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위원단은 3월 17일 제26차 전체회의에서 미군당국에 제출할 ‘선거를 위한 자유분위기’ 건의안을 채택했다. 1월 18일 제1분위가 만들어진 이래 두 달간의 작업 성과다. 채택 사실은 바로 공보 제48호를 통해 발표되었으나, 그 내용은 사흘 후에야 발표되었다. 미군정 측에 예의를 갖춘 것으로 이해된다.

 

발표된 건의안 내용은 (가) 법률, (나) 강박(强迫), (다) 언론, (라) 정치범의 네 영역에 걸친 18개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특출한 조항만 옮겨놓는다.

 

1. 조선인사와 사계의 전문가 견해를 참작하면 본위원단은 선거에 필요한 자유분위기가 현존 법규에 의하여 어느 정도 보장될지 결정하기 곤란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2. 그러나 본 위원단은 남조선인민의 시민 자유를 증진하기 위하여 형사수속의 변경을 가능케 하는 법령 초안이 준비되어 있다는 말을 군정장관으로부터 들었다. 신 법령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없으며 영장 없이 체포하는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도 구인장 없이는 40시간 이상 유치할 수 없으며 보증인 변호인에 대한 조항과 권력남용에 대한 징벌책이 보장되어야 한다. 본위원단은 이 법령이 시민자유를 보장하는 중대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4. 본 위원단의 의견에 의하면 상기의 자유 가운데에 투표권 기권 그 어느 편이나 평화적 합법적 수단에 의하여 지지하는 권리가 포함되어야 할 것을 부언하며 이 점을 보증한 1948년 3월 3일 남조선군사령관 하지 중장의 중대한 증언을 주목한다.

 

5. 본 위원단은 선거자유분위기를 충분히 보장하는 법령 혹은 증언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위원단은 이 법령의 적용과 집행에 있어 경무부가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증언에 주목한다. 본 위원단은 조선사람 가운데에 경무부가 그 업무를 수행하는 방법이 때에 따라서는 경무부의 개조까지 희망한다는 여러 가지 의견에 일치점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한편 군 당국은 현 사태를 고려하여 경무부의 성과에 만족하고 있다.

 

8. 본 위원단은 관계당국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함. 즉 관계당국은 청년단체의 지도자들에게 그 당원의 행동은 국련의 감시 하에 있으며 또 그들의 일거일동은 조위가 총회에게 보내는 보고서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을 알려야 된다는 것.

 

16. 범죄를 재래(齎來)하거나 범죄의 선동을 제외하고는 불법집합에 참가하거나 삐라를 살포하는 것은 정치적 위법이라는 의견을 본 위원단에서는 가지고 있다.

 

18. 본위원단은 폭동 혹은 사기행위를 범하지 아니한 정치범에 대하여서는 무조건 석방할 것을 당국에 건의함. (<동아일보> 1948년 3월 21일)

 

제1조에서 남조선의 법률-제도가 선거의 자유분위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제5조에서는 경찰의 역할에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제6조에서는 “경찰의 태도를 세밀 감시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까지 했다. 가장 중대한 두 가지 문제를 정확히 짚은 것이다. 그리고 제4조에서 기권의 권리가 명시된 점도 중요하다. 실제로 5-10선거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가 기권의 권리 유린이었다.

 

제2조에서 “시민 자유를 증진하기 위하여 형사수속의 변경을 가능케 하는 법령 초안이 준비되어 있다”는 말을 군정장관으로부터 들었다고 했는데, 그 법령(남조선과도정부 법령 제176호, “인권 옹호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이 3월 20일부로 발표되었다. 오늘날 사람들 눈에는 당연한 원칙들이지만 그 당연한 원칙들이 당시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안을 작성한 형사소송법 수정위원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살펴본다.

 

1. 본 법령은 불법구류에 대한 국민의 자유권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하여 종래의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는 것이니 하인이라도 재판관이 발행하는 구속장 없이는 구인 구류 체포 또는 구속 등의 신체구속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다. (제1조, 제3조) 특히 법령이 지정한 예컨대 긴급조치를 필요로 할 때에는 재판관의 영장 없이 구속할 수 있으나 이러한 때는 48시간 (법원 없는 군(郡)-도(島)는 5일)이내에 영장을 얻어야 하고 영장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즉시 석방하여야 한다.

 

2. 재판관의 영장으로 신체가 구속되면 즉시로 구체적 범죄사실과 또는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고 선임된 변호인은 피의자와의 접견과 신서(信書)가 자유로 왕래할 수 있고 또 유리한 증거를 제출할 권리가 있다. 만일 접견과 신서의 왕래가 금지된 경우에는 법원에 대하여 그 금지에 해제령을 신청할 수 있다.(제11조, 제13·4조)

 

3. 관변 또는 타인에게 신변의 구속을 당한 자는 그 친족 또는 변호인은 해 법원에 그 구속에 적법의 유무의 심사를 신청할 수 있다. (제17조)

 

4. 사법경찰관 또는 검찰관이 죄인의 신체를 구속한 경우에는 재판소의 허가를 얻어 10일간 연장할 수 있으나 그 기간 내에 송청 또는 공소제기를 하지 않으면 석방하여야 한다. (제8조)

 

5. 구속된 피의자가 공판에 회부 후 30일 이상 공판이 개정되지 않으면 보석할 수 있으며 재판소는 경찰청 또는 경찰서에 구속된 개인을 수시 자유로 보석할 수 있다. (제 9조)

 

6. 구속뿐 아니라 가택을 수사하고 물품을 압수당하는 때에도 재판소의 수사영장이 없이는 못할 것이다.(제5조 제20조)

 

7. 검찰관은 불법구속의 유무를 조사하기 위하여 관하 경찰서 유치장을 매일 1회 이상 반드시 감찰하여야 하고 이를 방해하는 자는 6개월 이상 7개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8. 일제시의 악법인 행정집행령과 조선형사령 제12조부터 16조를 폐지하고 만일 불법구속을 하는 경우에는 불법구속기간 중 1일당 천 원씩의 손해를 배상키로 되었는데 만일 이 법령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에는 6개월 이상 7개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뿐 아니라 지방검찰청장 관구경찰청장 경찰서장이 직접 부하 직원이 본 법령에 위반하는 것을 방임한 때는 즉시 파면되며 그 후 2개년 간 사법부 또는 경무관 직에 취임하지 못한다. (<동아일보> 1948년 3월 26일, “개정 형사소송법, 수정위원회서 해설 발표”)

 

이 정도 기본 원칙들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가? 마침 위 해설 중 제7항에 딱 걸리는 문제 하나가 이때 불거져 나왔다. 서울지방검찰청의 29명 검사 일동이 피의자 고문 여부에 대한 검찰관의 검증을 경찰이 거부한 사태를 놓고 하지 사령관, 김병로 사법부장과 이인 검찰총장에게 진정서를 제출한 것이다. 3월 19일자 <동아일보> “검찰관의 검증을 경관 거부는 위법” 기사 중 진정서 내용만 옮겨놓는다.

 

“금월 17일 상오11시경 절도 혐의로 서울시 서대문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는 사법부 내 미인고문관실 전속자동차 운전수 윤종인(23)이 심한 고문을 당하여 빈사상태에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인권옹호에 만전을 기할 것을 지상명령으로 하고 있는 우리 검찰관으로서는 그대로 방치할 수 없으므로 서울지방검찰청 조동진 검찰관을 동 경찰서에 출장케 하여 그 진상 여하를 조사하려 하였으나 동서 수사주임 김원기가 수도관구경찰청장의 명령 없이는 유치장을 검찰관이라도 보여줄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하므로 조 검찰관은 부득이 일단 귀청하여 차석검찰과 엄상섭 씨에 보고하자 엄 씨는 곧 동서 수사주임 김 씨의 부당함을 질책하는 동시에 동 서장으로 하여금 등청케 하여 이에 대한 사유를 설명하도록 요구하였으나 아무런 소식도 없어 재삼 동서에 갔던 바 장기상 서장 역시 수도관구청장의 명령 없이는 검찰관의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하여 끝끝내 유치장 조사를 거부하였고 다시 다음 18일 상오 10시경 본 청장으로부터 수도관구청장에게 전화로 조회하였던바 법률에 근거 없는 명령을 발하고 있다고 수도청장은 말하였는데 사법경찰관이 유치장 검열을 거부한다는 것은 남조선의 현행법규로 보아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 부당성은 삼척동자라 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경찰관의 이러한 태도가 용인된다면 남조선에 있어서의 인권옹호는 불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총선거가 긴급문제로 되어 있는 오늘 경찰관의 이 같은 비민주주의적 불법태도를 방임하여서는 안 된다. 원컨대 현명하신 각하께서 선처하시와 경찰관 측의 이 같은 독재적 경향을 급속히 시정하여 주시기를 절망(切望)하오며 우리들의 이 지당한 요청을 각하께서 청납하지 않으면 하는 수 없이 유엔조위에 호소할 것이고 여하한 방법에 의하여서라도 이 부당성을 시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경찰은 왜 검사에게 피의자 보여주기를 거부한 것일까? 보여줘서 별 문제 없을 것 같으면 이런 시끄러운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보여줬을 것이다. 보여주면 고문 사실이 대번에 드러날 상태였던 모양이다. 피의자가 미국인 고문관실 운전사였다니, 그 신분 덕분에 이렇게 문제화라도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절도 혐의의 고문관실 운전사가 이렇게 당하는 판에, 연줄 없는 좌익 혐의자들은 경찰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었을까.

 

진정서 끝에 이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유엔조위에 호소”하겠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검사들은 미군정에게 경찰의 횡포를 시정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수없이 절감해 왔을 것이다. 이제 미군정을 끝내고 조선 임시정부를 세우기 위해 유엔위원단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법질서 세우는 일을 미군정이 계속 외면한다면 유엔위원단에 의지해서라도 법질서를 세워야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경찰에서 조사 중인 피의자의 상태를 가족이나 변호사는 차치하고 검찰관조차 확인하지 못하게 하다니, 당시의 경찰은 피의자 신병을 자기네 소유물로 여긴 것일까? 이와 관련한 장택상의 담화가 <서울신문> 1948년 3월 20일자에 보도된 것을 보면 정말 아연실색이다. 법률도 경찰청장의 허가 없이는 효력을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 장택상의 ‘민주주의’인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그의 재주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

 

“우리 경찰은 민주주의식으로, 경무부장도 경찰청장을 경유치 않고는 일선 경찰서장에게 직접 명령하는 제도가 없다. 이후는 검찰관께서 일선 경찰의 사무연락을 하시려거든 일선 주임급과 싸우지 말고 수도청장을 경유하시면 알선할 용의가 있소.”

 

분노한 검찰관들에게 일선 주임급과 싸우지 말라고 야유하고 있다. 이런 담화문은 정말 자기 손으로 쓴 것 같다. 비서가 써드리는 글이라면 체통을 지키는 시늉은 할 텐데.

 

남조선을 경찰국가로 만든 책임자로 장택상과 조병옥이 나란히 지탄을 받았지만, 조병옥이 그래도 국량(局量)이 더 큰 인물이란 사실은 이번 사태에서도 드러났다. 조병옥은 3월 22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검찰과 사법경찰은 형사수사에 있어서 이신동체(異身同體)이다. 기실 현행 형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하면 수사상 법리적 권한으로서는 검찰이 주(主)요 경찰은 종(從)이란 관계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수사에 현실적 임무수행에 있어서는 체포 피의사건의 기본적 조사의 광범 잡다한 활동이 사법경찰에게 부과되고 검찰은 주로 기소기관으로 화함이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이는 수사에 현실상 필요가 이런 분야를 조성한 것이매 검찰과 경찰은 혼연 일치의 실을 거두지 못하면 수사의 완벽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국립경찰은 남조선 특수사정에 의하여 중앙집권제의 독립적 체계를 고지하고 있으나 명령계통을 확보하는 이외에는 사법경찰에 복무하는 경찰관은 자기의 직속상관이 아닐지라도 도의상 실질적 상관으로 인정하고 그 지시에 응하여서 전적 협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검찰당국에서는 국립경찰의 특수성격을 인식하여 그 명령계통의 유지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답습하기를 요청하는 바이다. 소위 서대문경찰서 유치 피의자 고문 검증 거부 문제에 대하여 검찰과 경찰 간의 대외적 발표가 왕래함으로서 검찰 경찰 간의 마찰에 대한 우려가 정도 이상으로 세간에 유포됨에 대하여 유감으로 생각한다.

 

검찰 문제에 대하여 기실 경찰로서는 거부한 사실이 없다. 다만 국립경찰과 외부기관 간 수립한 교섭절차의 준수 및 시행이 도를 넘고 묘(妙)를 얻지 못한 까닭에 이 차질이 생긴 것이다. 경찰이 교섭절차에 있어 타 외부기관과 동일하게 검찰을 율(律)한 취지와 그 반면에 검찰이 국립경찰의 특수성을 망각하고 형사소송법에 규정한 검찰과 사법경찰의 관계를 문자 그대로 적용하려는 사실에서 무용의 오해 충절이 생겼다고 나는 본다. 그러므로 검찰관의 수사 행사에 대한 장해를 예방하고 검찰과 경찰 간 관계를 원활히 하여서 수사상 협력 일치를 기하고자 한다. 본관은 경찰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지시하였다.

 

1. 사법경찰은 경찰관의 일반수사상 지시를 복종할 것은 물론 검찰관이 경찰관의 장(長)에게 통고하고 그 장의 입회하에는 검찰관은 하시(何時)든지 유치장 급 그 수용인의 검증을 실시할 수 있음.

 

2. 검찰관이 범죄수사상 필요하여 경찰관에 대하여 법률에 의한 출두명령을 발할 때에는 명령을 받은 경찰관은 소속장관에 보고하고 그 소속장관이 관의 필요상 출두를 금하지 않는 이상 출두명령을 거부할 수 없음.” (<동아일보> 1945년 3월 23일)

 

얼마나 교묘한가. 경찰에 대한 검찰의 감독-지시 권한을 인정하는 것처럼 검찰의 자존심을 달래준다. 그러나 검찰의 권한은 원칙적인 것일 뿐이라고 한다. 남조선 ‘특수사정’으로 인한 국립경찰의 ‘특수성’을 이해한다면 형사소송법의 규정을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서대문서 사건에서 “기실 경찰로서는 거부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조병옥이 말한 ‘특수사정’이란 무엇인가. 공산주의자들의 책동을 말하는 것이다. 선거의 자유분위기를 위해 형사소송법을 개정한 데 대한 노골적인 반대까지 단독건국 추진세력에서는 나타났다. 3월 25일 한국독립정부수립대책위원회 성명의 요점을 옮겨놓는다.

 

“유엔조선위원단이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 실시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감사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스러운 분위기 양성을 너무 고조(高調)한 결과 남조선까지 소련의 위성국화 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우리에게 주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심히 의아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그 계획의 실현이 금번에 발포된 형사소송법 개정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은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양성하는 데 공헌할 수는 없을 것이요, 도리어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파괴하여 총선거를 불가능하게 하여 유엔총회에서 43대 0으로 결정된 그 결과를 여기서 나타내게 될 것이 아니고 도리어 소련이 보이콧한 그 결과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될 것이니 우리는 그 태도에 대하여 단호히 반대하지 아니할 수 없다. (...)

 

4월 1일부터 그 개정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남조선에는 파괴분자들의 행동을 조장하여 입후보자들의 생명도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고 투표인을 제지하여 기권케 하고 투표소 습격 등 무한한 불상사를 연출하게 될 것이다. 그 책임은 유엔조선위원단과 이 법령 개정에 참획한 대법원장, 사법부장, 민정장관에게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 입법절차에 있어서도 입법의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관을 경유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중대한 착오로 생각되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법령의 실시를 연기하고 즉시 입법의원을 소집하여 신중 심의할 것을 제의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 법령을 그대로 실시하는 것은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을 재삼 고조하는 바이다.” (<동아일보> 1948년 3월 26일)

 

형사소송법도 입법의원에 맡기잔다. 선거권 연령을 25세 이상으로 정하는 그 입법의원에. 입법의원에 설령 맡긴들 더 이상 법령을 다룰 수 있을 것 같지도 한다. 3월 18일 입법의원 제 211차 회의가 열렸지만, 이제 법령 의결은 고사하고 성원도 힘들게 되었다. 2월 23일 제206차 회의에서 ‘남한 총선거 촉진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의장단 3인이 모두 사퇴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19인의 의원을 제명처분 했는데, 그 밖의 의원 11인이 의원직을 사퇴했다. 남은 의원 수는 49인이었다. (<조선일보> 1948년 3월 20일)

 

3월 18일에는 독촉국민회 제6차 전국대표자대회도 열렸다. 이 대회에서 이승만의 훈화에 이어 김구 치사를 대독하다가 대의원들의 맹렬한 중지 요구로 중단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 대회의 결정 중 특이한 것 하나는 월남민을 위한 특별선거구 설치와 김두한 구명을 대회 명의로 당국에 진정한다는 것이다. 김두한은 1947년 4월 좌익 청년들을 납치 살해한 ‘대한민청’ 사건으로 미군정 군률재판에서 교수형 판결을 받은 사실이 1948년 3월 17일 발표되었다. 독촉의 두 가지 요구에 대해서는 며칠 후 자세히 살펴보겠다.

 

 

Posted by 문천