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자의 책임”
당(唐) 태종(太宗)은 형인 태자 건성(建成)을 공격해 죽이고 아버지 고조(高祖)를 협박해 황제자리에 올랐다. 건성의 부하 중 위징(魏徵)은 평소 건성에게 세민(世民), 즉 태종의 야심을 경계하도록 권했었다. 건성이 누명을 쓰고 죽은 후 위징은 그 잔당으로 몰려 태종 앞에 끌려나왔다.
태종이 위징에게 “네가 왜 우리 형제를 이간시켰느냐” 하고 호통 칠 때 모든 사람은 그가 죽임을 당할 줄 알았다. 그런데 위징은 당당히 “옛 태자께서 소신의 말씀을 들었다면 오늘의 화(禍)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태종은 그가 자기 소임에 충실했다고 칭찬하며 중용했다. 그 후 위징은 죽을 때까지 바른 말 하는 신하로서 태종의 존중을 받았다.
유방(劉邦)이 팽성(彭城)에서 항우(項羽)에게 크게 패할 때 항우의 부하 정공(丁公)에게 포위당했다. 다급해진 유방이 정공에게 소리쳐 “우리 사이에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 심하게 굴지 맙시다.” 하고 사정했다. 정공이 이를 딱하게 여겨 인정을 두었는지 유방은 겨우 도망갈 수 있었다.
항우가 망하고 유방이 한(漢) 고조(高祖)가 된 뒤 정공이 유방을 찾아왔다. 팽성의 은혜를 생각해 좋은 대접을 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고조는 정공을 당장 묶어 군중(軍中)에 조리돌린 다음 처형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정공은 제 임금 항우의 눈을 속여 사사로운 인정을 두었으니 이처럼 기군망상(欺君罔上)하는 자는 천하가 용납할 수 없다.”
당 태종인들 자신의 야심을 이루는 데 방해됐던 인물이 밉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한 고조라고 어려울 때 도움을 베푼 사람이 고맙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을 쓰고 버리는 데 자기 입맛을 앞세우지 않은 것은 나라 다스리는 일을 어렵게 여기고 조심한 때문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대통령은 그 대표자다. 이 나라 최고의 요직에 앉아서 주인과 대표자를 모두 속이며 국가기구를 사물화(私物化)한 자들이 속속 눈에 띈다. 조직의 의리니 인간적 의리니 변명이라고 하지만 이기심 하나를 분식하는 데 불과하니 조직폭력배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권력을 쥔 자들이 국민 속이는 짓이야 동서고금에 지천으로 있어 왔지만, ‘조직인’을 자처한다면서 조직의 우두머리 대통령까지 속인다는 것은 정말 황당한 일이다. 속이는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속는 사람도 문제가 있다.
국민의 대표자로서 대통령은 국민을 속이지 않음은 물론, 국민을 속이려는 자들에게 속아 넘어가면 안 될 책임을 가졌다. 그들을 요직에 임명하는 권한을 국민이 대통령에게 맡겨놓았기 때문이다. 오만하기로 특히 이름난 옛날 황제들도 나라 다스리는 일에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살펴볼 일이다. (1999년 겨울)
옛날이야기가 재미있으려면 상식을 벗어나는 듯한 의외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교훈의 가치를 가지려면 상식적인 원리를 지켜야 한다. 당 태종과 한 고조의 위 얘기들이 고사(故事)로서 오랫동안 가치를 누린 것은 일견 엉뚱한 행동 같으면서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잊어버리고 살기 쉬운 원리를 일깨워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황제가 보여준 원리란 국가(천하)의 ‘공공성’이다. 황제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는 개인적 은혜와 충성을 이용하더라도, 일단 천하(국가)를 주재하는 위치에 서서는 황제 자신이 공공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써야 등용된 사람들도 공공성에 입각해서 할 일을 할 것이다.
위징이 건성에게 개인적 충성심으로 세민을 억누르라고 권했다면 세민이 대권을 쥔 후에 잡아 죽여야 마땅했다. 그러나 위징은 천하(국가)의 안정을 위한 대책을 개인 건성이 아닌 공인 태자에게 건의한 것이었다. 세민이 건성을 제거한 후 위징을 붙잡아 따졌을 때 “태자가 내 건의를 받아들였다면 오늘의 일이 없었을 것을!” 탄식하는 것을 보고 세민은 그가 새 태자이며 장래의 황제인 자신에게 진정한 충성을 바칠 인물임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위치에서 할 일을 한 것뿐”이라며 풀어주고 등용한 것이다.
한편 정공은 어떤가. 그가 유방의 포위를 풀어준 것이 천하의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였다면 유방이 뜻을 이룬 후에 중용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그는 항우가 멸망할 때까지 그 밑에 있었다. 강자인 항우 밑에서 개인의 공명을 추구하는 것이 그의 기본 입장이었고, 한 차례 유방을 풀어준 것은 ‘보험’ 의미에 불과한 것이었다. 유방은 그를 처단함으로써 자기 개인에 대한 충성보다 천하에 대한 일관성 있는 충성이 이제 필요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거대사회의 질서 유지와 발전에 공공성이 필수 요소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것을 그냥 상식으로 받아들이기만 하지 말고 그 이치를 한 번 따져서 생각해 보는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공공성이 취약한 사회에서는 필요한 일 같다.
조그만 사회 안에서는 지도자의 개인적 힘이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주먹이 무서워서 사람들이 따라올 수도 있고, 꾀가 넉넉해서 사람들을 잘 몰고 갈 수도 있고, 사람됨이 사랑스러워서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 개인적 힘이 미치는 데 한계가 나타난다. 개인의 힘 아닌 제도의 역할이 커지게 되고, 그 기초가 되는 것이 공공성의 원리다.
중국사를 공부한 나는 중국에서 공공성의 원리가 일찍부터 확립된 사실을 중시해 왔다. 공자가 가장 높이 받든 인물이 주공인데, 주공이 조카인 왕을 보좌하는 섭정 노릇을 잘 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개인의 힘은 주공이 월등했는데도 왕조체제라는 제도의 공공성을 앞세웠기 때문에 주나라 번영의 기초가 튼튼해질 수 있었다. 주나라에 앞선 은나라에서는 왕위의 형제 계승이 많았는데 주나라에서 부자 계승의 원칙이 확립된 것이 주공의 공로였다. 조선의 세조가 개인 능력은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음으로써 왕조체제의 제도를 약화시킨 것과 대조되는 일이다.
국가제도의 효용성은 무엇보다 폭력의 억제에 있다. 여기서 ‘폭력’이라 함은 주먹으로 치고 칼로 찌르는 것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주먹의 힘이든 돈의 힘이든 정보의 힘이든 힘을 많이 가진 자가 무절제하게 힘을 휘둘러 사회질서를 해치는 것은 모두 폭력이다. 폭력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회는 멸망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니, 폭력을 억제하는 국가제도 발달은 일종의 ‘자연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국가제도 발달이 유럽보다 앞선 점은 명나라 말기 중국에서 활동한 이탈리아인 선교사 마테오 리치도 증언한 바다. 문관이 무관을 통제하는 제도, 민간인이 무기를 소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싸움이 나 봤자 욕설과 몸 씨름에 그치는 풍속에 그는 찬탄을 금치 못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그 시대 유럽 상황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몇 주째 계속되고 있는 새 정부의 인사 난맥상에 어리둥절해 있다가 “모래밭에서 찾아낸 진주”라는 박 대통령의 말에 무릎을 치게 된다. 중요한 국정을 함께 맡을 사람을 고름에 있어서 그는 자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탁월한 인사를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공성을 저버리기 쉬운 자세다.
진주가 필요하면 보통사람들은 보석상에 가서 제 값 주고 산다. 물론 모래밭에서 찾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들기는 하지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물건이 아니라 꼭 필요한 물건이라면 없는 곳에서 공짜로 주우려 하기보다 있는 곳에 가서 돈 주고 사야 할 것 아닌가. 윤아무개 후보 정도 품질의 진주는 보석상 갈 것도 없이 길바닥에 널려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애꿎은 모래밭만 뒤지나. 자기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자기가 아니라면 발탁될 수 없는, 자기만의 인재들로 정부를 꾸려야만 보통 정부 아닌, 대단히 뛰어난 정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발탁하려던 미스터 김도 그렇다. 능력은 차치하고 그 배경으로 볼 때 대한민국 장관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 대통령이 보통사람이라면 도저히 임명할 수 없는 사람에게 박 대통령은 너무 집착했다. 보통사람들의 의구심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미스터 김이 사퇴 후 스스로 증명해 보여주지 않았는가.
공공성에 대한 의식, 요즘 말로 ‘공공마인드’가 빈약한 것 아닌가 의심이 들면서 폭력의 억제라는 국가제도의 기본 기능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도 불안한 마음이 든다. ‘경제민주화’가 국가적 화두로 떠오른 것은 이 사회에서 ‘돈의 폭력성’이 심각해진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위직을 마치 ‘재테크 달인 클럽’으로 만들려는 듯한 인사 편향성을 보면 김종인 박사가 무엇을 보고 박 대통령에게 경제민주화의 희망을 걸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 그리고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은 보고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그 사람들 중에 이 사회의 장래에 대한 희망을 그에게 건 사람들은 물론 중용해야 한다. 신뢰가 쌓여 있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자기 득실을 위해 줄서기를 한 사람들은 더러 쓰는 것은 괜찮아도 너무 많이 쓰거나 너무 무겁게 써서는 이제 맡기 시작한 새 역할에 도움이 안 된다. 그중 심한 사람, 정공 같은 사람은 물리쳐야 한다.
한편 대통령 당선에 반대해 온 사람이라도 공공성의 기준을 지켜 온 위징 같은 사람은 열심히 써야 한다. 헌법재판소장 자리를 놓고 몇 달째 어지러운 모습을 보며 문득 안경환 교수 생각이 난다. 그런 사람을 지명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얼마나 보탬이 되겠는가. 이명박 정권에서 좋은 쪽으로 바뀐다는 희망을 얼마나 많이 줄 수 있겠는가. 그런데 헌법재판소 같은 독립기관을 놓고도 ‘내 편’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한 고조와 당 태종을 다시 돌아보면 황제 자리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가신(家臣)집단의 개인적 충성에 의지해서 세력을 일으켰지만, 천하를 주재하는 자리에 일단 서서는 공공성의 기준으로 사람을 썼다. 황제가 되기 위한 ‘승리’와 황제로서의 ‘성공’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승리해서 청와대에 입성한 박 대통령, 이제 대통령으로 성공하기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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