonization)’ 과제를 놓고 생존자(survivor)’ 개념을 제시한 데서 그런 상상력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식민지배의 진정한 극복을 위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기보다 어둡고 괴로운 시대를 함께 겪은 생존자로서 유대감 위에서 새로운 시대를 함께 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지요. 전쟁 책임의 정치적 성격을 외면하고 범죄적 성격에만 국한시킴으로써 근본적 모순을 방치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 달리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극복 정책이 정곡을 짚은 것이라고 그는 평가합니다.

살아남은 자들”. 자기 몫의 회한의 짐을 짊어진 사람들끼리 측은지심을 많이 나누는 것이 옛 시대를 정리하는 데는 바른 자세겠지요. 새 시대로 나아가는 길이 분명해지는 데 따라 시비지심과 수오지심도 필요하겠지만 측은지심과 사양지심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식민만이 아니라 -근대’, ‘-국가’, 옛 시대를 정리하는 모든 과제에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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