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사에 특기할 만한 현상 하나가 3월 내내 벌어졌다. 장덕수 살해사건 재판이 3월 2일부터 4월 1일까지 열리는 동안 동아일보가 엄청난 지면을 이 재판에 쏟아 부은 것이다. 같은 기간 경향신문에 비해 줄잡아 다섯 배의 지면을 투입한 것 같다.

 

장덕수가 ‘동아일보사람’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엄청난 분량이다. 김구에 대한 정치적 공세로 봐야 할 것이다. 지면 투입의 절정은 3월 9일자와 11일자의 제2-제3면을 몽땅 바쳐 피고인 진술서 전문을 게재한 것이다. 3월 8일의 제5회 공판에서 진술서 낭독이 있었는데, 김석황, 신일준, 조상항의 진술서는 3월 9일자 <동아일보>에, 김중목, 손정수, 박광옥, 조엽, 최중하의 진술서가 실렸다.

 

진술서 내용 중 김구의 연루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은 엄청 큰 활자로 부각시켜 놓았다. 김석황의 진술 중 김구와 관계된 중요한 부분을 밑에 옮겨놓는데, 밑줄 친 부분은 큰 활자로 인쇄된 부분이다.

 

(문) 그러면 당신 기억에는 이 회의가 1947년 9월 중순경에 있었는지? 그때에 장덕수 씨 살해사건에 대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답) 본인은 신일준, 조상항, 손정수에게 내가 김구 씨를 만났다고 이야기하였고 김구 씨는 한국민주당 놈들은 다 나쁘다, 특히 이 박사 의도를 무시하고 공(共) [두어 줄 빠짐] 은희 이종영을 죽여라.

 

(문) 김구 씨가 지금 당신이 말한 대로 이 3인을 죽이라는 지령을 당신에게 주었는가?

(답) 그렇습니다.

 

(문) 장덕수 씨를 죽이라고 신일준, 조상항에게 김구 씨의 지령을 전할 때에 당신이 그 사람들에게 더 한 말이 있지 않은가?

(답) 만약 그 사람들이 나를 신용 못한다면 김구 씨에게 가 보고서 그 지령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라고 그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문)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였는가?

(답) 그 이튿날인지 본인은 신일준, 조상항, 손정수와 같이 이 지령에 대한 질문을 하려고 김구 씨 댁을 방문하였습니다.

 

(문) 그때에 김구 씨를 만나봤는가?

(답) 우리 4인이 김구 씨 침실에 가서 만나봤는데 그분은 교자에 앉아 계셨습니다.

 

(문) 신일준, 조상항, 손정수를 위해서 이 지령을 증명해 달라고 김구 씨에게 물어봤는가?

(답) 나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이 지령을 증명해 달라고 말씀을 여쭈었습니다.

 

(문) 김구 씨가 무슨 말을 하여서 증명하였는가?

(답) 김구 씨는 장덕수 배은희 이종영은 나쁜 놈들이니까 그놈들은 숙청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문) 김구 씨가 제일 처음 당신에게 지령을 줄 적에 그분이 장덕수 씨를 죽이라고 하는 말을 신일준과 그 외의 두 사람에게 자기의 지령을 증명할 때에도 말했는가?

(답) 아닙니다. 장덕수 배은희 이종영을 죽이라고는 말씀 안 하셨습니다. 장덕수 배은희 이종영은 죽일 놈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말씀이 나에게 직접 주신 지령을 증명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죽이라고 직접 명령을 해달라고 그분에게 청하지 않았습니다. (...)

 

(문) 김구 씨가 자기가 장덕수 씨 죽이는 것을 원한다고 확언하였는가?

(답) 김구 선생은 본인이 신일준, 조상항, 손정수에게 전한 말과 같이 장덕수는 죽일 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자기가 장덕수 씨를 죽이는 것을 원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문) 그렇다면 어찌하여 김구 씨의 명령이 증명되는가? 그리고 김구 씨가 사실로 장 씨 살해를 원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문) 김구 씨가 나에게 처음 하신 말씀대로 장덕수 씨는 죽일 놈이라고 신일준, 조상항, 손정수에게 그랬으니까 김구 선생이 장덕수 씨 살해당하는 것을 원한다고 봤습니다.

 

(문) 다시 시작합니다.(“시작으로 돌아가 봅시다.”의 잘못된 통역 아닐지?) 김구 씨가 당신에게 직접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였소? “당신이 장덕 수 씨를 죽이는 것을 나는 원하오.”

(답) 김구 씨가 나에게 네가 장덕수 씨를 죽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지령은 김구 씨가 1947년 9월 상순경 댁에서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때에 김구 씨와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문) 김구 씨로부터 받은 이 직접 지령에 대하여 당신은 어떻게 하였는가?

(답) 그 이튿날 본인은 경원여관에 가서 이러한 사명을 누가 이행할 수 있는지 알려고 했습니다. 그 이후에 본인은 그것을 이행할 수 없는 고로 그때에 본인이 김구 씨의 지령을 신일준, 조상항, 손정수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만 김구 씨가 장덕수, 배은희, 이종영을 숙청하기를 원하신다는 말만 하였습니다.

 

1947년 초-중순 어느 날 김구와 단둘이 있을 때 장덕수 살해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1), 이 명령을 혼자 수행할 길이 없어서 신-조-손 3인에게 전했더니 김구의 뜻을 확인하고 싶다고 해서 3인과 함께 며칠 후 김구를 찾아간 사실(2), 그 자리에서 장-배-이 3인은 ‘죽일 놈’이라고 김구가 말했다는 사실(3)이 위 인용문 안에 들어있다.

 

(2)와 (3)의 사실은 신-조-손 3인의 진술과도 대략 일치한다. 그런데 사실 (1)은 김구와 김석황 두 사람만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김구는 3월 12일과 15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두해서 이 사실을 부인했다. 왜 두 사람의 진술이 서로 달랐을까?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누가 거짓말을 한 것인지 두 사람 본인 외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나는 김석황은 믿을 수 없는 증인이라고 생각한다.

 

믿을 만한 증인이기 위해서는 사실을 말하는 진실성만이 아니라 진술 태도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설령 김석황의 진술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사실을 밝히는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김석황이 자신의 진술대로 김구의 하수인이라면 김구를 보호하는 태도를 지켜야 한다. 다른 누구의 손으로도 밝혀질 수 없는 김구의 책임을 자기 진술로 드러낸다는 것은 하수인의 태도에 맞지 않는다. 김구에 대한 자신의 자세에는 아무 변화 없다고 그는 재판 내내 주장했는데.

 

김구의 직접 지령을 받았다는 그의 진술이 사실이더라도 그 사실을 그가 밝힌 것은 김구를 함께 피고석에 세우려는 목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구가 함께 피고석에 서면 처단이 약해질 것을 그가 희망했다고 보는 것이다. 체포 당시 김구 앞으로 쓴 편지를 부치지 않은 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같은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3월 12일 김구의 증언 내용이 <동아일보> 3월 13일자와 14일자에 실렸는데, 그중 김구의 사건 연루에 관한 문답을 뽑아 옮겨놓는다.

 

검사: 작년 여름에 장덕수 씨가 선생을 방문하고 미소공위에 대한 의향을 달리 해달라는 부탁 내지 의논을 한 적이 없소?

김구: 기억할 수 없소. 친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소.

 

검사: 그때의 장덕수 씨의 미소공위에 대한 의견은 어떠했소?

김구: 모르겠소. (...)

 

검사: 장 씨가 선생을 찾을 때 미소공위 참가에 대하여 불가하다고 한 말을 한 일이 있소?

김구: 기억이 없소.

 

검사: 장 씨의 공위 참가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불가하다고 말한 일이 있소?

김구: 직접 본인을 대하고는 모르겠으나 점잖은 체면에 어찌 그러겠소.

 

검사: 그러면 그 말을 김석황에게도 한 일이 없다는 말이오?

김구: 없소.

 

검사: 김석황 하고 만나 토의한 일이 있소?

김구: 없소.

 

검사: 보통 담화 중에 미소공위 참가가 좀 나쁘지 않으냐, 처치를 해야 좋지 않으냐는 말을 한 일이 있소?

김구: 없소.

 

검사: 작년 8, 9월경에 김석황 조상항 손정수 신일준 4명이 선생을 찾아 “김석황에게 장덕수를 처치하라는 말을 했느냐?”라는 질문을 한 일이 있소?

김구: 없소.

 

검사: 확실하오?

김구: 확실합니다.

 

검사: 어째 선생은 다른 질문에는 기억이 없다고 말하고 이 질문에는 똑 잘라서 확실히 없다고 단언을 하시오?

김구: 사람을 죽이라는 것은 중대사이니 확실치 않을 수가 있소?

 

검사: 선생이 죽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겠지마는 "제거"하라는 말을 쓴 일은 없소?

김구: 안 썼소. 어찌 그 사람 하나를 제거하라고 하겠소?

 

검사: 작년에 미소공위 참가한 사람에 대해서 “제거”한다든지 “좋지 못한 사람”이라든지 그런 말을 한 일 있소?

김구: 없소. (...)

 

검사: 김석황에게 장, 배 등 4씨를 좋지 못하다든지 독립방해자라고 한 말이 없단 말이오?

김구: 기억이 아니라 나의 본심이 그렇소.

 

검사: 선생의 제자가 말하기를 선생의 명령이라 하는데?

김구: 그러기에 누구의 모략이지요.

 

검사: 그러면 누구의 모략이요?

김구: 말 못하겠소. 여러 사람과 단체의 이름이 내 입에서 나올 터이니.

 

검사: 재언하면 김석황이 선생을 가리켜 거짓말을 했단 말이오?

김구: 그렇소. 거짓말을 아니치 못할 환경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었겠지요.

 

검사: 그러면 무슨 환경에서 그 사람이 그렇게?

김구: 내 눈으로는 보지 못하였으나 내가 들으니 경찰에서 고문을 한다고 들었소.

 

3월 15일 김구의 증인 출정은 증언 분량이 많지 않은 대신 극적인 정황이 벌어졌으므로 이를 보도한 3월 16일자 <경향신문> 기사 전부를 옮겨놓는다.

 

“장 씨 사건 증인심문 제2일 - 김구 씨 발연대로 - 축석(蹴席) 퇴정 순간 판사 위류(慰留)로 진정 - 박광옥 대성일갈, 법정 내 아연 소란”

 

장덕수 씨 살해사건 군률재판은 지난 12일 제8회 공판에 이어 15일 오전 9시부터 과도정부 제1회의실에서 제9회 공판이 개정되었는데 이 날도 김구 씨가 증인으로 출정하여 공판정은 방청객으로 초만원을 이룬 가운데 심문이 개시되었다. 심문이 차차로 고조에 달한 때문인지 법정의 공기는 처음부터 다소 험악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하고 심문석에 오른 김구 씨의 얼굴도 첫날과는 달리 긴장된 빛을 띠었다. 오전 9시 10분 심판으로부터 개정한다는 선언이 있자 곧 검사로부터 심문이 개시되었다.

 

검사: 토요일에 계속하여 심문하겠소. 피의자들의 진술서 가운데 있는 진술에 대하여 증인은 모략이라 생각한다고 하였는데 그 모략이란 무엇이오?

김구: 내가 법정에 나온 것은 국제 예의를 존중하여 증인으로 출정한 것이지 심문에 있어 마치 죄인이나 피고와 같이 취급을 하니, 죄인으로 취급을 할 터이거든 기소를 하라.

 

검사: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은 증인이 죄가 있어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요?

김구: 나는 그런 사실을 모르니까 어찌 대답을 할 수 있는가. 대답을 거절한 것은 장덕수 씨를 죽인 것에 대하여 내가 관련을 하고 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므로 안 한 것이다.

 

검사: 검사가 질문을 한 것을 대답함으로써 스스로 증인이 죄에 접촉하게 되는 때문인가?

김구: 나는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관계가 없는 것을 어찌 대답을 한단 말인가.

 

이때 5분 동안 휴정을 하였는데 휴정을 하는 동안 변호인단이 판사 앞으로 가서 무엇인가 조용히 이야기를 하고 김구 씨와도 말을 하는데 중대한 일이 벌어질 듯이 방청객의 관심은 김구 씨에 집중되고 있다. 피고들은 머리를 수그리고 있어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다.

 

검사: 피고인 다섯 사람의 진술서에 적힌 진술을 증인이 모략이라 하였는데 모략이라 함은 무엇이오?

김구: 말을 못하겠다.

 

시간으로 9시 49분 바로 이때이다. 피고석에 앉았던 박광옥이 돌연 일어서면서 “그것은 완전한 모략이다! 법정에 태극기를 걸어라!” 하고 외친다. MP가 달려와서 박을 끌고 증인석으로 들어간다. 증인석으로부터 싸우는 소리와 우는 소리가 요란히 일어나 방청석을 아연케 한다. 김구 씨도 뒤를 따라 증인석으로 들어간다. 법정은 일대 소란을 일으키며 살기를 띤다. 이때 뒤를 이어 이번에는 방청석에서 “이제부터 조선 3천만은 다 죽는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난다. 이로써 혼란된 법정은 스스로 휴정이 되고 말았다.

 

피고인들의 얼굴은 또다시 핼쑥하여진다. 박이 들어갔던 증인석으로부터 “죄 없는 사람을 왜 그러는가!” 하는 말이 울음과 섞여 들려온다. 약 25분 후에 박과 김구 씨가 다시 나와 앉아 10시 15분부터 심문이 다시 계속되었다.

 

판사: 피고 자신이 말하여도 좋을 때 얼마든지 말할 수 있으니 조용히 앉아 있으라. 지금 당신들을 위해서 증인이 말을 하는 것이니 당신(피고)들은 직접 말하지 말라.

검사: 아까 말한 ‘모략’에 대해 말해주시오.

변호사: 그 질문은 증인의 위신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반대한다.

 

이로써 김구 씨의 ‘모략’이란 말에 대하여 심문을 끝마치고 판사로부터

 

판사: 언제 어디서 “일본 놈들은 죽일 놈들이다”라고 말하였소?

김구: 상해에 있을 때이며 15년 전 일이다.

 

판사: 누구에게 명령하였소?

김구: 역사를 통해서 잘 알 것이다. 광복군에 명령하였으며 윤봉길에게 백천(白川) 대장을 죽이라고 하고 이봉창에게는 동경에 가서 유인(裕仁)을 죽이라고 하였다.

 

판사: 애국자의 한 사람으로써 장덕수 씨를 생각하였는가?

김구: 국내에 들어와서 장 씨를 애국자라고 말하였는데 나는 그 동안 장 씨가 애국자 노릇을 못 했는지 했는지 모르며 조사해볼 생각도 없었다.

 

이로써 김구 씨에 대한 심문은 끝마치고 10시 37분부터 손종옥 씨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는데 심문 내용은 피고인들이 경원여관에서 말하고 회합을 한 광경과 증거품(사진)을 제시한 데 대한 답변으로 오전 11시 30분 오전 중의 심문을 끝마치었다.

 

누가 뭐래도 김석황은 김구의 ‘심복’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의 체포와 재판 과정에서 흘러나온 얘기를 보면 축첩도 하고 애기(愛妓)도 두고, 지사(志士)보다 책사(策士)의 느낌이 든다. 독립운동에 세월을 바친 이를 놓고 정황을 세세히 알지 못하는 후세의 서생이 섣불리 폄훼할 일이 아니지만, 편지와 증언으로 김구를 피고석에 함께 끌어들이려 한 책략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김구는 이틀에 걸친 증언에서 장덕수와 잘 아는 사이였지만 장덕수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적도 없고 표명한 적도 없다고 잡아뗐다.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1946년 11월 23일자 <서울신문>에 귀국 1주년을 맞은 김구가 <서울신문> 출범 1주년을 축하하는 글을 실었는데, 그 글에 장덕수를 지목한 대목이 있다. 장덕수가 김성수와 함께 입법의원 선거에 당선하여 물의가 일어났을 때의 글이므로 누구를 지목한 것인지 명백한 것이다.

 

친일분자로 지목을 받는 자 중에서 일찍이 왜적 이상으로 왜국을 위하여 충견노릇을 한 무리는 감히 대두도 하지 못하며 혹 그 정상이 비교적 경한 무리로도 자숙하는 부분도 없지 아니하나 그러나 소위 황국의 성전을 위하여 글장이나 쓰고 연설쯤 한 것은 문제도 되지 아니한다고 하면서 도리어 발호하는 무리를 대할 때에는 구역이 나지 아니 할 수 없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