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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년 40대 초반의 테무진(鐵木眞, 1162?-1227)이 칭기스칸(成吉思汗 Genghis Khan)으로 즉위하면서 선포한 대몽골국(大蒙古國)의 인구는 얼마나 되었을까? 확실한 추정을 못 봤지만, 전후 사정에 비춰볼 때 30만 명가량? 몽골제국이 완성된 후 몽골족 인구를 여러 학자들이 70만 명 전후로 추정하는데, 1206년 시점까지는 나중에 몽골족의 범주에 들어갈 여러 부족들이 아직 합쳐지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로부터 21년 후 칭기스칸이 죽을 때는 몽골군이 금(金)나라를 황하 이남으로 쫓아냈고, 서아시아 이슬람권의 강국 호라즘을 멸망시켰으며, 유럽에 쳐들어가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있었다. 몽골군의 진격은 계속되어 1279년 남송(南宋)을 멸망시킬 때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유라시아 대륙의 거의 전체를 차지한 몽골제국의 지배 아래 들어와 있었다.

 

문화-기술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조그만 인구집단이 몇 십 년 사이에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제국을 일으킨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역사학자에게는 인과관계를 설명하려는 강박이 있다. 그러나 몽골제국의 흥기에 관해서는 만족할 만한 설명을 찾기 어렵다. 

 

김호동은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의 “제국의 기초”라는 절에서(93-114쪽) 이 설명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쿠다(quda, 혼인관계), 안다(anda, 결의형제), 누케르(noker, 교우관계), 보골(boghol, 주종관계) 등 친족관계를 넘어서는 조직 원리와 천호(千戶, minggan), 친위대(keshig), 법령(jasaq), 분봉(分封) 등 제도들이 나열되어 있다. 토머스 바필드의 <위태로운 변경> 제6장 “몽골제국”의 앞부분(187-206쪽) 내용과 대동소이한 설명이다. 인과관계를 해명하는 규정적(normative) 서술이 아니라 현상을 그려 보이는 묘사적(descriptive) 서술에 그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앞에서 쓴 표현이지만 몽골제국의 흥기는 많은 사람에게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인다면 인과관계의 해명은 역사학자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역사학의 설명은 ‘유례(類例)’의 비교에서 나오는 것인데, 애당초 유례가 없는 사건을 어떻게 해명하겠는가? 이 사건에 대한 이해를 늘리기 위해서는 인과관계의 해명에 앞서 이와 비슷한 유례를 찾아내서 이 사건을 ‘유례 있는’ 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구의 역사나 생명의 역사를 상정한다면 인류문명의 발생 자체가 하나의 ‘유례없는’ 사건이다. 발생 후 수백만 년 동안 개체수 백만 이하로 생태계의 한 틈새에 머물러 있던 인류라는 종(種)이 어느 날 문명을 발생시킨 이래 1만 년 동안에 개체수를 수십억으로 늘려 지구 표면을 뒤덮게 되지 않았는가.

 

‘유례없는’ 사건의 발생이 문명의 속성이라 본다면, 문명의 초기에는 그런 사건이 뜸하다가 문명의 성숙에 따라 잦아지는 추세를 생각할 수 있다. 농경으로 출발한 인류문명에서 농업이 중심적 위치를 지키고 있는 단계에 비해 농업의 비중이 줄어드는 단계에서 새로운 현상이 늘어나는 경향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례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건의 유례를 찾으려면 그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 중에서 비슷한 것을 먼저 찾는 편이 좋겠다. 그렇게 해서 고찰의 범위를 늘려놓고 공통된 특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면 그보다 앞서 일어난 일 중에서 그 특이성이 부분적으로라도 나타난 ‘유례’를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몽골제국의 가장 중요한 특이성은 여러 문명권을 관통하는 통치체제를 세웠다는 데 있다. 그 이전의 ‘제국’은 하나의 문명권을 관리하고, 기껏해야 주변부로 얼마간 확장하는 역할을 넘어서는 일이 없었다. 몽골제국의 이 특이성은 수백 년 후 근대세계에서 나타날 ‘세계화’ 현상에서 다시 나타나게 된다. 19세기 중-후반에 조그만 섬나라가 세계를 호령한 일, 신대륙의 식민국가 하나가 20세기 후반의 세계를 통제한 일, 그리고 소수의 자본가집단이 대다수 인류의 생활조건을 오랫동안 좌우해 온 일, 몽골제국 이전에는 없었던 현상이다. 

 

농경문명 발생 이래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하나의 정상 상태(normal state)가 해소되는 시점에서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의 새로운 단계가 몽골제국을 계기로 가시화된 것이 아닐까? 몽골제국의 특이성 속에서 근대적 특성을 찾아내는 것이 그 제국의 흥기가 가진 의미를 제대로 포착하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과제를 놓고는 역사학보다 인류학 쪽 성과가 더 많이 참고가 된다. 역사학에 비해 규정적 서술에 집착하지 않고 묘사적 서술에 만족하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